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물고기는 어떻게 눈을 잃었나

조홍섭 201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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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 갇힌 지 200만년 만에 눈 퇴화한 멕시코 테트라, 진행중인 진화 사례

미 연구진 분자 차원서 진화 규명…염도 변화가 열충격단백질 억제, 눈 축소 불러

 

just chaos_5024220618_3b05592676_z.jpg » 지상에 살다 동굴에 갇혀 눈이 사라지는 쪽으로 진화한 멕시코 테트라. 사진=just chaos, 플리커 크리에이티브 코먼스

 

멕시코의 시내와 강에는 ‘멕시코 테트라’라는 평범한 민물고기가 산다. 엷은 갈색의 작은 몸집을 한 이들은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물벌레 따위를 먹고산다.
 

그런데 200~300만 년 전 이 물고기들은 대여섯 차례에 걸쳐 동굴로 진출했다. 홍수에 떠밀렸는지 신천지를 개척하려고 찾아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빛 한줄기 없는 동굴 속에서 이들은 눈이 사라지고 몸 색깔도 거의 없어지는 변화를 겪었다.
 

진화적으로 아주 최근의 사건인 멕시코 테트라의 동굴 물고기로의 변신은 진화 생물학자들의 비상한 관심거리이다. 캄캄한 동굴에서는 눈을 쓸 일이 없으니 없어진 것 아니냐고 한다면, 잘못된 이론으로 오래전에 판명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되풀이하는 것이 된다.

 

기린이 높은 나무의 잎을 먹으려다 보니 목이 점점 늘어난 것이 아니라, 목이 긴 형질과 짧은 형질의 기린 가운데 높은 나무의 잎을 먹을 수 있는 긴 형질이 선택받았다고 생물학 교과서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멕시코의 민물고기는 동굴 속에서 어떻게 눈을 잃게 됐을까. 니컬러스 로너 미국 하버드 의대 진화유전학자 등 연구진이 이를 분자 차원에서 해명한 논문이 <사이언스> 최근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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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Jeffery_MBL Woods Hole.jpg » 지상의 멕시코 테트라와 동굴 속 멕시코 테트라. 눈이 없어지고 색이 엷어졌다. 사진=니컬러스 로너 외 <사이언스>

 

동굴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 들어간 물고기는 임의로 일어나는 돌연변이 가운데 자연선택되는 진화적 변화를 처음부터 시작했을까. 이 연구는 그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변이가 새 환경의 충격을 받아 발현된다는 새로운 유전적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생물 집단 안에는 잠재적으로 유용하지만 실제로 발현되지는 않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풀이 존재한다. 연구진은 이처럼 유전자의 변이를 가려 주는 구실을 하는 열충격단백질90(HSP90)에 주목했다.
 

초파리 가운데 이 단백질이 부족한 개체는 눈과 다리의 기형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효모와 식물에서도 그런 기능이 확인됐다. 말하자면 이 단백질은 염기서열이 돌연변이로 조금 뒤틀어져도 단백질이 발현돼 제 모습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보호자’ 구실을 한다.
 

그런데 급격한 환경변화가 일어나 이 단백질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 숨어있던 돌연변이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연구진이 멕시코 테트라의 배아를 화학 처리해 이 단백질의 활동을 억제했더니 깨어난 물고기의 눈과 안구 크기가 다른 개체보다 크거나 작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열충격단백질90이 눈의 크기에 관한 변이를 억제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cavefish.jpg » 열충격단백질90의 작용을 억제했더니 멕시코 테트라의 눈 크기에 다양한 변이가 일어났다. 사진=니컬러스 로너 외 <사이언스>

 

눈이 작게 태어난 물고기를 번식시켰더니 역시 눈이 작은 후손이 태어나, 이 형질이 유전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음 단계는 실제 자연에서도 이런 변이가 일어나는지를 조사하는 일이다.
 

연구진은 동굴 속 호수라는 환경이 바깥 환경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가장 큰 차이는 동굴 속에서 염도가 밖보다 현저히 낮은데, 이런 환경은 높은 염도에 익숙한 물고기에게 열충격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민물고기가 동굴 속에 우연히 들어오게 됐을 때, 물고기들이 겪은 가장 큰 환경 스트레스는 빛이 없다는 게 아니라 염도가 낮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로 변이를 막아주던 단백질의 기능이 억제되면서 눈이 커지거나 작아진 물고기들이 생겨났다.
 

이제 다양한 변이를 거친 물고기들은 캄캄한 동굴 환경에서 누가 잘 적응하는지 시험을 거쳐야 했다. 큰 눈은 밝은 환경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동굴 안에서는 불필요할 뿐더러 유지관리에 에너지만 잡아먹는 기관이 된다. 동굴 속에서는 작거나 아예 눈이 없는 개체들이 잘 적응해 더 많이 번식할 수 있다. 눈 없는 멕시코 테트라는 이런 선택의 결과인 셈이다.
 

William Jeffery_MBL Woods Hole3.jpg » 눈 없는 멕시코 테르라가 서식하는 동굴을 탐험하는 과학자들. 사진=윌리엄 제프리, 우즈홀 헤양연구소

 

연구에 참여한 단 자로츠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번 연구로 대규모의 급격한 환경변화가 새로운 변이를 불러와 실제로 자연에 진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고 화이트헤드 생물의학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현재 이 동굴 물고기의 진화는 진행중이다. 동굴 밖의 멕시코 테트라와 동굴 속 테트라는 아직 같은 종이다. 또 눈이 작아진 것 말고 왜 체색이 바뀌었는지 등은 해명되지 않았다.
 

공동저자인 윌리엄 제프리 미국 우즈홀 해양생물연구소 연구원은 “지표에 살던 멕시코 테트라가 동굴에 들어온 것은 불과 몇백만년 전 일로 진화적으로는 아주 최근의 일이다. 대부분의 동물이 5억년 전 캠브리아기에 출현해 자연선택을 거쳐 왔음을 상기해 보라. 그런 점에서 이 눈 없는 동굴 물고기는 아주 어리기 때문에 진화과정을 처음부터 이해하기에 썩 훌륭한 예이다.”라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Nicolas Rohner et. al., “Cryptic Variation in Morphological Evolution: HSP90 as a Capacitor for Loss of Eyes in Cavefish” Science, December 13, 2013, DOI: 10.1126/science.124027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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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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