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름에 온 손님

조회수 8438 추천수 0 2013.07.31 00:54:19

(여름에 온 손님)

개구리2.JPG  

 

마을 안길을 지날라치면 제법 길가에 늘어서 있는 형형색색 외지 차량들의 행렬에 평상시의 한가함은 찾을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왕복 2차선 도로가 한 차선으로 줄었음에 차는 설설 기다시피 눈치를 살펴야 했으니, 1년에 한차례 그것도 약 보름간에 걸친 피서기 제철을 맞이한 것이다. 차량의 숫자만큼 남대천 개울가 자갈밭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다양한 차광막과 색색의 텐트들이 그렇지 않아도 드문 여름날의 꽃을 대신한다.

 

마을에서 제법 멀리 동떨어진 내 골짜기라도 결국 바깥에 알려지긴 했나 보다. 일상 속에 지고 있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고 찾아온 사람들, 휴식이란 이름으로 영육의 피신을 위해 일시나마 피안의 곳을 찾아온 사람들, 어른보다 아이들을 생각할 때 이들의 발걸음이 보다 간절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극히 일부일지언정 일부러 알려주지 않으면 결코 찾아질 수 없는 나만의 장소, 침목다리 아래 명상 터 그늘 막 냇가도 결국은 알려지고 말았다. 길게 은둔지로 남아있던 비경의 터전이 속살을 드러내 준 것, 아랫마을 강 씨네 민박집에서 제집 손님들에게만 특별히 소개한 것임엔 분명하다. 아침나절 잠시만 열린 동편에서 사광으로 빗겨드는 햇살이 있을 뿐, 하루 종일 나무와 바위 단애가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드문 곳, 여름철 명당인 때문이다. 당연히 바깥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면 눈에 띌 수도 없는 잘 가려진 곳이다.

 

서재 안에 앉아있어도 이따금씩 가늘게 들려오는 멀리 아이들의 해살 맞은 웃음소리가 참으로 생경스럽고 싱싱하다. 청천의 햇살보다 맑았으면 맑았지 어둔 그늘이라곤 생각나지 않는 청명하고 동그란 천진무구(天眞無垢)한 소리들이다. 며칠 전 장마가 끝나면서 유난히 더웠던 날 탁족을 즐기기 위해 밋밋한 물 바닥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모래와 잔돌을 일껏 치워놨음에 그들로선 알 바가 없을 것이고, 공연한 공치사인 것을 먼저 나서서 설명해 줄 까닭도 없다.

 

산책길에 어쩔 수 없이 마주치던 초기엔 그들의 앞서는 경계심을 내가 미안할 정도로 굳어진 표정에서 읽을 수가 있었다. 도시든 어디든 낫선 사람 이상으로 경계심을 유발하는 요소는 역시 없으렷다. 그들도 만부득이 무장한 자기방어본능의 발동인 까닭이다.

일부러 던져주는 미소와 고개 주억거림에 이들의 경계심은 단 순간에 풀어진다. 슬쩍 빈말로 인사라도 한마디 던져주면 곧 이웃되어짐을 안다. 내게 공격성이 없음을 확인하곤 저들의 방어책도 슬그머니 접어지는 과정이 속속 눈에 뜨인다. 생각 저변에 옹골차게 닫혀있던 가림판이 마저 열려짐으로 해서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의 집적도는 한결 농도가 짙어질 것이고, 그의 부추김을 암암리에 제공할 줄을 알면 그저 좋다. 단지 앞선 미소 한방의 위력일 뿐이다.

맘으로 반갑고 이해 깊은 심정에 첫날엔 식수도 떠다주고 마른 수건도 빌려주곤 했지만, 가급적 저들끼리 어울리도록 공간과 시간을 비워주는 것 이상의 도움은 없을 것이란 생각은 맞을 것이었다. 내 도움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테니 한동안 오솔길을 표 나게 움직이지 말아줘야 하겠다. 그저 한가한 분위기를 원해 작지 않은 비용과 맘을 설레 가며 어렵사리 만든 휴식의 기회를 내 알아서 생각해 줘야할 따름이며, 그들 눈에 띄지 않음이 가장 큰 도움인 것이며, 이 같은 번거로움도 불과 보름 남짓한 상간이기 때문이다.

옳다, 그들이 바삐 즐거이 움직일 땐 난 도리어 잠자코 있어줘야 하겠다. 그들이 떠난 이후의 골짜기는 다시 예의 고즈넉함에 파묻힐 것이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알이 많이도 굵어진 풀무치들과 함께 산천엔 녹음과 식생들이 제 주인으로서 위치를 되찾을 것이니까.

지금은 외지인 그들에게 내줘서 얼마든지 좋은 휴식의 계절, 개울가에 갔을 때 맘씨 넉넉한 현지인이 있었든가 없었든가, 할 정도로 어느 여름날 오롯한 산골짜기 냇가에서 문득 만난 난 그들의 기억에서 말끔히 사라질 것이며, 나 또한 길게 추억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다만 유난히 맑은 냇물 속에 발 담그고 있을 동안만은 불편하고 거슬리던 공연한 기억만 없으면 그뿐, 잠시 이참만 양보해주면 나머진 고스란히 다시금 내 차지인 것이다.

얼마나 맘에 위안을 얻고 이전의 시름들을 내려두고 갈진 모른다. 기대하지도 않겠지만, 그들이 천진함의 의미를 크게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면 좋겠다. 풀어놓을 것들일랑 모두 풀어놓고 간다면 난 그것들을 간단없이 주워 모아 알알이 낱낱이 글줄로 꿰어 가을꽃 같은 문장으로 만들어 반듯하게 되돌려 줄 수도 있건만…….

아무리 그래도 한참 잊고 살았던 쓸쓸함 한 조각을 그들은 다녀가며 흔적처럼 내 속에 물그림자 어른거림으로 남기긴 할 것이나, 그들이 개울가에 남긴 흔적을 본래대로 치워가는 동안일 따름일 테니 그조차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문득 평소 습관대로 바깥을 미처 의식하지 않고 산책을 나섰다가도 ‘까르륵’거리는 아이들의 청량함이 그쯤에서 귀에 들어오면 아차! 난 발길을 다시 되돌려줘야 한다. 오전에 던져준 미소 한방으로 골짜기에 주인 된 도리는 충분히 행사해준 셈이니까.

 

걸음이 중단된 오늘 오후의 오솔길 한구석, 차바퀴에 무참하게 깔려 사라지는 것이 미안해 한 곳에 모아두면 발효되는 듯 익는 듯 달디 단 술 냄새가 무수한 곤충들을 불러 모을지라도, 어렵사리 열매를 맺은 재래종 푸른색 어린감은 채 익기도 전에 왜 자꾸 땅으로 떨어지는가, 그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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