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연가)
아직 겨울인 2월말의 차디찬 눈 속에서도 용하게 노란색 꽃술을 무더기로 피워 올리는 ‘꽃다지’도 있기는 있지만, 이곳 강마을의 봄은 역시 3월 중순 경 할미꽃이 가장 크게 열어줍니다.
올해도 풋고추를 대량으로 심으실 예정이랍니다. 누군지 알만한 농부님 네도 올 한해 농사준비를 갖춰가기 시작하고, 언제 강추위가 산하를 장악했었는지 기억에도 벌써 가물가물한 대기는 마치 보드라운 고양이털 같다고 누군가 참 적절하게 비유로 말했었죠.
고르고 또 고른 양지녘에다 물 빠짐 좋고 땅도 부드러운 덕분에 특히 무덤가를 좋아하는 할미꽃이지만, 이곳의 할미는 유난히 색상도 화사하고 건강도 또한 발군입니다.
일가족 모두를 이끌고 확 트인 전망까지 어떻게 앉으실 자리를 골라도 기막히게 잘 고르셨습니다. 덕분에 누구는 오차도 아쉬움도 한곳 없는 말끔한 가족사진을 남길 수 있었고요.
할미꽃 전성기와 청개구리 발생 시기는 약간 시간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늦둥이 할미가 계셔서 조금만 저물 시기를 늦춰주면 이런 정경도 천만다행히 가능합니다. 청개구리 철부지 손자 녀석이 감히 할미의 머리 어깨에 무동을 타고 앉아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할미는 너무도 젊으시고 워낙 강건하시기에 다만 즐거울 뿐 타박도 내색도 하지 않으실 따름입니다. 조손지간의 정겨움이 맑고 풍성한 봄 햇살 아래 새록새록 다져지고 있습니다.
결국 제 철을 닫으며 화사한 흰 머리 백발을 보암직하게 달고 있습니다. 바로 이 모습 때문에 한방에선 할미꽃을 흰머리 노인 곧 ‘백두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한 알씩 한 줄씩 가능한 멀리로 날려 보낼 겁니다.
옳습니다. 지당하게 흐르기에 일상사인 듯해도 알고 보면 삶의 매사가 온통 기적일 뿐,
이들과 함께 아울려 사는 막급한 축복과 누림의 감동을 감사히 아는 이들은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