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달캉 달캉”
따사로운 햇살이 너무 아까워 모처럼 문이란 문은 방충망까지 모조리 열어 제치고 겨우내 묵은 공기를 새 공기로 바꿔 놨더니 누군가 가만히 문을 흔들고 있습니다. 얼핏 창밖을 내다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동장군의 작별 인사는 아직은 아닐 테고, 겨우내 뜨락 백설 위에 던져 놨던 내 그리움의 지긋한 눈빛이 녹아내리는 소리도 아니었을 겝니다.
눅진한 습기가 부담스러웠던 실내도 아주 빠르게 말라감에 속이 다 개운해집니다. 빨랫줄에 내다 얹은 이불까지도 햇살에 햇살을 받아 온기가 한껏 올라갑니다.
건너편 북향 산등성이 골 깊은 음지는 아직 9할이 눈밭, 그러나 색 바랜 백설의 눈빛도 이미 설국의 강건함을 잃었습니다. 시험 삼아 밟아보는 눈 표면은 푸석거리는 소리만 깊습니다. 올려다보면 눈높이가 무릎만큼 낮아진 지붕 테라스에서 폭포 되어 쏟아져 내리는 낙수방울이 마치 진 보석인 냥 반짝입니다. 더 올라 구름 한 점 끼지 않은 청천을 바라보자니 벅찬 광휘가 차라리 내 눈을 감깁니다. 실눈도 부럽단 뜻입니다.
아침에 나가 본 개울물이 맑은 청록 빛에서 붉은 흙탕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눈과 추위로 한동안 멈추었던 도로 복구 작업이 드디어 봄날을 앞질러 탄단 말입니다.
장화 발로만 눈을 슬슬 밀고 지나간 침목다리 위도 말끔히 녹아 벌써 뽀송하게 말라있습니다. 남은 눈이 거의 사라진 포장도로엔 물기가 거의 없어 연례행사인 이른 아침 얼음지치기 행사는 올핸 기대치 말아야 할 모양입니다.
“달캉 달캉”
다시 누군가 창문을 조심스럽게 흔들어 옵니다. 만사가 고요하기로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뜨락 쪽이었습니다. 들키지 않으려고 곱게 묶어둔 내 그리움은 아닌 줄을 알기에 이번엔 내다보지도 않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그냥 혼자 놀다 가시란 뜻이지요.
참으로 긴 겨울이었습니다. 일찌감치 쳐들어온 혹한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1주일에 한차례 이상 눈 오시는 횟수도 가장 잦았던 겨울이었습니다. 결국 엊그제 내린 뼘치 눈으로 3미터를 꽉 채운 적설량이었지만 여느 해보다 힘은 덜 들었습니다. 골고루 나눠 옴으로써 단번의 폭설은 피해 줬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이력이 붙은 외딴 산마을에 겨우살이, 한꺼번에 왕창 쏟아져 준다 해도 그럭저럭 살길은 있었을 겝니다. 덕분에 병풍 같은 참숲 소나무들이 설해를 입지 않았음만 그저 은혜로 여기면 그만입니다.
수일 내 하조대 바닷가 시린 파도 머리에 마중 한번 다녀올 예정입니다. 작년 겨울 초입 달빛 가득한 트럭 적재함에 함께 실려 온 동장군 대신 이번엔 봄 처녀를 마중 나가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내가 잠시만 수고를 해주면 이곳 산골짜기 봄날은 그만큼 빨라질 걸요, 이젠 길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만큼 고즈넉한 한밤중을 골라서 한번쯤 다녀올 예정입니다. 산 그림자 은빛으로 짙은 달밤이면 더더욱 좋겠지요 만.
“달캉 달캉”
처음과 똑같은 소리 박자로 창문 밖에서 또다시 누군가가 부르고 있습니다. 부르는 청이 하도 정겹고 워낙 은근해 이번엔 아무래도 아는 척을 해줘야할 것 같았습니다. 한 모금 남아있던 찬 커피를 마저 입에 물고 가벼운 차림새 그대로 거실을 가로질러 뜨락으로 난 쪽문을 가만히 밀어봤습니다.
아하! 방금 전까지 말끔하던 묵은 눈밭 위엔 자그마한 노루 발자국이 진하게 새로 찍혀있었습니다. 시절이 정히 힘들 땐 콩도 배추도 나눠, 감자도 나눠, 그에겐 맹한 나로서 은혜로운 이웃으로 굳이 자리를 잡았을 진 몰라도, 겨우 한줌어치 은혜를 구태여 인연으로 엮고 싶지 않은 내 속셈, 구휼(救恤) 보시(普施)이되 무상공식임을 마저 다 아진 못할 겝니다.
그랬습니다. 눈 나라 깊은 산골짝에 기대어 혼자 사는 맹물 글쟁이 찾아온 노루 한 마리, 유난히 걸음발 느린 아랫녘 봄 아씨 함께 마중가자는 소심한 청노루가 내민 더 부끄러운 데이트 신청이었던 겝니다.
뜨락 묵은 눈밭을 얌전히 가로질러 밤나무동산 잔등너머로 자박하니 사라진 청노루 발자국, 그쪽은 틀림없이 봄 오시는 방향이었습니다.
** 자연수상록 ‘한 스푼’(어문학사)에서 전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