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 바다사자도 가까이 다가가도 본체만체
'살아있는 진화 실험실' 갈라파고스를 가다 ① 진화론 낳은 동물들
1835년 26살 다윈이 5주간 머물렀다24년 뒤 진화론으로 세상을 뒤집었다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1호에콰도르에서 1000㎞, 12개 큰 섬도착 즉시 만난 첫 손님은 ‘다윈 핀치’200만년 전 남미서 와 15개 종 진화항구 주변 바닷가는 바다사자 천국뱃전 모래밭 벤치서 자거나 어슬렁공룡의 모습의 바다이구아나는해조류 먹고 사는 유일한 파충류육지 새 80%, 포유류 97%, 식물 30%세계에서 이곳에만 사는 특산종자연선택이 새 생물을 낳는다는세상에 다시 없는 마술 같은 섬

갈라파고스 제도는 적도에 있는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서 태평양 쪽으로 약 1000㎞ 떨어진 망망대해에 12개의 큰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 섬의 가장 유명한 방문객은 1835년 9월 15일 상륙한 찰스 다윈(1809~1882)이다.

영국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를 타고 온 이 26살짜리 박물학자는 섬에서 5주 동안 머물며 동·식물과 지질을 조사하고 표본을 채집했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 진화라는 섬광 같은 아이디어를 얻은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황량하고 건조한 용암지대에서 열대지방이면서도 화려한 새나 꽃 한 송이 찾지 못해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갈라파고스에서의 경험은 진화론의 뼈대 가운데 하나인 ‘섬 생물학’을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오랜 숙고 끝에 1859년 내놓은 <종의 기원>에서 신이 생물을 창조했다는 당시의 신념체계를 부수는 논거를 갈라파고스의 생물에서 찾았다.
본토에서 이주한 새인 핀치는 환경과 먹이에 적응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고유종이 돼 있었다. 섬에서 형성된 새로운 갈라파고스땅거북은 옆의 섬으로 퍼져가지 못하고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다. 창조가 아니라 자연선택이 새로운 생물을 낳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개체수 5년 새 연평균 8.7%씩 감소

지난달 17일 갈라파고스 산크리스토발 섬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만난 동물은 ‘다윈 핀치’였다. 이 섬의 동물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이처럼 중요한 새가 참새처럼 흔할 줄은 몰랐다.
이후 식당과 선창가, 산책로 어디서도 만날 수 있었던 다윈 핀치는 약 200만년 전 남아메리카에서 온 풍금새 과의 새가 15가지 새로운 고유종으로 진화했다. 화산이 분출해 생긴 섬 갈라파고스에는 경쟁자가 없었지만 환경은 본토와 전혀 달랐다.

다윈 핀치는 먹이에 따라 몸과 부리의 크기와 모양 등이 달라져 땅바닥의 씨앗을 먹거나 선인장의 꿀을 빨고 심지어 부족한 물을 다른 새의 알이나 이구아나의 피를 빨아 해결하는 종도 생겨났다. 핀치의 중요성을 나중에야 안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에서 “이 작고 메마른 바위섬이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창조력에 놀랐다”고 적었다. 그 창조의 주체는 바로 자연선택이다. 신이라면 남아메리카와 전혀 환경이 다른 섬에 비슷한 생물을 만들어 놓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여기선 총이 사치품’이라고 다윈이 말했듯이, 갈라파고스의 동물은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애초 포식자가 없는 환경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산크리스토발 섬 레크 만이나 이사벨라 섬 푸에르토 비야밀 등 항구 근처 해변은 갈라파고스바다사자 차지였다.
빈 보트의 뱃전은 물론이고 선창가와 모래밭, 산책로의 벤치 등에서 잠자는 바다사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수산물이 풍부한 바다와 사람의 보호로 걱정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최근 조사에서 이 고유종의 개체수는 2300~4100마리로 지난 5년 사이 연평균 8.7%씩 감소하고 있다.

파랑발부비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바닷속 정어리떼를 향해 총알처럼 다이빙하는 모습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곳에서는 관광객에게 독특한 남색 발을 다 보여줄 정도로 접근을 허용한다. 최근 추산된 전체 개체수는 약 6400마리로 1960년대 이후 절반으로 줄었다.

150살 장수와 증식·복원 사업 덕
공룡의 모습을 한 갈라파고스의 바다이구아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닷속에서 해조류를 뜯어 먹고 사는 파충류이다. 최고 12m 수심까지 잠수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바위를 움켜쥔 채 한 시간 동안 해조를 뜯은 뒤 해변의 검은 용암에 엎드려 체온을 올린다.

바다사자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고, 콧바람으로 소금기를 뿜어내 놀라게 하기도 한다. 갈라파고스 바다이구아나는 800만년 전 육지이구아나에서 갈라져 나왔다. 현재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오랜 섬의 나이가 300만년이니, 지금은 물에 잠긴 과거 섬에서 출현한 뒤 새로 생긴 섬으로 징검다리 건너듯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가뭄이 끝나고 우기에 접어든 갈라파고스는 섬 곳곳에서 나무에 새싹이 돋고 동물들은 짝짓기에 한창이었다. 15일 이사벨라 섬 거북 증식 센터에서는 갈라파고스땅거북이 둔하고 육중한 몸을 일으켜 짝짓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거북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이때가 유일하다. 인근 해상에서는 푸른바다거북이 바다 표면에서 짝짓기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 거북은 갈라파고스 해안 모래밭에 알을 낳는다.

다윈은 다른 동물이 없는 갈라파고스에서 땅거북과 육지이구아나가 초식동물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곳은 세상에 다시 없다”고 했다. 실제로 해적과 포경선원, 스페인 점령자들이 땅거북을 신선한 고기 대용으로 대대적으로 포획하고 염소 등 가축을 풀어놓기 전까지 이곳 생태계의 토대를 이룬 것은 거북과 이구아나였다.


몸무게 250㎏까지 자라는 땅거북은 남아메리카에서 한 종이 건너와 섬마다 다른 14종으로 분화했으나 10만~20만 마리가 남획돼 현재는 10종 2만여 마리만 남았다. 그나마 이 거대 거북이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150살 이상 장수한다는 점과 증식·복원 사업 덕분이다.
이사벨라 섬 증식 센터의 자료를 보면, 1994년 이후 이 센터에서 번식시켜 늘린 개체는 모두 2909마리에 이른다. 여행 안내자인 하이로(30)는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땅거북을 잡아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 된다”며 “암컷이 28~30살은 돼야 번식을 시작하는 등 번식력이 떨어져 증식에 애를 먹는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크기 주변해역 보호구역으로

갈라파고스 제도는 지구 최고의 특산종 비율을 자랑한다. 육지 새의 80%, 파충류와 육상 포유류의 97%, 식물의 30%, 바닷물고기의 50% 이상이 세계에서 이곳에만 산다.
에콰도르 정부는 일찍이 1959년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고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1998년에는 한반도 면적에 필적하는 주변 해역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상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는 갈라파고스 북쪽 해역 3만8000㎢를 상어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이런 보호노력에도 갈라파고스의 생태계는 위험에 놓여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관광 열풍 탓이다. 애초 이 섬 생태계가 지탱할 수 있는 연평균 관광객 규모는 1만2000명으로 추산됐지만 지난해 그 수는 22만명에 이르렀다. 주민 인구의 10배 규모인 관광객은 외래종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산타크루즈 섬에 있는 찰스다윈재단의 파올라 디아스 홍보책임자는 “갈라파고스의 최대 현안은 외래종 문제”라며 “우리 눈앞에서 진화가 진행 중인 마술 같은 섬을 지키기 위한 과학적 연구와 이를 뒷받침할 재정적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갈라파고스(에콰도르)/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살아있는 진화 실험실' 갈라파고스를 가다 ② 비상 걸린 고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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