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앞둔 꼽등이의 집안 침입은 ‘무죄’

이강운 2017. 11. 07
조회수 8183 추천수 1
더럽고 혐오스런 해충? 해 없는 생태계 청소부
노린재, 집게벌레, 무당벌레도 따뜻한 집안 선호

꼽등이.jpg » 겨울이 다가오자 꼽등이 등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곤충이 집안으로 몰려온다. 그러나 제대로 알면 이들을 혐오할 이유가 없어진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은 뚝 떨어지고 며칠 전 제법 내린 비가 땅에 스미어 얼음이 됐다. 마지막 가을이 사라진다. 마르고 찬바람 불어 스산하지만, 대낮처럼 훤히 비추는 달빛 아래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코끝을 스치는 새벽 공기를 마시는 연구소의 산책은 상큼하다. 

나이가 들면서 유난히 추위를 타는 겨울은 아주 고통스러운 계절이 되었다. 21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철원, 봉화와 같은 수준인 횡성 깊은 산 속 생활은 이제 익숙해져 잘 견딜만할 때가 됐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복을 입는 시기가 일러진다. 춥고 고통스러운 겨울을 무서워하면서도 펑펑 눈 내리는 겨울을 기다리는 걸 보면 아직도 낭만을 그리워하는 철모르는 아이다. 

너무 늦지 않았나 싶지만 벼 거둔 논에 겨울 농사로 보리 씨를 뿌렸다. 앙상한 겨울에 파릇파릇, 꼿꼿하게 자란 보리가 을씨년스러운 주변을 파랗게 물들여 줄 멋진 광경을 기대해 보면서. 

연구소 단풍.jpg »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의 단풍.

보리 파종.jpg » 보리를 심는 모습.

오늘은 입동. 물이 얼고 땅이 얼어붙어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겨울이라 하지만 아직 가을 색과 겨울빛이 뒤섞여 있다. 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팽나무, 곱던 붉은 잎을 내리고 검붉은 색으로 바뀌고 있는 단풍나무와 아직도 불타고 있는 붉나무 단풍이 막바지 가을을 수놓는다.

아직도 울긋불긋한 높은 산마루가 곱지만 낮은 데로 눈을 돌려도 단풍이 아름답다. 가을이 깊어 가면 바짝 말라버리고 서걱거리는 다른 마른 풀과는 달리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는 기린초는 잎을 빨갛게 물들인다. 

기린초 단풍.jpg » 겨울을 맞은 기린초는 땅바닥에 달라붙어 붉게 물든다.

붉게 물든 기린초에 하얀 서리꽃이 활짝 피었다. 기린초가 차가운 날씨에 어는 듯싶다가 오히려 서릿발을 녹이며 묵은 단풍잎을 둔 채 겨울 햇살로 새싹을 밀어 올리고 있다. 겨울 이맘때쯤 새싹이 나오는 기린초와 새싹을 마음대로 먹고 벌이나 파리에게 기생 당하지 않으려 영하의 날씨에 알을 깨고 나오는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이렇게 같이 간다. 계절을 앞서 생명 활동을 시작하는 기린초와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추위 앞에 장사다. 

기린초의 서리꽃.jpg » 기린초의 붉은 잎에 서리꽃이 피었다.

아침 기온이 영하 3.7도였던 10월 31일, 붉은점모시나비(Apollo butterfly, Parnassius bremeri) 1령 애벌레가 알 속에서 꼬물꼬물 기어 나와 기린초 새싹에 척 몸을 걸치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2012년부터 알에서 부화하는 시점을 조사하고 있는데 불과 6년 만에 한 달여나 빨리 알을 깨고 나오고 있다. 기후가 어떻게 변하는지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이지 않은 세상 변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부화일.jpg » 붉은점모시나비의 부화일 변화(위). 해마다 앞당겨지고 있다.

1령 애벌레.jpg » 붉은 기린초의 어린 순 위에서 붉은점모시나비 1령 애벌레가 꼬물거린다.

꼬르륵꼬르륵∼. 온몸의 살과 근육이 떨어져 홀쭉해진 한국산개구리는 여럿이 모여 연못 한가운데서 땅을 파고 낮은 숨을 쉬며 겨울 보낼 준비를 한다. 암고운부전나비는 오톨도톨 엠보싱으로 무장한 도톰한 알을 9개나 이미 복숭아나무에 낳았고, 마지막 산란을 마친 꽃매미가 알 덩어리를 감싸 긴 겨우살이에 들어갔다. 

꽃매미 알집.jpg » 꽃매미 알집.

암고운부전나비.jpg » 암고운부전나비 알.

한국산개구리.jpg » 겨울잠에 들어갈 채비를 하는 한국산개구리.

강인한 담배나방 애벌레는 아직도 한낮에 왕성하게 먹이를 먹으며 성장하고 있다. 때 놓치고 뒤늦게 꽃을 피워 가을을 감당하는 엉겅퀴에 온몸에 꽃가루를 뒤 범벅한 꽃벌이 짧은 햇살을 고맙게 여기며 열심히 꿀을 빨고 있다. 서리가 내리고 추위가 오면 스러지는 것들, 견뎌내는 것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 종마다 다른 삶이다.

꽃벌.jpg » 엉겅퀴에서 열심히 꿀을 빠는 꽃벌. 올해 마지막 만찬이다.

산속 연구소에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는 몸으로 느끼는 추위뿐만 아니라 집안에 들어온 곤충으로도 알 수 있다. 노린재며 무당벌레, 집게벌레, 꼽등이 등 온갖 곤충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초겨울이다. 나무판자로 겹겹이 겹쳐 마감한 연구소 외벽 틈새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고 무사히 보낼 최고의 안식처라 고약한 냄새를 풍겨대는 스코트노린재 군단, 남생이무당벌레 군단과 고마로브집게벌레 등 많은 곤충으로 붐빈다. 

남생이무당벌레.jpg » 월동을 위해 큰 무리를 짓는 남생이무당벌레.

외벽 틈새에 자리 잡지 못한 놈들은 집안으로 들어온다. 창틀마다 남생이무당벌레가 가득하고 잠결에 얼굴을 간질이는 무언가에 눈을 뜨면 스코트노린재가 볼 위를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외벽서부터 집안의 잘 개켜놓은 옷가지 사이에도, 깔아놓은 이불 밑에서도, 가끔은 신발 안에서도 등장하는 곤충으로 깜짝 놀라곤 한다.

겨울이면 야외보다는 실내 생활을 하고 두툼한 옷으로 몸을 감싸는 사람이나, 덮고 싸고 어딘가에 들어가려 하는 곤충 생활사는 같은 맥락의 겨우살이다. 추위를 가장 많이 타는 변온동물인 곤충이 벽 틈새나 집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내쫓고 내쫓아도 어디선가 계속 기어 나오는 질긴 놈들이라 완전히 막을 수 없으므로 내 공간을 조금 양보하기로 마음먹고 자꾸 밖으로 내놓는 수밖에. 

월동중인 왕침노린재.jpg » 월동 중인 왕침노린재.

겨울철 집안으로 들어오는 놈 중에 꼽등이가 있다. 많은 사람이 꼽등이를 어둡고 습하고 더러운 곳에 서식해 몸에 각종 병균을 묻히고 다니는 위생 해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껑충껑충 엄청난 높이로 뛰어오르는 꼽등이에 놀라기도 하고, 기형적으로 등 쪽이 눈에 띄게 둥글게 툭 튀어나오고 더듬이가 긴 기괴한 모습이라 대부분 사람이 기겁한다. 게다가 기생충인 연가시와 연결해 혐오스러운 곤충으로 인식해 반드시 없애야 할 위험한 곤충으로 알기도 한다. 

그러나 꼽등이는 억울하다. 돌 틈이나 나뭇잎 밑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데 추워지면서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온 꼽등이 애벌레는, 습도가 낮아 연약한 껍질이 말라 죽고, 위생 해충이라는 오해를 받아 맞아 죽는 참사를 겪는다. 딱히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아 사람과는 밀접한 관계가 없으며 작물의 해충도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썩은 잎이 쌓여 있는 습도가 높은 곳에 살며 대부분은 작은 곤충과 같은 동물성 먹이를 먹으나 식물성 먹이를 먹기도 하는 잡식성으로 생태계를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청소부 구실을 하는 곤충이다. 

송장벌레.jpg » 고라니 사체에 몰려든 송장벌레.

지난여름 박물관 옆을 지나다 보니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늘 다니던 고라니가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뛰어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죽은 것 같았다. 고라니 시신을 열심히 먹고 있는 송장벌레를 보고 그대로 놔둔 채 며칠을 기다렸다. 썩은 유기물을 먹는 부식성 곤충인 송장벌레가 거짓말같이 털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체를 해체 처리했다. 

2010년 구제역 파동이 벌어졌을 때 소와 돼지 수백만 마리를 한꺼번에 매몰 처분하면서 3년만 지나면 썩어 없어질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7년이 지난 현재 살과 근육까지 거의 온전한 형체의 돼지, 소 사체가 그대로이다. 침출수 관측공에 들이댄 휴대용 유해가스 측정기의 경보음이 울리고 폼알데하이드 등 독성가스가 새어 나오고 있다. 이들을 처리해 줄 송장벌레나 꼽등이 같은 부식성 곤충의 수가 절대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스코트노린재.jpg » 스코트노린재.

모든 생물은 환경에 맞게 서식하고 살아간다. 사람이 그 잣대를 만들어서도 안 되고 그 잣대대로 생물에게도 조건을 붙이지 않아야 한다.

옳게 알면 무작정 ‘혐오나 비난’이 아닌 좋은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맹목적 집착으로 ‘나쁘다’, ‘없애야 한다’ 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서로에게 독이다. 

힘없고 말 못하는 생물을 보듬는 것은 결국 그들의 처지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몫이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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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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