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물로 가는 가시고기, 촌충이 시켜서

201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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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충에 감염된 큰가시고기 선호 수온 변화, 촌충의 ‘좀비’로 바뀌어
영국 연구자, 기후변화로 기생충 만연 가능성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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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가기고기의 뱃속에서 배가 터질 듯이 크게 자란 새 촌충. 해부한 모습이다.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연안에서 살다 산란기에 하천을 떼지어 올라 새처럼 둥지를 지어 번식하는 큰가시고기는 겁이 많은 물고기이다. 하지만 어떤 큰가시고기는 마치 날 잡아보라는 듯 얕은 물에서 홀로 느릿느릿 헤엄친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이런 겁 없는 큰가시고기가 더 많아질지 모른다.
 

영국 레이세스터 대학 생물학자인 비키 매크냅과 이아인 바버는 새 촌충에 감염되면 큰가시고기의 선호 수온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국제학술지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 온라인판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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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촌충의 한살이. 그림=위키미디아 커먼스.

 

다른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새 촌충은 복잡한 한살이를 겪는다. 물새의 배설물과 함께 물가에 떨어진 촌충의 애벌레는 물벼룩 등 요각류에 들러붙은 뒤 큰가시고기에 잡아먹힌다. 가시고기의 몸속에서 충분히 자란 촌충은 다시 새에게 먹혀 한살이를 마무리 짓는다.
 

큰가시고기의 몸속에서 촌충은 알을 낳을 만큼 성숙하는 중요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기생충은 숙주인 가시고기를 마치 좀비처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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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가시고기의 골격(위)와 촌충에 감염된 모습.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큰가시고기는 수온이 15도 정도인 물을 좋아한다. 수온이 높아지면 몸의 대사를 위한 에너지 소비가 커질 뿐더러 기생충도 늘어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꺼린다.
 

그런데 새 촌충에 감염된 큰가시고기는 수온이 20도인 미지근한 물을 찾아 간다. 이런 행동은 순전히 촌충을 위한 것이다.
 

연구진의 실험 결과 촌충은 20도에서 8주면 105㎎으로 자라 20만 개의 알을 낳았다. 하지만 15도에선 26㎎으로밖에 못 자라 산란을 거의 못 했고 알의 수도 1만 2000개에 그쳤다.
 

감염된 큰가시고기는 촌충이 잘 자라는 20도의 물을 찾아 떠난다. 연구진은 “이런 행동 변화는 감염의 부차적 효과가 아니라 기생충이 유도한 행동변화인 것 같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런 ‘좀비 효과’의 사례는 다른 생물에서도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감염된 큰가시고기는 기생충의 번식기에 맞춰 선호하는 수온을 15도에서 20도로 바꾼다. 더 따뜻한 그런 수온의 물은 물 표면이나 물 가장자리에 드물게 분포하며, 큰가시고기는 그런 곳에 머물기 때문에 포식자에게 쉽게 잡아먹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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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촌충 성체의 모습.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이 논문은 기후변화가 숙주와 기생생물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인위적으로 온도가 높아지면 기생충의 성장이 빨라지는 한편 숙주가 더운 미소 서식지를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두 요인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양의 되먹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큰가시고기 연구로 드러난 양의 되먹임은 작은 온도 상승이라도 기생충이 수 생태계의 숙주 집단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기생충이 더 빨리 자라 더 많이 번식하고, 포직자에게 더 쉽게 잡아먹히기 때문에 기생충의 한살이는 더 신속하게 완성되는 것이다.

 

큰가시고기는 동해 남부 등 전국 연안에 많이 살며 일본, 유럽, 북아메리카에도 분포한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의 원문 정보

Global Change Biology
Accepted Article (Accepted, unedited articles published online for future issues)

Some (worms) like it hot: fish parasites grow faster in warmer water, and alter host thermal preferences
Vicki Macnab, Iain BarberDOI: 10.1111/j.1365-2486.2011.02595.x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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