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청바지를 입고 걷기로 했다

김성만(채색) 2012. 02. 09
조회수 11459 추천수 0

아웃도어 매장 가격에 질겁, 꼭 준비물을 사야 하는 건 아니다

'짐차' 끌고 히말라야 넘은 일본 자전거 여행가의 기억에서 힘 얻어

 

 거의 도시에서만 살면서 도시는 참 아니다 싶었습니다. 귀촌을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 땅을 '오지게' 여행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감성도 키우고, 여기저기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만날 생각입니다. 그래서 3월부터 우리나라 도보여행을 떠납니다. 강도 따라가고 산도 따라가고 바다도 따라갑니다.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하나씩 써 나갈 예정입니다.

 

‘노’ 아웃도어 매장엘 갔다. 함께 떠날 유하의 침낭과 필요한 것들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꼭 사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등산바지, 코펠, 침낭, 텐트.

 

간만에 들어간 등산용품 가게여서 살짝 기대감에 찼지만 이내 무너졌다. 옷가지의 가격들이 예전보다, 정확히는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이다.

 

바지 하나에 10만원 정도는 기본이었다. 어떤 건 20만원까지 하는 것들도 있었다. 상의도 마찬가지. 무슨 '텍스'니 하는 재질로 되어 있어서 그런듯. 좀 이쁘다 싶은 걸 고르면 그 중 제일 비싼 것 중 하나. 내 눈이 높은가보다. 지갑 상황을 고려하면 비싸든 싸든 아무 것도 살 수 없었다.

일단 옷가지들을 제쳐놓고 꼭 필요한, 진짜 없으면 안 되는 침낭부터 보기로 했다. 침낭은 미리 인터넷으로 여러 개를 비교하며 골라둔 것이 있었다. 매장에서 실물을 확인한 뒤 구입만 하면 되는 일.

 

처음에는 거위털이나 오리털 류의 침낭을 생각했는데, 봄·가을용 침낭이라도 그런 것은 30만원 내외였다. 안타깝지만 죽은 동물 털을 쓴 것보다 화학섬유로 된 것을 사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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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 입고 다니는 청바지와 신발. 결국 이대로 떠나기로 맘 먹었다.

막상 진열된 침낭들을 보자니 너무 허술해 보였다. 인터넷으로 고른 침낭도 실물은 흐물흐물 별로였다. 8여년 전에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며 구입할 때만 해도 싸고 좋은 것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싼 것 자체가 드물었다.

 

허탈했다. 자전거 여행을 끝내며 프랑스 공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기 전에 무게 제한에 걸려 버린 여러가지 것들 중 침낭도 있었는데 정확히 그 시간이 떠올랐다. 아….

나는 무언가를 할 때 늘 거기에 ‘맞는’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그 중 등산복은 거의 ‘필수’처럼 생각했다. 분명한 이유가 하나 있는데, 나의 첫번째 도보여행 때 청바지를 입고 걸었다가 딱 첫날 허벅지 안쪽이 벌겋게 쓸려 며칠을 고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여행은 다른 면바지로 버텼지만 훗날 등산바지를 입어본 뒤 느낀 놀라움 때문에 ‘등산할 땐 등산바지’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전에 입던, 좀 오래되고 낡은, 바지가 있었지만 유하는 그런 바지가 없었다. 나 역시 이번 기회에 새 바지를 하나 구입해 볼까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나의 주장을 펼쳤고 그녀도 어느 정도 수긍을 했다.

 

그러던 중에도 “그냥 편한 바지 입으면 안 될까?”라며 나를 설득했다. “인도에서 산 바지나 몸빼나 이런 걸 입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그녀의 말에 “너무 튀어, 시골 마을에 가면 흉볼지도 몰라”라며 ‘등산바지론’을 계속 주장했다.

결국 구입하려는 찰나에 다 무너지고 만 것이다. 비싸도 너무 비쌌다. 등산복을 사 본 사람이라면 나를 흉볼 수도 있겠지만 3만원 정도 생각하고 갔다. 그러니까 그곳의 모든 바지들은 세 배가 넘는 가격의 것들이었다. 곧 무일푼이 될 우리들에겐 사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이 이런 거 아니잖아?” 그 즉시 어거지로 깨달았다.

우리가 평소 얘기 나누는 주제 중에는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뭔가를 해야할 때 또는 하고 싶어 할 때 꼭 거기에 맞는 뭔가를 사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큰 돈을 쓰기 때문이다. 내가 등산할 땐 등산바지 입어야 한다고 고수한 것처럼. 그런데 언제부터 그래왔나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다. 옛 사람들은 솜바지 입고도 온 천지를 다 돌아다녔을 것이다.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이미 깨달았어야 하는 경험이 있다. 티베트 라싸에서 네팔 카트만두로 넘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일본인이 많이 묵는 숙소에 묵고 있었는데, 한 일본인이 자기도 자전거로 네팔에 가려고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전거도 없고 자전거에 다는 짐가방도 없는 상태였다. 물론 나는 이백만원이나 하는 자전거에 수십만원에 이르는 짐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에 모인 다른 여행자들이 그에게 ‘넌 준비가 안 됐어. 포기해’라고 얘기했고 본인도 절망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런데 내가 카트만두에 도착한 뒤 며칠이 지났을 때 그는 당당히 자전거를 타고 카트만두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른바 ‘쌀집 자전거’라고 하는 자전거에 자기의 배낭을 뒷바퀴 위 짐받이에 싣고 달려온 것이다. 방수효과를 노렸는지 나일론 포대자루에 배낭을 감싸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해낸 것이다.

그래서 결정했다. 내가 평소에 입는 옷을 입고 떠나리라. 마침 거의 ‘단벌 신사’처럼 입고 다니는 청바지는 내게 더는 길들여질 수도 없을 만큼 길들여져 있고, 무엇보다 신축성이 뛰어나다. 무릎을 굽히고 펼칠 때 굉장히 편한 편이다.

 

땀에 젖게 될 경우 또 허벅지가 쓸리게 될까 걱정이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다. 유하는 자기 뜻대로 통이 넓은 ‘인도 바지’를 입을 것이다. ‘몸빼’를 즐겨입는 시골에서 오히려 환영받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노' 아웃도어 매장에서 한 손엔 나일론 침낭과 한손엔 알루미늄 코펠 만을 달랑거리며 들고 나왔다.

 

글·사진 김성만(채색)/ 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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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채색) 생태활동가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4대강 현장팀에서 활동했었다. 파괴를 막는 방법은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2012년 3월부터 '생태적인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중국 상하이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자전거로 여행하고 <달려라 자전거>를 냈고, 녹색연합에서 진행한 <서울성곽 걷기여행>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메일 : sungxx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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