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 뺨치는 바람까마귀, 거짓 경고음 51가지 구사

조홍섭 2014. 05. 02
조회수 37854 추천수 1

다른 종 경고음 흉내 내 달아나게 한 뒤 미어캣 등의 먹이 훔쳐

같은 거짓말 되풀이하지 않는 전략도…높은 지적 능력 반영

 

dr1.jpg » 능수능란한 거짓 경보음으로 먹이를 종종 확보하는 아프리카 바람까마귀. 사진=톰 플라워

 
동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허위 경보를 내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래 봐야 득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거짓 경보를 발령해 이득을 보는 개체가 있다 하더라도 거짓이 반복되면 효과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말해 주는 교훈이다.
 

그런데 거짓말을 그때그때 달리하면 어떨까. 남아프리카공화국 연구자들은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바람까마귀의 일종에게서 그런 자질을 발견했다.
 

dr2.jpg » '어디 만만하게 속여먹을 동물이 없나?' 아프리카 바람까마귀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톰 플라워

 

톰 플라워 케이프타운대 진화생물학자 등 연구진은 2일치 과학저널 <사이언스> 온라인판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이 바람까마귀가 새들 세계에서 ‘속임수의 달인’ 경지에 올랐음을 800시간 이상의 현장 관찰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고 반들반들한 깃털에 붉은 눈을 한 이 영리한 새는 사실, 보통 때는 미어캣이나 무리를 이루는 새인 파이드 배블러 같은 동물에게 매우 유용한 존재이다. 매 같은 포식자의 접근을 미리 알려주기 때문이다.
 

dr4.jpg » 칼라하리 사막에서 바람까마귀는 매의 공격을 미리 미어캣에게 알려주는 좋은 친구이다. 하지만 대가를 꼭 받아간다. 사진=톰 플라워

 

그런데 바람까마귀가 배가 고프거나 미어캣이 땅속에서 맛있어 보이는 애벌레나 도마뱀부치를 잡았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바람까마귀는 갑자기 미어캣의 경고음을 흉내내 질러대는 것이다. 놀란 동물이 먹이를 땅에 내버려 두고 구멍 속으로 달아난 뒤 거짓말쟁이 새는 맛난 요기를 한다. 평소 경계를 서주는 대가를 받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거짓말을 반복해도 먹힐까. 연구진이 파이드 배블러에게 바람까마귀의 경고음을 반복해서 틀어주는 실험을 해 보니, 같은 소리를 세 번 연속 들으면 배블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 경고음을 다른 것으로 바꾸자 혼비백산 달아났다.
 

dr5.jpg » 바람까마귀의 속임수에 단골로 당하는 파이드 배블러. 사진=톰 플라워

 

연구진은 실제로 이 바람까마귀가 무려 51종의 경고음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들은 먹이의 23%를 속임수를 써 얻어냈는데, 42마리의 바람까마귀가 151차례 먹이를 훔치는 모습을 지켜본 결과 75%에서 경계음 소리를 바꾸는 전략을 썼다.
 

특히 먼저 낸 경계음이 효과가 없으면 곧바로 다른 레퍼토리를 동원하는 능력을 보였다. 최고 32가지 경고음 레퍼토리를 구사하는 개체도 있었다. 이들은 분명히 ‘양치기 소년’보다 한 수 위인 셈이다.
 

dr3.jpg » '이번엔 어떤 동물의 경고음을 써먹을까?' 아프리카 바람까마귀는 최고 32가지 경고음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사진=톰 플라워

 

플라워는 “이 바람까마귀는 전략적으로 경고음을 낸다. 목표물이 그 소리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 소리를 바꾼다. 그렇게 해서 종종 ‘양치기 소년’의 문제를 이겨 낸다”라고 이 잡지의 뉴스 사이트인 <사이언스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칼 버그 미국 텍사스대 브라운스빌 캠퍼스 조류학자는 “전략적인 속임수를 쓰는 것을 보면 이 새가 정교한 인식능력을 지녔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같은 사이트 인터뷰에서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om P. Flower, Deception by Flexible Alarm Mimicry in an African Bird, Science Vol 344, 2 MAY 2014, Doi: 10.1126/science.124972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3D 가짜 거북 알’로 불법 유통망 추적‘3D 가짜 거북 알’로 불법 유통망 추적

    조홍섭 | 2020. 10. 23

    코스타리카서 현장 시험 성공, 1시간마다 위치 정보 전송입체(3D) 프린터로 만들어 겉모습은 진짜와 똑같고 안에는 위성 위치추적 장치를 넣은 가짜 거북 알이 개발돼 불법 채취꾼을 잡고 유통망을 파악하는 데 쓰일 수 있게 됐다. 중미 코스...

  • 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

    조홍섭 | 2020. 10. 22

    늦가을엔 바이러스 감염 대응…‘겨울잠’ 단백질도 많아져온대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4계절은 가장 분명한 환경 변화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몸은 4계절이 아닌 2계절을 산다는 사실이 분자 차원의 추적 연구결과 밝혀졌다.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자...

  • 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

    조홍섭 | 2020. 10. 21

    더워진 봄 산란 앞당기면 새끼 굶주릴 위험 커져, 30년 장기연구 결과기후변화는 평균으로 오지 않는다. 봄은 일찍 찾아오고 평균기온은 오르지만 꽃샘추위는 잦아진다. 동물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장기 현장연구로 밝혀...

  • 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20. 10. 19

    인도보다 3천년 앞서 쌀 재배, 고혈당 막는 유전적 적응 일어나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은 오랜 벼농사 덕분에 고탄수화물 식사로 인한 비만과 당뇨병 등의 부작용을 막는 유전적 적응을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오랜 목축 역사가 있는 유럽 ...

  • 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

    조홍섭 | 2020. 10. 16

    헬싱키 공항 현장 배치…80∼90% 정확도 감염자 실시간 찾아요양원 식구들이 아침마다 돌아가며 개와 아침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보다 10만배나 뛰어난 개의 후각을 이...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