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은 왜 목이 길까, 끝나지 않는 논쟁

조홍섭 2017. 09. 21
조회수 10711 추천수 1
라마르크 용불용설부터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 공방
최근 체온조절설 유력…더우면 해바라기 자세로 보완

Giraffe_(Giraffa_camelopardalis)_femalesCharlesjsharp.jpg » 기린은 지난 1500만년 동안 다리는 3배, 목은 4배 길어지는 진화를 이룩했다. 그 원동력이 무언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찰스 샤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린은 왜 목이 길어?” 아이가 동물 그림책을 보기 시작한 뒤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일 것이다. ‘목이 길면 다른 동물은 닿지 못하는 나무 꼭대기의 잎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라는 당연한 답이 뒤따른다. 과연 그럴까.
 
19세기 초 프랑스 박물학자 라마르크는 점점 더 높은 곳의 잎을 따먹느라 기린의 목과 다리가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다윈과 월러스는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라마르크의 주장을 반박해, 긴 목의 기린이 먼저 출현했고 그런 기린은 짧은 기린보다 높은 곳의 잎을 먹을 수 있어 번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Flickr_-_Rainbirder_-_Reticulated_Giraffe_drinkingSteve Garvie.jpg » 물을 마시는 기린. 어정쩡해도 큰 어려움은 없다. 스티브 가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런데 다윈 이후에도 기린 논란은 계속됐다. 1949년 채프먼 핀처는 다리가 먼저 길어졌고 물을 마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목이 길어졌다는 기발한 가설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현재의 기린 이전에 목이 짧고 다리는 긴 기린이 잘 살았음이 화석 기록으로 증명되면서 이 가설은 생명이 다했다.
 
수컷이 경쟁자를 제압하는 무기로 긴 목을 쓰고, 암컷도 목이 긴 수컷을 매력적으로 간주한다는 성 선택 가설도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암컷이 목이 긴 수컷을 특히 좋아한다는 증거가 없고, 암·수 사이에 목 길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약점으로 제기된다.

Giraffe-Necking-Etosha_Bjørn Christian Tørrissen.JPG » 기다란 목을 휘두르며 힘을 겨루는 수컷 기린. 매우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비외른크리스찬 퇴리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키가 큰 기린이 먹이 획득에 유리하다는 다윈 가설은 가장 큰 수컷에만 해당하지 종 전체에 적용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키가 작은 암컷과 어린 기린에게는 그런 이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영국 생물학자 브라운리는 1964년 덥고 건조한 지역의 인종이 키가 크고 마른 데 착안해 기린은 체온조절과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기 쉽게 목과 다리가 긴 체형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최근까지도 동물학자와 진화생물학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체온조절 가설의 핵심은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큰 길고 마른 체형일수록 열을 쉽게 방출한다는 것이다. 최근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 결과 체중 1611㎏의 기린 표면적은 17.7㎡로 같은 무게의 포유류보다 25%나 컸다.

Flickr_-_Rainbirder_-_High-rise_livingSteve Garvie.jpg » 다른 초식동물이 닿지 못하는 높은 나무의 어린 잎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기린이 키가 큰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수 있다. 스티브 가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당연해 보이는 이런 사실에 의문을 품은 과학자가 있었다. 그레이엄 미첼 미국 와이오밍대 교수 등 국제 연구자들은 짐바브웨에서 도살되는 기린 암·수 각 30마리의 가죽을 벗겨 표면적을 직접 측정했다.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기린의 표면적은 같은 체중의 포유동물에 견줘 크지 않았다. 가늘고 긴 다리와 목은 당연히 체중 대비 표면적이 컸지만 짤막한 몸통은 오히려 같은 크기의 포유류보다도 표면적이 작아,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연구자들은 표면적 자체는 특별히 크지 않아도 기린의 체형이 체온조절에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가는 다리와 목은 몸보다 열전달 효율이 매우 높고, 이동할 때 바람이 부는 효과까지 더해진다. 다리와 목에 많이 분포하는 땀샘도 도움이 된다.

Miroslav Duchacek.jpg » 기온이 체온을 넘는 뜨거운 낮 동안 기린은 목을 태양을 향해 뻗음으로써 햇볕에 쬐는 단면적을 줄인다. 미로슬라프 두차체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기린의 행동이었다. 아무리 열전달이 뛰어나도 체온보다 기온이 높으면 역효과가 날 터이다. 이럴 때 기린은 태양을 향해 머리를 뻗는 행동을 한다.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관찰했더니, 이런 행동은 기온이 20도일 때 기린의 35%에서 나타났지만 37도에서 60%로 치솟았다. 태양을 향해 목을 뻗으면 햇볕이 쬐는 단면적이 줄어든다.
 
이 연구는 브라운리의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브라운리의 주장으로 논문을 마무리했다. “날씬하고 키가 큰 체형은 열 손실을 돕는다. 덕분에 덩치와 키를 이렇게 키울 수 있었는데, 그 결과로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고 자신을 지키는 능력도 얻고 또 그렇지 않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먹이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tchell, G., et al., Body surface area and thermoregulation in giraffes, Journal of Arid Environments (2017), http://dx.doi.org/10.1016/j.jaridenv.2017.05.00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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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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