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제물' 가리왕산 살 길 있다

조홍섭 2014. 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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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강 스키장 출발점 120m 높이는 문제 놓고 5년여 공방, 개막 두달 전 타결

가리왕산 파괴 않는 국제 규정 있어, 제 나라 자연과 여론 바탕 재협상해야

 

ga1.jpg » 마지막일지 모르는 가리왕산 활강 경기장 예정지의 봄 풍경. 신갈나무 거목 옆에 얼레지와 박새가 한창이다.

 

평창처럼 ‘삼수’ 끝에 1998년 겨울올림픽을 유치한 일본 나가노현이 알파인(활강) 스키 경기장 때문에 대회 반납 위기에 몰릴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가노 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경쟁 지역인 삿포로의 실패를 거울삼아 ‘자연과의 공존’을 기치로 내걸었다. 1972년 겨울올림픽을 유치한 삿포로는 에니와 국립공원의 가문비나무 숲을 베어내고 활강 슬로프를 만든 뒤 환경파괴 논란과 복원의 어려움으로 애를 먹었다.
 

ga6.jpg »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활강 경기가 열렸던 핫포오네 스키장. 출발점 부근에 국립공원 보호구역이 겹쳐 논란이 됐다. 사진=나가노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공식보고서

 

그래서 나가노 조직위는 새로 슬로프를 만들지 않고 기존의 핫포오네 스키장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시범 경기를 해 본 국제스키연맹(FIS)은 코스가 짧다며 출발지점을 해발 1680m에서 1800m로 높이라고 요구했다.

 

환경단체들이 자연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고 조직위도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고도를 높이면 국립공원의 보호구역을 침범하게 되고 환경 훼손을 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도 어기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직위와 스키연맹 사이의 공방은 5년 넘게 이어졌다. 스키연맹은 ‘이미 정상에서 스키를 타는 일본인도 있는데 올림픽 수준의 선수가 왜 못 타냐’며 불쾌해했고, 고도를 기껏 120m 높이는 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조직위의 속좁음을 탓했다. 속이 탄 조직위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사람을 보내 스키연맹 설득에 나섰다.
 

갈등은 매우 심각해 스키연맹은 대회를 철회하겠다고 으르기도 했다. 결국, 대회 개막 두 달을 앞두고 극적인 타협이 이뤄졌다. 출발지점 고도를 85m 올린 1765m로 하되, 귀퉁이를 살짝 넘어서는 보호구역은 점프로 통과하도록 하고 눈 표면을 굳히는 화학물질은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

 

나가노현은 경기 10년 뒤인 2009년 활강 경기장에 대한 정밀 생태조사를 한 뒤 “당시의 논란이 지역민의 환경의식을 높여 산의 보호와 이용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ga8_Petr Novák_오스트리아 알파인 슬로프_1280px-Rastkogel_ski_slope.jpg » 오스트리아 라스트코겔 활강 스키장 모습. 나무가 전혀 없는 고산 지대에 설치돼 있다. 대부분의 활강경기가 알프스와 로키 등 고산지대에서 열리는 이유는 환경파괴 논란이 심한 활강 경기장을 나무가 없는 해발 2000~3000 지점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가노 올림픽을 길게 소개한 이유는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국제기구와의 합의보다 제 나라 환경과 국민과의 약속을 더 무겁게 여기고, 그런 여론의 압력을 협상의 지렛대로 쓰라는 것이다.
 

평창 올림픽의 활강 경기장을 가리왕산에 건설하기 위한 행정 절차는 모두 끝났다. 환경영향평가는 1월 원주지방환경청의 협의를 통과했다. 산림청은 스키장이 들어설 가리왕산 일원을 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해제한 데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 점검회의 일주일 뒤인 3월27일 경기장 터의 산지 전용 허가를 내주었다.
 

ga7.jpg »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활강경기장과 부대시설 예정지. 사진=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이제 환경부와 산림청이 강원도의 손을 들어주면서 내건 ‘경기 뒤 원상 복원’ 조건을 충족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강원도는 구체적인 복원계획을 내놓지 않고 ‘내버려 두면 저절로 복원된다’며 버티고 있다. 이런 부대조건으로 공사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 환경단체들은 새로운 문제를 들고나왔다. 이제까지 남자 활강 슬로프는 표고차가 800m 이상이어야 한다고 알았는데 국제스키연맹의 규약집을 보니, 표고차 350~450m에서도 2차례 경기를 해 합산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규정을 적용하면 굳이 조선시대부터 산삼 채취 숲으로 보호해 온 우리나라 최고의 활엽수림을 두 주일 경기를 위해 베어내지 않고도 인근 용평이나 하이원 스키장을 이용할 수 있다. 기존 스키장을 보완해 활용하는 다른 대안을 충분히 검토한 것도 아니다.

 

ga3.jpg » 용평 스키장의 활강 경기장 모습. 환경단체에서는 이곳을 보완하면 가리왕산의 파괴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스키연맹 쪽은 “올림픽에서 그런 전례가 없고 한국과 이미 약속을 했다”는 입장이지만, 조직위가 이런 문제제기를 전향적으로 받아 스키연맹과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협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ga2.jpg » 가리왕산의 숲은 국내 최고의 활엽수림의 하나로 꼽힌다. 슬로프 예정지의 신갈나무숲 모습.

 

ga9.jpg » 공사가 시작되면 베어질 200여 그루 거목의 하나인 가슴높이 지름 110㎝인 들메나무.  

 

가리왕산 슬로프 예정지에는 아름드리나무 200여그루를 포함한 5만여그루의 나무가 마지막일지 모르는 봄을 맞고 있다.
 

소치 올림픽 개막식 때 세계 언론은 사상 최고의 비용과 날림공사, 환경 파괴를 지적했다. 그들의 눈에, 똑같이 보호구역의 활엽수림을 베고 들어선 소치와 가리왕산의 활강 경기장이 달라 보일까.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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