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위에서 어울린 해금과 첼로의 선율

윤주옥 201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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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평화로워 행복했던 지리산-섬진강 작은 문화제를 보고

구례에서 주민과 시민단체 한 자리, 가마솥에선 고구마 익어가고

 

세상엔 알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

하늘에 별이 몇 개인지, 바닷가 모래가 몇 알인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세상엔 정확히 몰라도 그냥 느낄 수 있는 일들도 많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 가난하지만 나눌 줄 아는 이웃의 마음은 계량할 수 없으나 보는 사람까지 따뜻하게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고, 남한에서 가장 큰 육상 국립공원이며, 백두대간의 시작점인 지리산,

마을과 논밭, 산과 평야를 휘돌아 흐르며,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섬진강,

지리산과 섬진강이 품고 있는 생명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섬진강과 지리산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감사하게 한다. 


2011년 10월 1일, 구례 문척에 있는 오봉정사에서 '제1회 지리산-섬진강 작은 문화제'(이하 작은 문화제)가 열렸다.

섬진강가 마을에서 주민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자 하여,

지리산을 바라보며 지리산과 섬진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자 하여 만들어진 자리였다. 

 

지리산국립공원남부사무소, 구례문화원, 지리산과 섬진강 사람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등 구례에 있는 기관, 단체들의 느슨한 모임 '지리산-섬진강 그린 네트워크'가 준비한 자리였다. 

장소를 답사하고, 현수막을 설치하고, 고구마를 찌고, 출연진을 섭외하는 등 작은 문화제와 관련한 모든 일을 나누고 조율했다.

 

늦은 5시 30분이 지나며 오봉정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공연자들은 사전 연습을 하고, 가마솥에선 고구마가 익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듯이,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꽃은 끝이 없다. 

오봉정사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이야기들이 담을 넘어 섬진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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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6시 10분, 작은 문화제가 시작됐다.

김진광 소장 (지리산국립공원남부사무소)이 작은 문화제 개최 의미를 이야기하고, 박태순 이장님(화정마을)과 마을 어르신들에게 감사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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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가에 살고 있는 박두규 시인 (지리산사람들 대표)이 '두텁나루에서'를 낭송했다.

그는 작은 문화제를 위해 '두텁나무에서'를 지었다 한다. 

'두텁'은 두꺼비의 옛말이고, 섬진강(蟾津江)의 섬은 두꺼비 섬자이니 '두텁나루에서'는 섬진강에서 섬진강을 바라보며 쓴 시일 것이다.

툇마루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두워지는 하루의 끝자락에 앉아

서서히 빛을 발하는 강줄기를 본다.

별들은 강둑에 숨어 어둠을 기다리고

강에는 어김없이 물고기들이 뛰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이 뛰는 이유를 모른다.

그랬지. 이유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

누군가가 떠나면 떠나는 것일 뿐이지.

그렇게 어둠은 서서히 두텁나루에 닿았다.

 

이제 강을 건너려는 일은 그만두고

강을 바라보는 일에 열중하리라.

바람이 부는 일이나 어둠이 내리는 일이나

또는 아침이 오는 것처럼

늘 그렇게 저절로 그러하듯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에 힘쓰리라.

 

하나 둘 켜지는 먼 마을의 불빛들

차분하게 어둠을 맞이하는 이런 저녁처럼

이제 강을 건너려 하기 보다는

강을 바라보는 일에 열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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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영 님과 노윤정 님이 해금과 첼로를 합주했다.

높은 음의 해금과 낮은 음의 첼로가 어우러지니 이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되는가 보다.

섬진강 위로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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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님이 플루트로 '저 구름 흘러가는 곳'과 '칠갑산'을 불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낯선 악기에서 나오는 음을 놓치지 않으셨다. 가무에 능한 민족이라더니, 놀랄만한 순발력이다.  

 

'콩밭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많아 호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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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와 벚나무와 산수유나무가 지켜보는 가운데 작은 문화제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어둠은 작은 것을 더 빛나게 하고, 서늘함은 따뜻함을 그리워하게 한다.

어둠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보이지 않게 하였으나, 마음 속 각인된 지리산과 섬진강은 어두워질수록 더 선명해졌다.

모두들 지리산과 섬진강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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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 이장님이 섬진강과 화정마을, 오봉정사 이야기를 해주셨다.

마을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들려주려 흰 종이에 빼곡히 쓴 이야기들이 한 줄 한 줄 읽혀졌다.

꽃쟁이라 불렸던 마을, 섬진강을 건너기 위한 나루가 있었던 마을,

문척면이 간전면과 나눠지기 전 면사무소가 있던 마을,

경당 임현주 선생이 후학들을 강학했던 오봉정사가 있는 마을, 구례에서 벚꽃이 가장 아름답다는 오봉정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을, 

작은 문화제가 열리는 곳은 작지만 강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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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을태 명창이 흥부가와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어깨가 들썩이고, 여기저기서 추임새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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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 님이 오카리나 연주를 했다.

뻐꾸기와 휘파람새가 날아왔다.

새들이 날아다니고, 사자의 미소 짓던 그림들,

오봉정사에 모인 모두는 지구를 생각하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던 연주를 오랫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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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웅 님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한곡 더'가 끝나지 않는 걸로 봐서, 지리산 자락엔 그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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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과 섬진강에 어둠이 짙어지고, 어르신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쯤 작은 문화제는 마무리되었다.

쌀쌀해진 날씨에도 끝까지 남아서 박수치고, 웃어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내년에 또 만나자고 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지켜내는 일이 우리 모두의 일임을 잊지 말자고 했다.

2011년 10월 1일 이후,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하여 훈훈했던, 작고 소박하여 더 행복했던 작은 문화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글 윤주옥/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처장, 사진 허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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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현장 감시와 정책 개발을 통한 국립공원의 대표적 파수꾼이다. 현재 전남 구례에 거주하며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의 자연을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windjuok@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windjiri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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