[포토에세이] 지켜진 약속

조회수 13504 추천수 0 2011.12.27 01:55:29

(지켜진 약속)

 

근래 수삼일 바짝 추웠다고는 하지만 평년에 비해 냉기가 그리 심하진 않았지 싶습니다. 다른 해완 달리 올핸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스쿠터 엔진이 말을 들어주는 바람에 원 없이 쏘다니며 겨울날 강마을의 독특한 정경을 넉넉하게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앨범 안에 가장 부족하던 겨울날의 초상이 넘쳐나도록 담겨졌습니다. 게다가 문득 한 가지 떠오른 발상까지 오늘에 기어코 달성할 수가 있었으니 이로서 기대이상의 보너스까지 마저 안아 들였음입니다. 비상한 각도와 위치, 평상시엔 전혀 불가능한 잘 얼어붙은 강심에 들어서서 뭍에 바깥 사위를 거꾸로 조망함이란 기대치도 오늘로서 완성을 보았음이 그것입니다.

 

보통이야 말할 나위도 없이 보이는 저곳 뭍에 바깥에서 서성이다가 사진도 얻다가 할 따름이었지만, 짧게 남은 계절이 하 수상하기로 얼음이 더는 공고하게 도와주지 못할 것을 인지하고 기회는 오늘 뿐일 것이란 각오로 약간의 무리를 해서 소형이라도 백 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체중의 스쿠터를 달래가며 함께 언 강심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scuter1.jpg 

 

스쿠터를 몰고 강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평탄도가 보장된 코스란 거의 정해져있기 마련입니다. 가장 확실하고 또 안전한 곳 선착장은 어부님 네들이 빈번하게 사용하기로 자꾸 얼음을 깨뜨리는 바람에 두꺼워질 틈이 없어 매일 아침처럼 노크만 해보다가 기여 포기하고, 대신 눈에 봐둔 야한 들녘 손 타지 않은 강섬 안으로 맘먹고 들어가 비교적 완만한 비탈 한곳을 겨우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어렵게 찾은 통로였습니다. 이나마도 흐름이 거의 정지된 섬 안쪽이라니 가능할 뿐, 막상 강의 본류인 섬 넘어 북한강은 천만에 맑게 흐를 뿐입니다.

더워지는 햇살이 빙판을 녹진하게 모두 장악하기 전이라야 가능함으로 시각은 오전 열시 안쪽, 올 여름에 있을 국제적인 모터캠핑 축제를 준비하느라 추위도 아랑곳없이 일해야 하는 인부들과 중장비 몇몇이 멀리서 ‘우르릉’ 거릴 뿐…….

 

아닌 게 아니라 2백 킬로그램은 충분히 달하려니 스쿠터와 내 체중이 합쳐짐에 사방에서 ‘쩡쩡’ 얼음 갈라지는 소리에 모골이 제법 송연하더이다. 조금씩 내려앉는 얼음 틈으로 물기가 위로 올라와 비치기도 했지만, 만사를 각오하고 힘들여 섬에까지 끌고 들어간 바에야 기어코 소정의 소명을 완수했음입니다.

 

scuter2.jpg 

 

기왕에 큰맘 먹고 들어온 강심, 새들이 특히 싫어하는 엔진소리를 감추기 위해 얼음 위를 타고 가던 스쿠터를 강 한복판에 혼자 세워놓고 계속 걸음을 옮겨 멀리 왜가리들이 쉬고 있는 곳 가능한 가까이까지 한참을 다가갔습니다. 사방이 모두 작게 보일 즈음에 이르러도 왜가리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발한 광경을 도무지 믿지 못하겠는지 마음을 턱 놓고 계속 딴청만 피우고 있었습니다. 지난 계절의 기억에 의한들 저 같은 스쿠터 바퀴와 자신들 사이엔 물길이란 천혜의 가로막이 분명히 놓여있었음에 이제의 상황을 실제로서 감지하지 못하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아니면 우중충한 내 입성도 그렇거니와 저들의 일원으로 여기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난 웃음을 참는 게 가장 큰일이었습니다. 녀석들 바로 코앞에서 사진기를 들이대도 역시나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아예 내 존재를 무시해 버립니다.

 

scuter3.jpg 

 

거친 흙 비탈이지만 내려가는 길은 아무리 그래도 수월키 마련입니다. 고약한 왕 가시 마른 풀씨들이 온몸에 따갑게 달라붙는 등 귀찮은 잡풀들을 누르고 헤쳐 가며 엄청 애를 써 무거운 스쿠터를 다시 강심에서 육지로 씩씩거리며 통사정으로 끌고 오르던 중 한 번의 엉덩방아를 기어코 된통 찧긴 했지만, 이젠 내 벗 동장군으로부터 더 이상 선물이 답지되지 않는다 해도 이제까지로 다만 넘칠 뿐 내 마음의 보석 상자에 아쉬운 공간이란 일점인들 남아있을 리 없습니다. 도꼬마리, 도깨비바늘 등 귀찮기로 소문난 약아빠진 갈고리 꼬투리 군단으로 하필 니트 옷 전신을 빽빽하게 점령당했어도 일절 상관치 않았습니다.

 

진 푸른 겨울하늘엔 구름 한 톨 보이지 않고 강섬 천지 도로는 온통 흰색 눈 바탕이라 아무리 가늘게 떠도 종내 눈이 따가울 정도였습니다. 들 때도 그랬거니와 겨우내 다지고 다져진 바람에 유리창처럼 반질반질한 강섬 내부도로를 두 바퀴와 두 다리를 총동원해 거의 네 발로 설설 기듯 돌아오는 내내 자꾸만 빙긋하게 떠오르는 미소를 누가 봤다면 연유를 알 길이 없는지라 누구를 정상인이라 칭하진 않았을 겁니다.

 

 

scuter4.jpg

 

미끄러짐 때문만이 아니라 이래서 내 스쿠터 주행속도란 겨우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엔 주변사람들로부터 방해된다는 눈치깨나 받았지만 알만큼 이유가 알려진 이즘엔 그런 무색한 경우는 없어졌습니다. 여기서의 속도기준이란 최소한 계절이 흐르는 박자보다는 낮아야 한다는 엄중함을 잡습니다. 이야말로 자연율이라 말할 수 있으나 때론 인간세상 법 규정과 불가피 상충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느린 속도가 법률엔 도리어 위배된다는 난처함을 말함입니다. 하지만 안전과 우주의 생명질서를 생각할 때 자연율을 성문법에 우선하는 자를 곧 자연인이라 칭할 수 있음이며, 속세간에서 그렇듯 서로 죽기로 다퉈 먼저 계절을 앞질러가 봤자 기다리는 차표가 결코 복지행이 아님을 눈치 챘기 때문이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나로서 가급적 자연율이 우선하는 슬로시티에 머물러 사는데 까지 살고자 함입니다.

 

근자에 이보다 더 기특하고 호쾌한 일은 없지 싶습니다. 올 겨울시즌에 이뤄지길 맘먹었던 과업은 이로서 보너스까지 충실하게 누구는 완성을 보았음에 지금에도 자꾸 행복에 겨워한답니다.

“입강을 허락하고 굳세게 버텨줘서 고마워, 친구 동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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