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가 유원지화, 설악산 ‘머리’가 지끈지끈

박그림 2014. 0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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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위엄 간직하던 대청봉, 정상 산행 부채질 대피소 난립해 훼손 심각

정상부 3개 대피소 해체해, 등산객 묵지 않고 정상 넘도록 유도해야

 

dae1_대청봉맨땅-1.jpg » 밀려드는 등산객에 밟혀 아고산 생태계가 사라지고 사막처럼 변한 설악산 대청봉의 모습.

 

참으로 멀었던 설악산 가는 길
 
젊은 시절 설악산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먼길을 달려 설악산 언저리에 닿으면 벌써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했고 배낭이 무거운 줄 모르고 산길을 올랐다.
 

어둠이 내리면 대피소 구석에 쪼그리고 잠을 잤지만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이른 새벽 대피소를 빠져나와 어둠이 걷히는 대청봉을 바라볼 때면 정상의 존엄성과 외경심으로 가득했다.
 

중청 안부에 이르러서는 감히 빠른 걸음으로 오르지 못했고 느린 걸음으로 올라 작은 돌탑에 입맞추며 무릎을 꿇었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 시설물도 없었던 설악산의 정상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했고 고산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dae6.jpg » 설악 연봉의 장엄한 모습.

 

그 뒤 정상 가까이에 군 벙커가 지어졌고 1970년 초반에 일반인이 관리하면서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와 매점이 되었다. 그때는 정상부 일대에서도 취사와 야영이 허용되던 때여서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청 안부에는 헬기장과 맨땅이 드러난 작은 캠프사이트가 있었을 뿐이었다.
 

강원도에서 설악산국립공원을 관리하던 때였다. 늘어나는 등산객들에 대한 안전과 편의 제공을 빌미로 작은 돌 산장이 지어진 것이 1983년도였다. 대청봉의 군 벙커와 중청 안부의 돌 산장 모두 일반에게 맡겨 관리했다. 1992년 국립공원의 관리권이 강원도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넘어가면서 군 벙커를 넘겨받아 관리하게 되었다.
 
정상부에서 취사와 야영이 금지되면서 군 벙커 대피소에는 100명 규모의 수용인원을 훨씬 넘는 등산객들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빼곡히 앉아서 선잠을 자야 하는 날들이 많앗다. 주변의 자연환경은 걷잡을 수 없이 훼손되었고 난립한 시설물로 인한 경관훼손도 심각했다.
 

그런 상황을 해소하고자 중청 안부 돌 산장 옆에 2년간의 공사 끝에 본격적인 수용시설이 들어선 것이 1995년 9월이었다. 중청대피소가 들어서면서 공사 인부들의 숙소로 이용되었던 돌 산장은 헐렸고 군 벙커는 오랫동안 군사시설로 남아 있다가 2000년 초에 자연상태로 원상 복원되었다.
 
정상에 집중된 대피소가 문제 핵심
 
dae7.jpg » 동도 트기 전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로 랜턴을 밝히며 넘어오는 무박산행 등산객의 끝없는 행렬. 설악산은 쉴 틈이 없다.  

 

설악산 정상부는 아고산 지대로서 한번 훼손되면 회복이 어려운 지역적인 특성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정상부에는 군 벙커, 돌 산장, 희운각 대피소가 들어서 있었고 여기에 많은 등산객이 머물게 됨으로써 정상부의 훼손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정상부의 환경문제는 대피소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 일어난 것이었음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대형 숙박시설인 중청 대피소가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일은 2013년 소청 대피소 재건축 과정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됐다. 그 결과 정상부의 환경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dae2_70년대 초 중청봉과 안부.jpg » 1970년대 초 중청봉과 말안장처럼 생긴 능선부(안부)의 모습.

 

dae3_지금의 중청봉과 안부.jpg » 대피소와 침식된 등산로가 두드러지는 지금의 중청봉과 안부 모습.  

 

필자는 중청 대피소 신축계획이 발표될 때 반대운동을 펼쳤고 대형 숙박시설이 들어설 때 예상되는 환경문제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정상부에 집중된 대피소는 설악산 정상부 환경훼손의 핵심 원인이 되었으며 지금도 그런 상황은 바뀌지 않고 있다.
 

중청, 소청, 희운각 대피소로 인한 정상부의 환경훼손 문제는 대피소를 철거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 중청대피소가 들어설 때부터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면서 제안한 해결방법은 정상부에 있는 3개 대피소를 철거하고 양폭과 수렴동 대피소를 적절하게 활용하게 해 등산객들이 정상부에 머물지 않고 설악산을 넘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제안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근본적인 대책도 없는 가운데 이용을 통한 환경훼손만 늘어나는 형편이다.
 

더구나 안전과 불편 해소, 훼손 방지라는 이유로 계단과 나무 데크와 같은 인공시설물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유원지에 갈 사람까지 정상부로 끌어올리는 구실을 하고 있다.
 
설악산이 체력단련장, 유원지인가
 
dae4_삼겹살-1.jpg » 설악산 정상부 대피소에서 삼겹살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이곳이 유원지인가.  

 

설악산 대청봉은 표토가 50㎝ 이상 패였고 묻혀있던 돌들이 드러나 황량한 모습이다. 1996년부터 3년 동안 대청봉 훼손지 복원공사를 하였으나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출입으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중청 대피소 주변도 맨땅이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이용 행태도 유원지를 방불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쇠 불판에 삼겹살를 굽고 술판을 벌이는 등산객들에게 설악산은 체력단련장이며 유원지일 뿐이다.

 

그러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여기는 불과 30~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소청대피소를 관리하면서 대피소가 아니라 별장과 같은 건물로 개축함으로써 정상부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dae5_대청봉맨땅-2.jpg » 황량한 대청봉이 깊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산불방지 입산통제가 풀리던 날,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1인 시위를 하려고 대청봉에 올랐다. 늦게까지 눈에 덮였던 정상부도 봄기운이 가득했고 털진달래가 붉게 피어 봄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깊게 패인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수많은 등산객이 정상 비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그 자리엔 나무와 풀이 무성했고 때마다 꽃들이 다투어 피었던 곳이었다.
 

가만히 엎드려 드러난 상처에 손을 대고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내 손에서도 피가 묻어날 것만 같았다.
 

눈잣나무와 털진달래가 뒤덮인 중청 안부에 내려서 자연의 경이로움 속에서 대청봉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던 그 자리에는 중청 대피소가 들어섰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아쉬움보다는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중청대피소를 철거하고 원상복원할 것을 다시 한 번 제안한다. 지상부에 지어진 1,  2층을 철거하고 지하부분만 남겨서 통제소로 이용한다면 정상부 관리의 거점이 될 수 있으며 환경훼손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경관훼손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먼저 중청 대피소를 철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소청, 희운각 대피소를 차례로 철거해 정상부에서 일어나는 환경훼손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마침, 올해부터 시작되는 시간제 입산제도가 정착되고 앞으로 입산 예약제가 실시된다면 대피소의 기능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설악산 정상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길 기대해 본다.

 

글·사진 작은뿔 박그림/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설악녹색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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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설악산의 상처와 아픔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과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일을 하고 있다. 설악산에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 217호, 멸종위기종인 산양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양을 찾아다닌다.
이메일 : goral@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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