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마실가세(8월 25일) 후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살아내자
2009년 겨울, 두 남자와 토금마을에 갔었다. 길을 안내한 한 남자가 말했다.
‘토금은 숨어 살기 좋은 땅입니다. 구례에서도 첩첩산중이지요. 토금마을에는 산비탈 언덕에 있는 밭이라하여 '산밭등'이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우리는 ’삼뱃등‘이라 해요. 도선국사가 이곳에 서서 풍수가 너무 좋아 3번 절을 하였다고 하네요. 토금이요, 다 좋은데 물이 부족해요.’
2010년 4월 말, 다시 토금마을에 갔었다. 단순소박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다섯 번째 걸음, 그날 ‘지리산만인보’는 문척초교에서 만나 월평삼거리를 지나 오봉산에 올랐다가 토금마을과 섬진강 수달서식지 생태경관보전지역을 걸어 백운나루에서 나룻배로 섬진강을 건넜다.
봄날이었다. 초록이 절정인 날이었다. 자운영도, 찔레도, 일본잎깔나무도 초록으로 표현되고, 초록이 있어 세상엔 평화만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토금마을 수원지에 모여 조명제 할아버지으로부터 들은 백운암골 이야기와 진도아리랑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 날이었다.
조명제 할아버지는 토금마을에서도 산으로 더 들어간 백운암골에 살았었는데, 한국전쟁 때 빨치산 토벌을 명분으로 백운암골을 소개하여 토금으로 왔다 하였다. 백운암골에 사실 때는 섬진강 너머 토지까지 농사를 지으러 다녔다고, 농사 일로 하루 세 번 섬진강을 건널 때도 있었다고 하였다.
그날 조명제 할아버지가 전쟁 시기 좌우대립 속에서 살아난 이야기를 하실 때 지리산만인보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눈앞도 흐려졌다. 2010년 4월, 토금은 따뜻한 초록색이었으나 민초들의 삶을 뿌리 채 흔드는 세상에 소리치고 싶은 날이었다. 우리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외치고 싶은 날이었다.
토금은 지리산과 섬진강, 백운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구례 대부분의 마을과는 다르게, 중심축에서 살짝 비껴난 마을이다. 비껴났다 보다는 숨었다라는 표현이 좋을 수도 있겠다. 구례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곳이 토금이다.
‘토금’이란 말은 앞산인 오봉산과 마을이 자리 잡은 모양새를 두고 붙여진 이름이다. 오봉산에 있는 바위가 토끼 머리에, 토금마을은 꼬리에 해당하며, 토끼가 꼬리를 돌아보는 형국이라하여 토고미(兎顧尾)라 하였다가 쓰기 쉽게 토금으로 하였다고 한다.
토금은 고사리가 유명한 곳으로, 전라남도에서 제일 먼저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도, 마을에서 바라본 앞산에도 고사리가 자라고 있었고, 집집마다 마른 고사리가 가득하였다....(하략)
글_윤주옥 사무처장(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진_강영석님, 전재완님, 허명구님, 윤주옥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