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막힌 강, 5년만에 뚫은 물의 힘
대만 다안강 강진으로 강 가로질러 암반 댐 형성, 9년만에 깊이 17m 협곡 형성
가파른 산악에 해마다 태풍이 폭우 불러, 수백만년 걸리는 협곡 침식 50년에 끝
» 다안강 협곡. 지진으로 강을 가로막았던 기반암이 강물에 침식돼 남은 모습이다. 강 가운데 있던 봉우리는 2012년 1시간 동안의 폭우로 사라졌다. 사진-크리스텐 쿡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강인 한탄강은 철원 평야를 칼로 벤 듯이 협곡을 만들며 흐른다. 27만년 전 강원도 평강에서 분출한 용암이 옛 한탄강을 메워버렸다. 그러나 강물은 쉬지 않고 암반의 결정을 한 톨씩 떼어냈고 그 결과 수십m 깊이의 협곡이 만들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협곡은 지각변동으로 지반이 솟아오른 뒤 물의 침식을 받아 만들어진다. 융기된 지반은 주변보다 높기 때문에 강한 침식 압력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오랜 기간 동안 일어난다. 협곡은 수백만년 동안 지속하기도 하고 빙하기를 여러 차례 겪기도 한다. 한탄강 협곡도 27만년 동안 강물이 깎은 결과이다.
그런데 마치 영화 테이프를 빨리 돌리는 것처럼 이런 장구한 시간을 단축해 협곡의 침식이 놀라운 속도로 벌어지는 곳이 있다. 크리스텐 쿡 독일 포츠담 지구과학연구센터 박사 등은 과학저널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대만에서 관측한 초고속 침식 사례를 보고했다.
국립대만대에서 4년 동안 방문연구자였던 쿡 박사는 ‘대만판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는 곳에 주목했다. 1999년 규모 7.6의 강진으로 대만 북서쪽에 있는 다안강의 일부 지역이 10m나 솟아올랐다.
그 바람에 강에 갑자기 높이 10m 폭 1㎞의 거대한 댐이 생겨났다. 강물은 강줄기를 가로막은 이 댐을 깎기 시작했고 2004년부터 다시 원래의 강줄기를 되살려 강바닥과 절벽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2008년까지 융기한 지반으로 가로막혔던 곳에는 폭 25m, 깊이 17m의 협곡이 생겼다.
» 다안강 협곡의 위치. 붉은 점선 부분이 지진으로 융기한 지반. 그림=크리스텐 쿡,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쿡 박사는 51차례나 현장을 방문해 항공사진과 레이더를 이용한 정밀한 측정을 거듭했다. 연구진은 2004~2010년 사이의 방대한 측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앞으로 50년 안에 융기한 지반에 형성된 협곡은 모두 사라져 범람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지역의 침식이 이처럼 심한 이유는 암반이 무른 암질로 돼 있는데다 해마다 찾아오는 태풍이 폭우를 동반하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강물이 협곡의 벽을 깎아내는 속도는 연간 17m로 계산됐다.
» 다안강 협곡의 2009년 홍수 모습. 거센 물살이 기반암을 깎아낸다. 폭우가 내릴 때는 홍수가 협곡의 절벽을 넘어 거세게 흐른다. 사진=크리스텐 쿡
이 지역에는 300~400년마다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다. 그런데도 그런 지각변동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은 이런 빠른 침식 속도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과거의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장차 닥칠 지진을 예측하기도 더 힘들어진다.
» 다안강 협곡에서 기반암을 강물이 침식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모식도. 강물이 깔때기처럼 한쪽 벽을 쳐 침식 압력을 집중시키면서 차츰 협곡을 범람원으로 바꾸어 나간다. 그림=크리스텐 쿡,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하지만 협곡이 생겨서 사라지는 모습을 당대에 관찰할 수 있다는 건 지질학 연구자에게 큰 축복임에 틀림 없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risten L. Cook et. al., River gorge eradication by downstream sweep erosion, Nature Geoscience (2014) doi:10.1038/ngeo222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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