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봉선화 가족

조회수 21960 추천수 0 2011.10.06 00:39:45

봉선화 가족

 

생태적 특성 때문인지 충청도 보다 아랫녘에선 만나기 쉽지 않은 꽃, 북녘의 서늘한 기운을 좋아하는 꽃, 제법 귀하대서 보호종으로 지정된 ‘노랑물봉선’을 만났습니다.

앉은 곳이 하필 냇물에서 너무 가까운 장소인지라 이번 장마를 무사히 넘기긴 어려울 듯합니다. 다 제 팔자로 알고 지나칠지언정 빛살 좋을 때 어서 씨앗을 여물리고 퍼뜨려 주길 속으로만 바랄 따름입니다.

참으로 기발한 모습이라니 어린 봉오리 시절부터 분명히 계획된 수순으로 잎새 하나를 우산 겸 양산처럼 머리 위에 반듯하게 덧씌우고 있습니다. 몇 개를 확인해 봐도 한결같습니다. 물고기를 꼭 빼 닮은 봉오리 시절부터 순차로 매일같이 성장과정을 기록할 수 있었으니 이것도 행운임엔 틀림없습니다.

야생화(노랑물봉선)9.jpg

 

가는 가랑비가 오신 뒤 바람일랑 한 점도 없는 정적 속에서야 만날 수 있는 정경, 발걸음은 물론 낼 숨조차 극력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 첫 꽃송이가 드디어 만개했을 때 진심 어린 축하의 의미로서 찬란한 보석 알갱이들을 우산 끄트머리마다 누군가가 알알이 달아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누군가가 구름의 요정이더란 천기는 살짝 누설시켜도 괜찮지 싶습니다. 이처럼 넉넉한 은혜로 점철된 우리 꽃 ‘노랑물봉선’ 잘 기억해 주시고 어딘가 초록이 가득한 장소에서 만나시걸랑 호명과 함께 정겨움의 미소 한방 안겨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표준형 적색 ‘물봉선‘입니다. 이제 방문한 손님은 ’호리꽃등에‘이구요.

 물봉선꽃등애.jpg

흔하다 해서 그런지 보통 물봉선은 하나같이 맨머리로 뜨거운 햇살을 줄곧 버텨내고 있습니다. 이제 막 꽃술을 키워내기 시작하는 어린 물봉선도 맨머리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맨머리가 계면쩍고 아쉬웠던지 꽃송이와 꽃대가 접속되는 부분에 살짝 예쁜이 리본 꽃받침을 하나씩 달아두었습니다. 그래서 노랑물봉선과 그냥 물봉선, 흔하던 귀하던 존재로서 다만 소중할 따름이지 따로 귀천의 구분은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누군들 평생에 한 번 보면 자체로 큰 행운이라는 ‘흰색물봉선’을 운 좋게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적색물봉선 틈새에 똑 한그루 배겨있던걸 용케 놓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걸 보면 정상적인 품종이 아닌 돌연변이 즉 알비노 현상에 의한 색소가 탈색된 일시변종은 아닐지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이후론 같은 곳에서도 두 번 다시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흰색물봉선이 워낙 귀하다 보니 또 다시 만날 수가 없음에 그런 아쉬움을 그렇게 억지 토로해볼 따름입니다.

 흰물봉선.jpg

 

도처에 흔해도 볼 때마다 심정 아릿합니다. 예야말로 모든 봉선화 종류의 대표, 백반을 섞어가며 우리네 누이들 손톱깨나 물들이던 워낙 친근한 ‘울밑에선 봉선화’ 첫눈이 올 때까지 흔적이 남아있으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긴다는 전설의 원단 봉숭아꽃입니다.

쥔 할미네 말씀인즉 학이네 나이와 거의 같다는, 하매 워낙 낡았기로 곧 허물고 다시 지을 것이라는 우리네 전통 민간가옥, 지난 시절의 아련한 노래처럼 울담 밑에 그럴 듯하게 마지막으로 자리 잡은 그림 같은 ‘울밑에선 봉선화’ 일가입니다.

 

봉선화.jpg  

다음해 역시 불과 오전 한나절 사이에 옛집 한옥은 너무도 간단히 허물리고 머지않아 번듯한 새 양옥이 들어섰으니 이 사진이야말로 더불어 사라진 봉숭아꽃과 함께 고스란히 역사의 한 장면으로 겨우 남겨졌습니다. 이로서 내 또래라는 실제는 삽시간에 시간의 페이지로 넘겨졌고, 그의 극변하는 아쉬운 과정을 학이는 꼬박 지켜봤고, 제법 역사가 오래인 이곳 농촌마을에도 보존용 사당이 아닌 바에야 사람이 기거하는 재래전통의 민간한옥은 이젠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로 귀해졌습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의 아릿한 전통과 노래도 함께 사진 한 장만 남기곤 온전히 끝이 났더라는 말입니다. 그냥 그렇더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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