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나은 고릴라, 고당도 과일의 속임수 이겼다

조홍섭 2016. 07. 15
조회수 49777 추천수 0

칼로리 없고 설탕 2000배 단 열매와 영장류의 진화 ‘군비 경쟁’

영장류 가운데 고릴라만 돌연변이로 단맛 못 느껴 헛고생 안 해 


Jackhynes _Western_lowland_gorilla_(Gorilla_gorilla_gorilla)_closeup_eating.jpg » 웨스턴로우랜드고릴라의 주식은 과일과 식물이어서 둘 사이의 공진화와 군비 경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Jackhynes,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봉과 카메룬 등 서아프리카의 숲에는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오우블리’라고 부르는 덩굴식물(학명 Pentadiplandra brazzeana)이 있다. 여기서 열리는 자두만 한 열매는 아주 달다. 


오우블리란 말은 ‘잊다’는 뜻인데, 젖먹이가 이 열매를 한 번 맛보면 집에 돌아가 엄마 젖을 찾는 걸 잊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씨앗을 둘러싼 섬유조직에 ‘브라제인’이란 단백질이 들어있는데 당도가 설탕의 2000배에 이른다.


Scamperdale.jpg » 서아프리카에서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가 즐겨 따먹는 고당도의 열매 펜타디플란드라. 토착 이름은 오우블리이다. Scamperdale, 플리커스


게다가 칼로리는 거의 없어 당뇨병 환자에게 안전한 저칼로리 설탕 대체 감미료 원료로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브라제인을 인공합성해 기업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그린피스는 원주민의 토착 생물지식을 약탈하는 ‘생물 해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아프리카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이 식물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토착 지식도 유인원이나 원숭이로부터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 이 지역에 사는 50종의 영장류는 모두 이 열매를 즐겨 먹는다.


Brazzeinmj.jpg » 설탕보다 2000배 당도가 높고 칼로리는 거의 없는 브라제인의 분자구조. 위키미디어 코먼스


달기만 하고 칼로리가 없다는 건 당분 과다 섭취가 문제인 현대 사회에서는 매력적인 속성이겠지만 자연 생태계에선 일종의 속임수다. 달콤해서 영양분이 많은 줄 알고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먹었는데 몸에 남는 효과가 없다면 그 시간에 다른 과일을 먹는 것보다 못하다.


물론, 식물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에너지를 덜 들이고 그럴듯한 열매를 만들어 동물을 끌어들인다면, 적은 비용으로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자연의 선택을 받는 멋진 적응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아프리카에 사는 서부로랜드고릴라는 이 열매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미국 브렌다 브래들리 조지워싱턴대 인류학자 등 연구자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주목했다. <미국 자연인류학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들은 고릴라와 속임수를 쓰는 식물 사이에 진화의 ‘군비경쟁’이 벌어졌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고릴라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열매를 먹는데, 오우블리의 분포구역은 고릴라의 먹이터와 완전히 일치한다. 연구자들은 다른 영장류를 그토록 잡아끄는 단맛을 고릴라는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유전자를 분석해 본 결과 그런 가설이 맞았다. 사람 등 다른 모든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고릴라만 브라제인의 맛을 느끼지 못하도록 돼 있었다. 단맛 수용기를 나타내는 고릴라의 TAS1R3 유전자에는 두 개의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Wikihobby_PICT8002_edited.JPG » 서아프리카 열대지역 원산인 웨스턴로우랜드고릴라는 온대 지방 동물원에서 늘 식물을 탐색한다. Wikihobb,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브라제인의 맛을 느끼는 유전자가 자리 잡은 것은 아주 오래여서 원숭이와 유인원이 분리된 2500만~3000만년 전 이전의 일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고릴라는 영장류를 씨앗 확산자로 값싸게 부리려는 식물의 전략에 반기를 들었다. 맛은 좋지만 몸에 나쁜 열매에 끌리지 않도록 돌연변이가 일어난 고릴라가 더 잘 적응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연구자들은 아프리카 동부에 사는 고릴라의 서식지에는 이 식물이 전혀 분포하지 않는데도 돌연변이가 그대로 있다는 데서, 새로운 돌연변이가 동부 고릴라와 서부 고릴라가 분리된 100만년 훨씬 이전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영장류와 속씨식물은 열매를 제공하고 씨를 퍼뜨리는 도움을 주고 받으며 함께 진화했다. 그 관계가 늘 호혜적인 것은 아니다. 슬쩍 속이고 상대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벌어진다. 바로 진화의 군비경쟁이다.


연구자들은 “감각을 기반으로 한 속임수의 비슷한 사례로는 말벌의 먹이를 흉내 내 끌어들인 말벌이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하는 난을 비롯해, 지방산이 있는 것처럼 화학적 속임수로 개미가 씨앗을 퍼뜨리도록 하는 식물 등 많다”며 “이번 연구는 그런 속임수와 나아가 이에 대한 대항 적응이 단순한 유전적 메커니즘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laine E. Guevara et. al, Potential arms race in the coevolution of primats and angiosperms: brazzein sweet proteins and gorilla taste receptors.

The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DOI: 10.1002/ajpa.2304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개구리 사냥하는 거미, 나뭇잎 엮어 덫으로 사용개구리 사냥하는 거미, 나뭇잎 엮어 덫으로 사용

    조홍섭 | 2021. 01. 11

    농발거미 나뭇잎 2장 엮어 은신처 겸 덫으로…세계적으로도 개구리는 거미 단골 먹이 푹푹 찌는 열대우림에서 나뭇잎이 드리운 그늘은 나무 개구리에게 더위와 포식자를 피해 한숨 돌릴 매력적인 장소이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에서 크고 빠른 사냥꾼인...

  • 개 가축화, ‘단백질 중독’ 피하려 남는 살코기 주다 시작?개 가축화, ‘단백질 중독’ 피하려 남는 살코기 주다 시작?

    조홍섭 | 2021. 01. 08

    사냥감 살코기의 45%는 남아돌아…데려온 애완용 새끼 늑대 먹였을 것 .개는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일찍 가축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늑대가 가축이 됐는지는 오랜 논란거리다.개의 골격이 발견된 가장 오랜 구석기 유적은 1만4...

  • 새를 닮은 포유류, 오리너구리의 비밀새를 닮은 포유류, 오리너구리의 비밀

    조홍섭 | 2021. 01. 08

    젖샘 있으면서 알 노른자도 만들어…지금은 사라진 고대 포유류 흔적 1799년 영국 박물관 학예사 조지 쇼는 식민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보내온 이상한 동물 표본을 받았다. 오리 주둥이에 비버 꼬리와 수달의 발을 지닌 이 동물을 쇼는 진기한 ...

  • 말의 몸통 지닌 ‘키작은’ 기린 발견, 유전 다양성 감소 탓?말의 몸통 지닌 ‘키작은’ 기린 발견, 유전 다양성 감소 탓?

    조홍섭 | 2021. 01. 07

    우간다와 나미비아서 각 1마리 확인…동물원, 가축선 흔해도 야생 드물어 .아프리카 우간다와 나미비아에서 돌연변이로 인한 골격발육 이상으로 추정되는 왜소증 기린이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왜소증은 근친교배가 이뤄지는 가축에서 흔히 발견되지만 야생...

  • 스타 동물 자이언트판다 그늘서 반달곰 운다스타 동물 자이언트판다 그늘서 반달곰 운다

    조홍섭 | 2021. 01. 06

    판다 좋아하는 고산 중심 보호구역…반달곰, 사향노루 보호 못 받아 급감 자이언트판다나 호랑이처럼 카리스마 있고 넓은 영역에서 사는 동물을 우산종 또는 깃대종이라고 한다. 이 동물만 보전하면 그 지역에 함께 사는 다른 많은 동물도 보전되는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