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길

조회수 9397 추천수 0 2012.12.22 17:50:53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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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산 속 오두막 거처 바로 곁에 간신히 흔적만 남은 오솔길 하나가 있다. 지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온전히 퇴락한 자취지만 형태는 분명한 길 모양을 하고 있다. 길의 흔적은 앞쪽 가파른 능선을 타고 내려와 오두막 바로 곁을 스치듯 지나간다. 토박이 촌로 말씀에 의하면 오래 전엔 산판을 헤집고 다니던 산 꾼들과 화전민들이 이용하던 분명한 길이었으나, 좀 더 평탄한 곳에 새로운 길 신작로가 뚫리자 드디어 길이란 케케묵은 역할이 사라지면서 한동안 화전 밭으로 사용되기도 했었단다.

공사를 위해 중장비로 집터를 고를 때 깨어진 옹기조각 등 화전민들이 근대에까지 살아오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봐 한땐 제법 여러 채의 집들이 모여 있었음을 알겠다. 그도 그럴 것이 통행로 바로 곁에 위치한데다 극심한 가뭄에도 결코 마르지 않고 수질도 좋은 귀한 샘터까지 누리고 있으니, 옹기종기 몇 집의 터전으론 전혀 모자람이 없었던 것이다. 주위에 높직한 산마루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겨울철에 한번 내린 눈은 건너편 가파른 능선 일부를 제외하면 봄이 될 때까지 고스란히 쌓여있는 그런 응달진 북향길이다.

생긴 모양으로 미뤄 백여 년 전 이상으로부터 근래 수십 년 전까진 줄곧 사용됐던 듯하다. 지금이야 저만치 물 건너편에 잘생긴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어서 완전히 무용지물(無用之物)로 그림자 속에나 남아있게 되고 말았지만…….

 

시간은 발전만 가져오는 게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한땐 여러 채의 집이 모여 살던 복된 땅이 지금은 한적한 산 속 버려진 땅으로 변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버려진 땅이란 표현이 틀리지 않은 이유는 오두막 바로 곁 예전 길 터 복판에 산돼지가 숨어살며 새끼도 치던 뚜렷한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용도가 끝나 사람조차 모두 떠난 빈터를 그 뒤로 산돼지가 대신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칡넝쿨과 찔레나무로 뒤덮여 깊숙이 가려진 땅은 짐승들이 편안히 깃을 틀고 쉬기엔 더없이 적절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한겨울, 잡풀들도 잎을 다 떨구고 키 낮은 나무들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계절이라 길의 흔적은 더욱 확연해진다. 지난여름 이곳에 처음 왔을 땐 한껏 우거진 녹음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던 흔적이었다. 활동을 멈춘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옛 자취는 저토록 질기게 남아 있다. 오랜 세월 무수한 발길과 사연에 밟히며 두고두고 다져진 길이라서 그 동안 쌓여진 인연들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던 모양이다.

예전엔 그처럼 부산했던 땅이 시간의 지엄한 명령에 따라 온전히 자연으로 되돌려졌고,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은 지금처럼 다시 사람의 자취가 깃을 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 형편에 따라 달라지는 게 세상인심이라지만 자연의 부침 또한 이토록 명확하다. 유한한 우리 삶으론 시간의 깊은 의미를 다 알 수 없는 것이라서 그저 보이는 일면이라도 느끼고 남기려 애쓸 뿐이다.

 

살아있는 생명도 주검도 실어 나르고 희망도 절망도 포용하길 마다하지 않는 길은 시간마저도 어쩔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작은 산사태 토석으로 인해 그동안 군데군데 끊겨있긴 해도 긴 시간 온갖 사연과 사건을 실어 나르던 길의 의미마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사는 겉모습이야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을지 몰라도 예전에 살던 사람들의 희미한 자취는 그래서 더욱 그립고 궁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용도가 지워진 길이기에 거기서 미래와 희망을 찾기보단 과거와 지나간 인연들의 내력에 더욱 집착하게 된단 말이다.

온갖 애환과 사건을 실어 나르던 길의 흔적을 바라보면 난 좀처럼 과거의 상념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와글거리며 넘어갔던 옛 자취들이 마치 좀 전의 일인 냥 깊은 착각에 빠진다. 이쯤 되면 옛 시간이 나를 찾아 현재로 걸어 나오는 건지, 현실의 내가 과거로 걸어 들어가 동화되는 건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고 만다. 그러나 얼마든지 뭣이라도 수용할 것 같이 폭 넓어 보이는 길의 생리는 사실 의외로 완곡하다. 산짐승이건 사람이건 우마차 건 자동차 건 이용하는 종류는 어느 것이나 가릴 것 없이 무한한데 내부 생리는 지극히 냉정 무색하단 말이다.

길에 있어서 과거와 미래, 지난 사건과 앞으로의 발전은 전혀 무관한 것이 된다. 원인이 없는 현상과 결과와 미래는 없다고 볼 때 길만은 예외이며 시간조차 초극하기 일쑤다.

모든 걸 무한히 수용하기만 할 뿐 나름대로 의지를 작위적으로 개입시키는 일은 결단코 없다. 이처럼 길은 존재 자체만으로 자기분수를 확실히 정해놓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감정도 이입하고 기분도 의지하고 사건도 실어 나르면서 길을 더 기록적으로 철학적으로 만들고 나아가 시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길의 본 생리가 그러할지라도 난 시적이고 감정이 들어있어 온기가 살아있는 길이 좋다.

끝이 보이지 않게 쭉 뻗은 한적한 여름 길이 주는 아득함에 취해보면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잠자는 듯 흰 눈 가득 덮인 차고 외로운 겨울 오솔길을 망연히 바라보자면 이유는 더욱 아련해진다.

그저 흙이고 돌이고 눌린 자취일 뿐 길은 홀로서는 무의지랄 지라도 그 위를 무수한 생명들이 지나고 있다. 길은 자체로서 무감동할지라도 그 속엔 더운 눈물이 사연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차고 무감한 게 길의 틀림없는 본성인데도 난 그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단순한 우리 인간들이 느끼는 길에도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육신의 눈으로 느끼는 길이 있다. 대부분 경치도 좋고 가로수도 잘 정비되어있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길, 소문이 짜한 길이다. 하늘이 비치는 호수라도 곁으로 지나치면 길의 경치는 더할 나위가 없어진다. 아무리 걷고 달려도 싫증이 나지 않는 아름다운 길,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즐거움이 배가되는 길,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길이다. 희망을 주고 자신감도 줄 줄 아는 끼가 넘치는 이런 길을 자동차로 한참을 달리고 보면 가벼운 우울증 정도는 저절로 치료가 되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경치도 각기 달라지는 길은 역시 눈으로 보고 즐기며 행복을 느낌으로 자족한 길이다.

 

다음엔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길이 있다.

도로포장도 시원치 않고 인위적인 꾸밈새가 없어도 왠지 아늑하게 느껴지는 그런 길도 있다. 사방에 고즈넉함이 가득하고 저절로 가슴이 일렁거리는 곳, 초행길인데도 언젠가 한번쯤 와 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길이라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어진다. 이런 곳에선 육신의 눈을 감으나 뜨나 가슴으로 느끼는 감동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운치에 흠뻑 취해서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가는 소중한 곳, 가급적 누구 없이 혼자여야만 하는 길, 남에게 자랑도 못하는 그런 길도 더러는 있다. 맘이 산만하고 분노 좌절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 만나는 이런 길은 더없이 훌륭한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 슬픔에 잠겨 가슴앓이를 심하게 앓는 이들은 이런 길은 오히려 피해가야 할 경우도 있다. 본성과 내면으로 이끄는 길의 너무 짙은 성격 때문에 슬픔이, 아픔이 더욱 깊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벽녘 구름에 닿는 서광과 저녁 무렵 황혼이 색깔은 비슷해 보여도 성격은 엄연히 다른 것처럼, 똑같은 길의 시작점과 끝점은 의미가 다르다.

 

길은 어딘가 막연함이 있다.

무작정 끝없이 길을 따라 걷고 싶단 사람이 많은 걸 보면 길이 주는 이미지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암담하고 지루한 현실일수록 그런 느낌은 더욱 강렬해진다.

어딘가로 현실을 피해 떠나고 싶을 때 지금과는 또 다른 희망이 길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바람이 누구에게나 있다. 자신의 앞길이 저처럼 시원하게 뚫려 있어서 길도 없는 벌판을 헤매는 고통을 피해 원하는 목적지로 곧바로 갈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누구에게나 있다.

길 저편 끝에 설사 절망이 준비되어있더라도 일단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이들은 그래서 (어서 떠나가거라!)는 길의 은근한 재촉에 넘어가기가 쉽다. 사주팔자에 나오는 역맛살이라 해도 좋고 방랑벽이라 해도 하는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보다 가슴이 뜨겁고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들이다. 현실보다 높은 이상을 좇아 끝없는 방황도 마다하지 않는다.

피안의 세계를 찾아 맘으로 방황하는 사람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 대번에 알 수가 있다. 어딘가 둥둥 떠 있는 듯 한 모습은 현실과 동떨어진 독단의 이미지를 특히 강하게 풍기기 마련이다. 어깨에서 등으로 흐르는 완만한 곡선이 일견 차분해 보여도 내면엔 현실을 거부하는 완강한 몸짓을 분명히 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묵묵한 표정으로 내심을 감추려 해도 자신의 뒷모습까지 연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의상 디자인 업계의 어려운 숙제 중 하나가 어깨에서 등으로 흐르는 독특한 곡선은 의복과 장신구 등으로 아무리 치장을 하려해도 여간해서 온전히 감춰지지 않음이란다. 그런 중에도 유독 허허로운 뒷모습을 가진 이들을 우린 나그네라 부른다.

제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등 뒤를 빈 곡선의 완만함이 그림자처럼 함께 따른다. 목적이 있어도 좋고 의미가 없어도 상관없는 일, 목마른 맘가짐, 속내 하나는 떠나는 자라면 늘 한결같기 때문이다. 그런 나그네의 허전한 뒷모습이 보이면 난 나도 몰래 한숨을 쉰다. 눈 밝고 현명한 어떤 이가 있어 내 뒷모습을 보고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영원히 내 뒷모습을 볼 수가 없으니 그 또한 끝내 모를 일이다.

 

곧 날이 밝으면 간신히 흔적만 남은 눈 덮인 옛길, 키 낮은 잡목에 넝쿨도 듬성한 빈곳을 다시 돌아봐야겠다. 혹 먼저 지나간 옛사람들의 허전하지만 정감어린 뒷모습이, 빈 곡선이, 얼핏 눈 바탕에 등 그림자로 남아 엿보일지도 모르니까.

 

** 자연수상록 ‘한 스푼’(어문학사)에서 전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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