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영양 똥처럼 위장, 쇠똥구리 속여 땅에 묻게

조홍섭 2015.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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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벼목 식물의 쇠똥구리 상대 속임수 전략 확인

씨앗의 크기와 형태는 물론 배설물 냄새까지 진짜와 빼닮아

 

IQEX200308002220.jpg » 쇠똥구리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초식동물 배설물을 치워주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런데 쇠똥구리를 속여 씨앗을 퍼뜨리는 식물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은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굴려가는 쇠똥구리.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식물이 번식을 위해 동물을 속이는 일은 흔하다. 어떤 난의 꽃은 암컷 벌 무늬를 갖춘데다 페로몬까지 풍겨 수벌을 끌어들이고 그 과정에서 꽃가루받이를 한다.
 

그런데 씨앗으로 곤충을 속이는 식물의 번식전략이 처음으로 발견됐다고 제러미 미즐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진화생물학자 등이 과학저널 <네이처 플랜츠> 5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지역은 남아공의 건조한 덤불지대로 산불이 잦은 곳이다. 이곳에 분포하는 벼목의 한 고유식물은 지름이 1㎝가 넘는 크고 둥근 씨앗을 맺는다. 가까운 친척들의 씨앗이 매끈한 검은색인 데 비해 이 식물의 씨앗은 훨씬 큰데다 짙은 갈색의 거친 표피를 지녔다.
 

이런 형태는 이 지역에 사는 영양의 배설물과 꼭 닮았다. 놀랍게도 이 씨앗은 자극적인 냄새를 풍겼는데, 영양의 배설물에서 나는 것과 흡사했다.

 

du.jpg » 그림=제러미 미즐리 외 <네이처 플랜츠>
 

연구자들은 이런 씨앗의 크기와 형태, 냄새로 미루어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흉내 내 쇠똥구리를 속이려는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실험에 나섰다. 195개의 씨앗을 던져놓았는데 하루 만에 27%가 쇠똥구리에 의해 땅속에 묻혀 있었다.
 

이 지역에서 식물 씨앗을 주로 먹는 쥐는 이 씨앗이 내는 휘발성 물질은 싫어했다. 하지만 쇠똥구리한테는 잘 굴러가는 배설물로 보였을 것이다.

 

outrampsann.jpg » 씨앗을 영양의 배설물과 비슷하게 만들어 쇠똥구리를 속이는 남아공 고유종 식물.
 

연구자들은 땅에 묻힌 씨앗에는 쇠똥구리의 알이 없었고 뜯어먹은 흔적도 없는 것으로 보아, 쇠똥구리가 알을 땅에 묻은 뒤에야 먹지 못하는 것으로 알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쇠똥구리는 배설물을 굴려 가 땅에 묻은 뒤 알을 낳고 일부를 먹기도 한다.
 

이런 속임수는 산불이 잦고 불에 탄 뒤 재생하지 못하는 이 식물에 매우 중요한 무기였을 것이다. 쇠똥구리가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데다 수분이 많은 땅속에 심어주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쇠똥구리가 가짜 씨앗을 배설물로 착각해 굴려 가 묻는 모습

 


물론, 이 식물의 속임수가 통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초식동물의 배설물과 쇠똥구리가 적절한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배설물이 너무 많으면 씨앗이 선택될 기회가 적을 것이고, 배설물이 너무 적으면 그것을 먹는 쇠똥구리도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씨앗이 딱딱한데다 쇠똥구리한테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기 때문에 식물의 이런 씨앗 확산은 놀라운 속임수의 사례”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dgley, J. J., White, J. D. M., Johnson, S. D. and G. N. Bronner. 2015. Faecal mimicry by plants found in seeds that fool dung beetles. Nature Plants, Article number: 15141(2015) doi:10.1038/nplants.2015.14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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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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