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끝이 아직 덜 자란 미성숙 ‘벼메뚜기’가 풀잎에 세로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잎새를 정밀하게 갉아먹은 다음 드디어 몸을 바짝 밀착 일치시켰습니다. 계획적인 설계와 시공이 아니라면 단순한 우연 또는 취미 활동이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벼메뚜기는 반드시 땅속에다 알을 낳기 때문에 산란을 위한 본능적인 습성이라 생각되지도 않지만, 이처럼 치밀한 구조적인 작업이 벼메뚜기의 두뇌수준으로도 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든 예전 지푸라기마저 활용처가 있었을 때엔 이런 갉음도 해로웠을 테니 해충이란 소릴 들었을 테지만, 지금은 추수하고 남은 볏짚은 다시 분쇄해 논에 되돌려 줌으로써 다행히 이젠 아닌 듯합니다.
해충이란 호칭은 슬며시 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꼬맹이들의 소일거리, 어른들의 추억이란 이름의 사냥감, 더러는 맥주 안줏감으로 호객의 대상이 되는 모양입니다. 비 농약 유기농법을 선전하는 어느 농촌에선 말입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칼처럼 세로로 날카로운 풀잎에 어떻게 흔들림 하나 없이 안전하게 붙어있을까 싶어 일부러 반대쪽을 돌아다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요렇게 영악스럽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난 또 한 번 자지러지게 배꼽을 잡았습니다.
옳거니! 그렇게라도 단단히 버텨라 버텨, 서서히 이는 웰빙 곧 ‘참누리’ 운동이 시속에 널리 안착되면 무농약 무공해가 대세인 맑은 세상이 도래하려니, 그럼 너희들도 다시 대지와 초원을 훨훨 장악할 수 있으리라, 하매 굳세게 버텨라, 버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