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곡간' 1만5천㎡ 논 내놓은 농부

윤순영 2014. 03. 27
조회수 30771 추천수 1

철원 권재환씨 부부 논 1만6000여㎡ 두루미 위해 쾌척, 한탄강변 먹이터

낱알 하나까지 거둬가는 세태, 이대로면 철원은 월동지 아닌 중간기착지 전락

 

크기변환_dnsSY3_1920.jpg » 한탄강 두루미 무리. 

 

겨우내 소리와 몸짓의 향연을 펼치던 두루미는 번식지로 떠나고 그들이 머물던 자리에는 아지랑이가 봄을 재촉한다. 해마다 철원평야를 방문한 지도 17년, 두루미의 생태를 죽 관찰하면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안타까움이 엇갈린다.

 

크기변환_dnsDSC_1593~2.jpg » 월동을 마치고 번식지로 가기 위해 기류에 몸을 실고 선회하는 두루미 무리.

 

크기변환_dnsCRE_9428.jpg » 볏짚을 말아놓은 곤포 사일로. 뒤로 어렴풋이 재두루미가 보인다.

 

우리나라 최대의 두루미 도래지라지만 철원평야에는 곤포 사일로용으로 모두 걷어가 볏짚은 찾아 볼 수 없고 당연히 낙곡도 사라져버렸다. 철새가 먹을 것을 찾을 수 없는 평야를 비닐하우스가 뒤덮고 있다.


철원평야는 한반도와 일본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의 중간 기착지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크기변환_dnsYS2_9064.jpg » 일본 가고시마 이즈미로 월동을 하러 떠날 채비를 하는 재두루미들.

 

재두루미가 번식지인 러시아를 떠나 2000㎞의 긴 여정의 중간 기착지로 철원평야에 들른다. 10월 중순이면 3000여 마리가 이곳에 도착한다.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의 월동지로 떠날 재두루미 무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철원평야의 하늘을 날아다닌다. 시끌벅적 마음껏 떠들고, 몸짓 언어와 날개를 흔드는 자리 다툼의 춤사위 향연이 11월 말까지 한바탕 펼쳐진다.

 

크기변환_dnsDSC_7827.jpg » 철원 평야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가 영역을 표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철원에 온 재두루미 가운데 2000여 마리는 일본으로 떠나고 남는 개체는 700여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많은 수의 재두루미가 떠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면 머나먼 일본으로 날아갈까? 이런 현실이 우리나라의 환경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닐까?

 

그나마 탐조와 촬영 목적으로 한탄강 잠자리에 먹이를 주는 것이 고작이다. 한탄강 잠자리에 콘테이너와 비닐하우스를 지어 1만원씩 받고 있다.

 

크기변_dnsSY2_0385.jpg » 촬영을 위해 뿌려 놓은 먹이를 먹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무리.

 

한탄강은 두루미에게 잠자리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장소이다. 평야에서 먹이를 먹던 두루미들이 목을 축이러 들른다. 또 다슬기나 물고기를 잡아 영양부충을 하고 목욕과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한탄강에 먹이를 공급하는 것보다는 평야에 먹이를 주어 생태의 습성과 자연성을 살려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탐조와 촬영 장소가 한탄강 잠자리에 있다 보니, 사람들의 방해로 편안히 잠을 자지 못하고 이리 저리 잠자리를 옮겨 다니고 있어 잠자리에 대한 보호와 특히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두루미를 보호 의식이 절실하다.

 

크기변환_dnsYS1_9159.jpg » 아침 햇살이 퍼지자 여울의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두루미 무리.

 

철원군에서는 올해 콘테이너와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에 탐조와 촬영을 위해 둑 위에 수억 원을 들여 지하벙커를 계획하고 있다. 탐조와 촬영하는 사람이 두루미와 접할 수 있는 개선된 공간이 마련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지하벙커가 있어서 두루미가 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두루미 처지에서 생각하면 안정적으로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더 많은 두루미가 정착하는 데도 우선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당장 두루미 보호에 나서지 않는다면 10년 안에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두루미는 거의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재 월동하는 철원의 두루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자칫 가을과 봄 두루미가 중간 기착지로 이용만 하는 곳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두루미 보호에 대한 인식 부족과 무관심, 재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막연한 피해 의식, 그리고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으로 평야엔 낱알이 없고 먹이를 줄 만한 논 한 뙈기 구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크기변환_dnsCRE_9010.jpg »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한탄강 상류 두루미 잠자리.

 

김포시 홍도평 재두루미는1992년 김포시 홍도 평에서 7마리가 관찰된 이후 모이주기를 계속한 결과 2001년에는 최대 120마리로 늘어났다. 하지만 무분별한 농지매립과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다는 이유로 모이주기에 반대하는 등 농민들의 항의와 실랑이가 계속되면서 재두루미는 점차 줄어 현재 10마리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크기변환_dns매립DSC_2049.jpg » 눈치를 살피는 홍도평 재두루미 뒤로 농경지 매립 차량이 보인다.

 

지난 1월 한탄강 상류인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권재환씨 집에서 민박할 기회가 있었다. 민통선 지역이어서 일반인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이길리 동네 앞 한탄강에는 두루미 잠자리가 있고 그나마 안정적으로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군인들의 순찰로 인한 방해가 간혹 발생해 군부대와 순찰시간을 조정하면 천혜의 두루미 잠자리인 여울이다.

 

크기변환_dnsCRE_2230.jpg » 한탄강에서 바라 본 이길리 마을. 

크기변환_dnsYS1_4277.jpg » 여울 잠자리에서 평화롭게 잠을 자는 두루미.

 

권재환씨의 안내를 받아 남방한계선까지 접근하여 두루미의 생태를 관찰해 보았다. 그곳 역시 사람의 방해는 받지 않았지만 곤포 사일로 탓에 들판에 볏짚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먹이가 부족한 상태였다.

 

3박4일 동안 민박을 하면서 두루미 보호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듣던 권재환씨 부부가 선뜻 두루미를 위하여 한탄강과 인접한 본인의 논 1만6000여㎡(약 5000평)를 내놓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크기변환_dns두루미곡간_2751.jpg » '두루미 곡간'으로 활용 될 이길리 387-2번지 농경지.

 

그동안 두루미를 위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튿날 그 논에 가보았다.  두루미들이 선호하고 먹이를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계단식 형태의 논이다. 동쪽 방향은 한탄강 풍광과 어우러져 뛰어나다.

 

 크기변환_dnsCRE_9275.jpg » 철원평야 전역에 서 있는 전봇대. 자칫 날던 두루미에게 치명상을 일으킬 수 있다.

 

서쪽은 토교저수지, 남쪽은 금학산이 보이고 북쪽은 오성산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이곳 논엔 전봇대가 하나도 없어 다행이었다. 철원평야 어디를 가나 전봇대가 즐비하게 서 있어 두루미가 위태롭게 비행하곤 한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YS3_0282.jpg »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 도지회설립 인증서를 들고 있는 권재환(왼쪽), 김일남씨 부부.

 

내친김에 이들 부부에게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에 가입을 권유하였다.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지난 3월17일 부인인 김일남씨가 협회 강원도 지회장, 남편인 권재환씨가 부지회장직을 맡았다.
 
올 9월부터 철원에 찾아오는 두루미는 그들만을 위해 마련된 먹이터를 볼 것이다. 이곳에는 두루미가 선호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생태연구, 탐조, 촬영이 가능한 기반시설도 갖출 계획이다. 환경이 나빠 먼 일본으로 가야만 했던 재두루미 무리도 이곳에서 월동을 하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그곳 이름을 '두루미 곡간'이라고 지었다. 이곳에서 두루미들이 마음껏 먹고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두루미 곡간을 제공한 권재환 부부에게 감사를 드린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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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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