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쏙] 굴착기 맞선 어르신들 “유서 하나씩 품고 산다카이”


‘땅 주인 동의없이 강제 수용’ 한전, 70년대 법에 기대 강행

공청회는 요식행위에 그치고 전자파도 해결안돼 갈등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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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6일 경남 밀양시 산외면 주민 이치우(74)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전력이 자신의 밭에 송전탑을 세우려고 굴착기를 가져온 날이었다. 이씨가 세상을 뜬 뒤 다섯달 동안 공사를 중단했던 한전은 18일부터 공사를 재개할 예정이다. 지난 14~15일 만난 주민들은 “유서 하나씩 써놓고 있다”고 말했다. 


“불쌍한 우리 할배. 그러키 허망하게 죽다이. 한전 사람들 다 죽이뿌고 싶어.” 마르고 왜소한 현씨의 몸뚱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곡소리가 10분 넘도록 이어졌다. 


산외면 주민들은 한전이 송전탑 건설을 본격화한 2005년부터 지금까지 7년째 싸우고 있다. 한전은 부산 기장군 신고리원전의 전력을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기 위해 경남 밀양시·울주군·기장군 등에 걸친 9만535㎞ 구간에 5175억원을 들여 철탑 162기를 세우고 있다. 북경남 변전소를 거친 전력은 수도권 등 전국으로 보내지게 된다.


162기의 송전탑 가운데 69기가 밀양시 5개면에 집중돼 있다. 이 가운데 산외면·부북면·단장면·상동면 등 4개 면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고 있지만, 한전은 공사를 강행했다. 지난해부터는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고 이치우씨의 논밭에는 높이 100m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항공방제를 할 수 없어 밤농사를 짓지 못하게 될 터였다. 시가 1억5000만원짜리 밤밭을 포기하는 대가로 한전이 제시한 보상액은 154만원이었다. 생전의 이씨는 송전탑 건설에 동의하지 않았다. 전 밀양 시장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농원에 송전선이 지나가는 것을 피하려고 자신의 밭으로 우회하는 송전선 노선을 만들었다고 생전의 이씨는 주장했다. 이씨의 거듭된 송전탑 노선변경 요구에도 한전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씨의 죽음 뒤 격앙된 주민 여론을 의식한 한전은 이후 공사를 중지했지만, “더이상 미룰 수 없다”며 18일부터 공사를 재개할 방침이다. 주민들의 근심과 분노도 커지고 있다. 


한전이 공사를 강행할 수 있는 것은 1978년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 때문이다. 법에 따라, 한전은 전기시설 예정부지가 필요하면 땅 주인의 동의 없이도 강제수용할 수 있다. 협의 과정을 거친다는 조항은 있지만 협의가 잘 안되면 공사를 그냥 강행해도 된다는 조항도 있다. 


주민 보상 역시 형편없다. 단장면에서 30년간 밤농사를 지어온 양상용(72)씨도 숨진 이씨와 똑같은 처지에 있다. 송전선로가 밤나무 위로 지나가면서 농사를 접어야 하는 처지에 있지만, 한전은 “보상금 154만원을 받아가라”고 통보했다. 3년 전,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매긴 그의 임야 가치는 1억원이 훨씬 넘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은 송전탑이 들어서는 자리와 송전선 주변 3m 토지까지만 보상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이런 규정은 송전선에서 흘러나오는 전자파에 대한 고려가 없다. 주민들은 “송전탑이 들어서면 그 자리에서만 농사를 못 짓는 게 아니라, 전자파 피해 때문에 그 주변에서 아예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이 짓고 있는 것은 초고압 송전선이다. 한전은 “송전선로를 833mG(밀리가우스·전자파 세기 단위) 이하로 짓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설명했지만, 주민들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833mG의 전자파에 단기 노출되더라도 신경세포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는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가 있다는 것을 산외면 주민들은 알고 있다. 2006년 12월,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새로 송전선로 등을 만들 때는 4mG 이하로 짓는 것이 좋다”는 송전선로 전자파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4mG 이하일 때만 인체에 미치는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도 생략됐다. 한전이 송전선로 구간을 확정한 것은 2005~2006년이다. 주민들은 “송전선로 구간 확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공청회 한번 열지 않았다”고 성토하고 있다. 상동면의 경우 2005년 8월 면사무소에서 주민 38명만 모아놓고 일방적 설명회만 열었다. 당시 상동면 인구는 3536명이었다. 한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송전선로가 지나는 모든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공청회를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주민 및 지역 단체들은 “새로 송전탑을 세우지 말고 기존 송전탑에 증용량 전선을 설치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전은 “2013년 완공되는 신고리원전 3호기와 2014년 완공되는 신고리원전 4호기의 전기까지 내보내려면 증용량 전선으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결국 밀양시 4개면 주민들은 지난 2008년 ‘송전탑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백발이 허옇게 내려앉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지난해 봄 송전탑 예정 부지인 화악산 중턱에 작은 움막을 지어 공사를 막고 있다. 공사 관계자들이 주민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밤밭 깎이고 선산 파헤쳐져 70·80대 지팡이 짚고 저항 “산을 뺏기거나 내가 죽거나” 

‘기존송전탑 증설’ 대안 무시 한전은 18일부터 공사 재개


a2.jpg » 경남 밀양지역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한전과 주민과의 갈등이 주민 분신 사태를 겪고도 해결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오는 18일부터 공사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자 마을 주민들은 진입로를 차단하는 등 적극 저지에 나설 태세다. 작은 사진은 송전탑 공사에 쓰인 포크레인 뒤에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주민들. 밀양/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지난 14일 밤 10시. 부북면 주민 10여명이 서울에서 기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화악산 움막에 몰려들었다. 대부분 70대 이상의 노인이었다. 그 가운데 이금자(81)씨가 말했다. “지난 겨울이라. 공사 인부들이 송전탑 세운다꼬 나무를 전부 벨라카잖아. 그거 막겠다꼬 나무마다 붙잡고 우는 할매들한테 인부들이 ‘다 묻어버리겠다’꼬 위협했대이.”

거죽만 남은 이씨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꼬부랑 할매들이 산을 기어다니니까 개처럼 봤나. 할매들한테 손가락 내밀고 ‘워리 워리’ 카잖아. ‘XX년’이라 카는 놈도 있었다카이.” 여든이 넘은 이씨는 울먹였다. “내사 이런 욕을 당할 바엔 이치우 할배 따라 죽어삐는 게 안 낫겠나 카는 생각도 든다꼬.” 


이씨는 지난 3월5일 써서 웃옷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어둔 유서 한장을 꺼냈다. “이곳에 송전탑만 들어오면 나는 몸뚱이에 기름을 붓고 죽을 것이다. 이 늘긍게(늙은 것이) 보상받게 한다고(보상받으려고) 한 일이 분명이 않이다.(분명 아니다) 한전놈들은 드러라(들어라).”


“언제든지 분신하려고 집집마다 기름통 하나씩 갖다 놓고 유서는 손에 꼭 쥐고 잔다”고 움막에 모인 주민들은 말했다. 부북면 주민 진해권(65)씨는 “산을 뺏기거나 내가 죽거나 둘중 하나”라고 말했다. 지난해 진씨는 송전탑 예정지로 선정된 선산 일부를 강제로 뺏겼다. 4대째 이어지던 조상의 묏자리가 그에 이르러 파헤쳐질 수도 있다. 


조경태 의원(민주당)은 “개발독재 시절 만들어진 법률이 21세기에도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활용돼 주민들과 충돌을 빚고 있다”며 “주변지역 토지소유자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전원개발촉진법 개정안’을 19대 국회에 발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대 국회 개원과 법률 통과 이전에 한전이 공사를 마치려 한다고 주민들은 생각한다. 화악산 움막 근처 송전탑 예정지는 이미 벌목이 끝난 상태였다. 


밀양/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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