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딱정벌레

조회수 12802 추천수 0 2013.06.30 02:10:54

(딱정벌레)

 

털두꺼비하늘소1.JPG

 

 

눈을 바로 뜨기 힘들만큼 날카로운 기운으로 충만한 성하의 햇살이 아까워 아침 일찍 빨랫줄에 널어놓은 홑이불을 지금쯤 뒤집어 줘야할 시간, 먼저 창문 밖을 내다보니 개가죽나무 바지랑대 끝에 다소곳이 날개 내린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하필이면 앉아 졸고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발을 내딛을 즈음 눈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 도톰한 딱정벌레 한 마리가 거꾸로 뒤집힌 채 버둥대고 있습니다. 손가락 절반 크기의 깜장색 윤기 자르르한 대형 딱정벌레는 하늘소 일종이 분명합니다. 더듬이가 별로 길지 않을 걸 보면 소문난 족속, 귀하고 드문 장수하늘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

멍청한 녀석들, 제 몸을 둘러싼 단단한 장갑도 회복엔 오히려 방해가 될 뿐, 어떤 이유에서건 한번 뒤집히면 혼자 힘으론 자세를 되돌리지 못합니다. 하루 정도 진이 다 빠질 때까지 누워서 버둥버둥 함부로 버티다가 굶어죽거나 말라죽는 일이 당면한 귀결입니다. 그렇게 생을 마친 오래 묵은 딱정벌레 잔해 두엇이 거실 창문턱에도 미라가 되어 누워있습니다.

딱정벌레뿐만 아니라 대형 참매미 한 마리도 벌써 4년째 날개 한쪽, 외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바싹 말라있습니다. 초대형 말잠자리 한 마리만은 불개미가 다 파먹어 벌써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언젠지 정확한 기억도 없습니다. 여름에야 그렇다 쳐도 흰 눈 펄펄 나는 한 겨울에 문득 들여다보면 지나간 계절의 찬란했던 감흥을 한참씩 되새겨 되돌려 주는 타임머신 역할도 있어 되는 대로 방치해 뒀을 뿐, 따로 의도된 박제 수집은 물론 아닙니다.

 

여섯 개의 다리를 하늘 향해 마구 휘저어 대는 품새가 아직은 기운이 넉넉합니다. 자빠진지 오래되진 않았단 뜻입니다. 손가락 하나 슬며시 빌려줍니다. 기다렸단 듯 냉큼 집게손가락을 붙들고 올라섭니다. 아차! 회복되는 과정일 뿐 아직 상태가 완전한 손가락이 아님을 떠올립니다만 이미 늦었습니다. 달라붙는 다리 기운이 놀랄 만큼 셉니다. 뾰족한 다리 끝이 손가락을 피나게 파고들만큼 강력합니다. 이걸 놓치면 아주 끝장이란 표정이 역력합니다. 다소 부담됩니다.

서두를 일은 없다 쳐도 홑이불 뒤집긴 금방은 어려워졌습니다. 녀석을 손가락에 매달고 남은 한 손으로 처리하기가 수월치 않은 커다란 홑이불입니다. 제 풀에 알아서 떨어져 줘야지 내 손으로 일부러 떼어내려면 녀석의 다리가 하나 이상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있는 기운을 다해 매달려 있습니다. 덕분에 바지랑대 끝에 앉아 조는 고추잠자리도 좀 더 휴식을 취해도 되겠습니다.

 

가만히 멈춘 채 지친 숨고르기를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닙니다. 이제껏 뭘 하고 있었느냐는 듯 보기만도 억세고 견고한 갈고리 입이 그렇지 않아도 아픈 손가락 끝을 자세히 보니 마구 물어뜯고 있는 중입니다. 골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지요, 구해주니 오히려 보따리 내놓으란 격, 하지만 타박을 쏟아 물어뜯는 곳은 하필 손톱입니다. 다행입니다. 난 웃습니다.

참을 수 없어 낄낄거리는 내 웃음기의 진동을 느꼈는지 녀석이 고개를 들고 빤히 내 얼굴을 올려다봅니다. 더듬이도 입을 도와 내게 뭐라 뭐라 말을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새겨들으나마나 ‘힘들었다, 죽을 뻔했다’는 타박 일색일 겁니다.

잠시 그렇게 웃고 지켜보며 기다림의 망중한을 보내자니 녀석의 다리에서 스르르 독기가 사라집니다. 초기 생사의 기로에서 얻은 뾰족한 성깔이 누그러들고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았단 뜻, 촉감 압박감이 한결 가벼워 옴을 느낍니다.

뜻밖의 구속으로부터 탈피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무성한 풀숲을 향해 얼른 손가락 튕기기를 해줍니다. 방심하고 있던 녀석이 쉽게 떨어져나가며 풀숲으로 날아가 무사히 잠깁니다. 시커먼 하늘소 녀석이 불시에 낙하하는 서슬에 놀란 제법 장성한 풀무치 메뚜기가 화들짝 자리를 피해 날아오릅니다. 한 바탕 너털웃음 나머지 한방을 크게 웃어주곤 싹싹하게 뒤돌아섭니다. 오늘도 크게 웃어 줄 일이 한번은 있어줘 다행입니다. 시간이 정지된 공간, 4차원의 천국 화엄경으로 곧게 이어지는 초원, 살아난 녀석은 짐짓 위로가 됐을 것이고 풀무치와 난 계속 늠름합니다.

 

주방에 들러 찬물 한 모금 개운하게 마시고 거실을 통과, 서재로 들어와 의자에 앉아서야 ‘아차!’ 난 본연의 임무 홑이불 뒤집기를 까맣게 잊었음을 떠올립니다. 고추잠자리야 그렇다 쳐도 이게 다 딱정벌레 그 망할 녀석 때문입니다. 다시 나가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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