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빙하기 너구리의 세계적 피난처였다

조홍섭 2013. 07. 01
조회수 36335 추천수 1

2만년 전 빙하기 절정일 때 한반도에 작은 집단 살아남아 이후 유라시아 확산

한반도와 일본 연결됐지만 너구리 이동은 없어…소련 방사로 유럽은 `외래종 너구리' 골치

 

강재훈.jpg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한국산 너구리. 빙하기의 유산임이 드러났다. 사진=강재훈 기자

 

신생대 홍적세의 마지막 빙하기가 맹위를 떨치던 2만~1만 8000년 전, 북아메리카와 북유럽, 러시아 등 북반구 육지의 30%가 두꺼운 얼음에 덮여 있었다. 춥고 건조해진 기후에 맞서 동물들의 선택은 두 가지, 따뜻한 곳으로 대피하거나 사멸하는 것뿐이었다.
 

한반도가 빙하기 너구리의 중요한 피난처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너구리는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몇 곳에서 근근이 살아남은 뒤 빙하기가 끝나자 급속히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나갔음이 계통생물지리학 연구로 드러났다.
 

민미숙 서울대 수의대 박사 등 한국과 일본, 베트남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동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동아시아의 너구리가 빙하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고립되어 분화하고 다시 확산해 나갔는지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러시아, 중국, 베트남, 일본 등에서 너구리 147개체의 표본을 대상으로 유전자를 확보해 조사했다. 세계의 너구리에는 모두 6가지 아종이 있다. 온대 숲 속에 사는 이 동물의 분포지가 빙하기 동안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map1.jpg » 빙하기 너구리 피난처의 네가지 가설. 일본과 유라시아 아종의 유전적 차이로 가설 a와 c는 맞지 않고, 유라시아 너구리 유전자에 연속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가설 d가 가장 그럴듯하다고 논문은 결론 내렸다. 그림=민미숙 외, <동물학 저널>

 

빙하기가 오면서 한반도는 얼음에 뒤덮이지는 않았지만 환경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아지면서 황해와 동중국해는 사막이 펼쳐진 육지로 변해 한반도와 일본은 연결됐다.
 

당시의 꽃가루를 분석해 보면, 현재 백두산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잣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 한대성 수종이 강원도 속초에까지 분포했다. 또 장마전선은 일본에 머물러 한반도 주변은 매머드가 떼지어 다니는 건조한 초원지대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너구리의 이동에 관해 연구진이 세운 가설은 네 가지이다. 한반도와 중국 동부, 그리고 일본이 하나의 커다란 피난처를 형성했거나 두 개 이상의 작은 피난처가 있었을 가능성, 또 이들이 각각 일본과 연결되거나 연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따져 보았다.
 

640px-Tanuki01_960.jpg » 일본 아종 너구리. 대륙 아종과 오래 격리돼 별개의 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몸집이 작고 치아 모양이 다르며 염색체 수도 유라시아 아종과 차이가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먼저, 한반도와 일본 너구리 아종의 유전적 차이는 2.4%로 한국-러시아 0.4%, 한국-중국 0.6%, 한국-베트남 0.6%보다 컸다. 한국 이외의 다른 유라시아 아종과 일본 아종의 차이도 러시아-일본 2.4%, 중국-일본 2.5%, 베트남-일본 2.3% 등으로 컸다.
 

민 박사는 “이런 결과는 빙하기 때 한반도와 일본이 육지로 연결되었어도 너구리 집단의 이동과 교류는 없었음을 보여준다. 매머드와 사슴 등 큰 동물은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행동반경이 좁은 너구리는 불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너구리의 일본 아종은 염색체 수가 38개로 한국과 유라시아 아종의 54개와 차이가 있고 치아 등 외형적인 차이도 두드러져 오랫동안 고립돼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Chermundy_Raccoon_Dog_area.png » 세계의 너구리 분포지역. 파란색은 자생지, 붉은색은 유입지를 가리킨다. 그림=체르문디,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번 연구에서 한반도의 너구리 아종은 유전 다양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민 박사는 “빙하기 때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집단이 유전다양성에서 일종의 병목현상을 일으켰다. 유라시아의 너구리 피난처는 한반도 말고도 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 연구로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논문은 이런 요인 말고도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남획도 유전다양성 감소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았다.
 

반도는 지형상의 이점 덕분에 빙하기 때 생물들의 피난처 구실을 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이탈리아와 이베리아 반도는 그런 예이고,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한반도와 중국 동부도 그런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참개구리, 꼬리치레도롱뇽, 흰넓적다리붉은쥐 등은 한반도와 중국 동부, 러시아 극동 지방이 빙하기의 피난처 구실을 해 살아남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빙하기가 지나자 너구리는 피난처를 벗어나 급속히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간빙기의 온화한 기후보다 이런 확산을 더욱 부추긴 것은 인위적 방사였다.
 

640px-Nyctereutes_procyonoides_4_(Piotr_Kuczynski).jpg » 러시아 아종 너구리. 몸이 크고 털이 길다. 소련이 모피용으로 대량 이식한 아종이다. 사진=피오트르 쿠친스키, 위키미디어 코먼스

 

Raccoon_dog_12.jpg » 모피용으로 기르고 있는 너구리.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소련은 1928년부터 1950년 사이 모피를 얻기 위해 시베리아와 아르메니아 등 영토 안 76개 지역에 러시아 아종 너구리 1만마리를 풀어놓았다. 이 가운데 유럽 쪽에서 인공이식이 성공을 거두었고, 이들이 현재 북유럽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너구리는 현재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다수 서식하고 있고 세르비아, 프랑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에서도 서식이 알려져 있다. 핀란드에서만 2010년 16만여 마리를 사냥하는 등 너구리는 이들 나라에서 퇴치해야 할 침입종 양상을 띠고 있다.
  

너구리는 어떤 동물인가

 

 racoon.jpg » 시민의 곁으로 다가온 양재천 너구리. 그림=박재동
 

너구리는 개과의 원시적 형태를 간직한 동물로 동아시아 원산이다. 북미산 너구리와는 전혀 다른 동물이다. 개과 동물 가운데 나무를 타는 드문 종이기도 하다.
 

몸이 길고 다리와 꼬리가 짧으며 귀도 작다. 무엇이든 먹는 잡식성이어서 창자 길이도 개보다 2배 가까이 길다. 두꺼비도 다량의 침으로 독을 희석시켜 먹는다. 일정한 장소를 정해 배설하는 똥자리가 있다.
 

겨울 모피는 속털이 빽빽하고 겉털이 길어 영하 25도에도 견딘다. 개과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몹시 춥거나 눈이 많은 곳에서는 겨울잠을 잔다.
 

일부일처제이고 새끼를 6~7마리 낳는데, 수컷이 새끼 기르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새끼는 8~10달 자라면 성숙한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천적의 공격을 받으면 죽은 척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천적은 늑대이며 여우와 오소리가 경쟁자이다. 러시아 아종이 광견병을 옮기는 것으로 드러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hylogeography of Korean raccoon dogs: implications of peripheral isolation of a forest mammal in East Asia
S.-I. Kim, S.-K. Park, H. Lee, T. Oshida, J. Kimura, Y.-J. Kim, S. T. Nguyen, M. Sashika &
M.-S. Min
Journal of Zoology
doi:10.1111/jzo.1203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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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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