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니스트 판다, 몸 속은 육식동물

조홍섭 2019. 05. 08
조회수 10092 추천수 0
섭취 에너지 50%가 단백질…초 육식동물 수준

p1.jpg » 자이언트판다는 깨어있는 시간 내내 대나무를 먹는다. 그러나 판다가 섭취하는 건 억센 섬유질이 아니라 단백질인 것으로 밝혀졌다. 판다의 소화관은 육식동물처럼 짧다. 치 킹,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온종일 대나무만 먹는 자이언트판다는 의심할 여지 없이 초식동물이다. 하지만 분류학적으로 판다는 곰과에 속한다. 곰은 육식동물을 일컫는 식육목에 포함된다. 판다는 어떻게 육식동물에서 초식동물로 진화했을까.

대나무가 먹이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판다는 대나무의 억센 섬유질을 씹기 위해 발달한 턱 근육과 갈아먹는 이, 그리고 ‘판다의 엄지’로 알려진 대나무를 움켜쥐기 편한 ‘가짜 손가락’까지 갖춘 초식동물이다.

p2.jpg » 판다의 손가락뼈. 엄지손가락 뼈는 실은 손가락이 아니라 종자골이 변형된 것으로 대나무를 잘 쥐기 위한 적응이다. 진화생물학자 스티픈 제이 굴드는 이를 ‘판다의 엄지’라고 불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판다의 소화관과 소화효소, 장내 미생물 군집이 다른 육식동물과 거의 같으며 초식동물과는 공통점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판다가 섭취·흡수하는 영양소를 분석했더니, 고기만 전문적으로 먹는 늑대와 같은 육식동물과 흡사하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니 용강 중국 과학아카데미 동물학자 등 중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자들은 3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결과를 밝히면서, “판다가 육식에서 잡식을 거쳐 전문적인 초식동물로 전환하는 것이 그렇게 큰 진화적 도약은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겉으로는 초식동물의 형질을 갖췄지만, 먹이를 섭취해 영양분을 흡수하는 내면은 육식동물의 형질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야생 판다를 대상으로 먹이와 배설물 그리고 젖의 영양가를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 판다는 에너지의 약 50%를 단백질 형태로 섭취했는데, 이는 그 비율이 52%인 들고양이와 54%인 늑대와 비슷했다. 145g의 초소형 새끼를 낳아 빠르게 성장시키는 판다의 젖도 육식동물의 것도 유사한 성분이었다.

p3.jpg » 100∼200g에 불과한 초소형 판다 새끼. 포유류 가운데 가장 빨리 성장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처럼 판다가 절반 이상의 에너지를 단백질에서 얻고 탄수화물과 지질의 비중이 낮은 것은 먹이의 70% 이상을 다른 동물로부터 얻는 ‘초 육식동물’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교신저자인 웨이 푸원 중국 과학아카데미 동물학자는 “먹는 것으로만 보면 판다는 전적으로 초식동물이지만 먹이를 섭취해서 소화하는 다량 영양소의 조성을 고려하면 육식동물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판다는 어떻게 대나무만 먹고 다량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단백질이 풍부한 죽순과 어린잎을 집중적으로 먹고, 다량의 대나무를 섭취해 이른 시일 안에 배설하는 방식으로 ‘육식 소화기관’과 채식의 모순을 해결한다고 밝혔다.

판다는 2종류의 대나무를 먹는데, 영양분이 많을 때 먹기 위해 해마다 산 위와 아래를 왕복한다.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저지대에 사는데, 대나무 잎을 먹으며 죽순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대나무 잎의 단백질 함량은 19%이지만 죽순은 32%로 훨씬 많다.

죽순이 자라 단백질이 줄어들고 섬유질이 늘어나면 고지대의 다른 종류 대나무 죽순을 찾아 이동한다. 죽순이 억세지면 잎으로 먹이를 바꾸고, 이듬해 대나무의 새잎이 돋아날 때 하산한다.

p4.jpg » 판다는 어디서나 다량 구할 수 있는 대나무를 먹이로 삼기 위한 적응을 해 초식동물처럼 보이지만 육식동물의 형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웨이 푸원 제공.

판다는 어차피 섬유질을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량의 대나무를 먹어 일부 영양분만 흡수한 뒤 곧바로 배설한다. 다른 초식동물과 달리 탄수화물 섭취량이 적은 이유이다. 또 장내 세균을 이용해 섬유질을 오랜 시간 소화하지 않기 때문에 체온과 기초대사율을 낮게 유지할 수 있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연구자들은 “자이언트판다가 육식동물이면서 어떻게 극단적으로 전문화한 초식동물이 됐는가는 오랜 논란거리였다”며 “(먹이 연구결과) 그 전환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표면적인 것으로서, 다량 영양소를 다루는 방식을 비교적 덜 바꾸면서 새로운 풍부한 먹을거리인 대나무에 적응한 결과”라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Nie et al., Giant Pandas Are Macronutritional Carnivores, Current Biology (2019), https://doi.org/10.1016/ j.cub.2019.03.06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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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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