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의 애원, 우리 그만 내버려 두세요

물바람숲 2016. 02. 15
조회수 24554 추천수 0
00550661101_20160215.JPG » 강원도 철원 한탄강 여울에서 천연기념물 202호인 두루미(가운데 흰색) 2마리가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 무리 사이로 날갯짓을 하고 있다. 김재왕 사진작가 제공

지역 현장 I 훼손위기 ‘두루미 천국’ 철원
사람들아 그냥 이대로 살고 싶구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배수펌프장 옆 한탄강 여울.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이 코앞인 이곳은 제가 겨울만 되면 찾아와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별장’ 같은 곳이죠. 이곳에선 요샛말로 ‘내가 제일 잘나간’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여주인공이자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인 혜리도 이곳에선 제게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검은 차광막을 뒤집어쓴 컨테이너 안에는 새벽부터 몰려든 극성팬들로 북적북적합니다. 난방도 되지 않는 차디찬 컨테이너 안에서 다들 제 얼굴 한번 보겠다고 코끝이 빨개진 채 오들오들 떨고 있네요.

여울 쪽으로 난 컨테이너 창엔 제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수백, 수천만원이나 하는 일명 ‘대포 렌즈’ 수십대가 노려보고 있답니다. 제가 잠깐 얼굴이라도 내비치면 이곳저곳에서 ‘촤촤촤작’ 셔터 소리가 요란하답니다.

자연이 만든 요새,

철원 한탄강 여울

지금처럼 낙곡 주워 먹고

강물로 목 축이고 싶어라

축제 한답시고

우리 잠 깨우지 말고

관광 자원화 한답시고

사람 끌어들이지 말아요

우리는

지금처럼

눈치 보지 않고

쉴 공간만 있으면 된다오

00550663701_20160215.JPG » 탐조용 컨테이너 전망대. 김재왕 사진작가 제공

이쯤 되면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네요. 그래요. 제 이름은 ‘두루미’입니다. 한자로는 ‘학’으로도 불려요. 하지만 저는 ‘뚜루루루~, 뚜루루루~’ 제 울음소리를 딴 순우리말인 두루미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들어요. 별명도 많답니다. ‘천연기념물 202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장수와 행복, 행운, 부부애 등의 상징으로도 여겨지고 있죠. 전 두루미가 한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968년 5월30일 중국 국경과 인접한 러시아 아무르강 습지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 나이로 치면 49살이죠. 두루미가 보통 야생에서 30~40년 정도 사니 사람으로 치면 백발노인인 셈이네요.

제가 철원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88년이었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이 ‘88서울올림픽’으로 들썩이던 해였죠. 두루미는 러시아와 중국 습지 인근에서 번식하고 생활하다 겨울이 되면 따뜻한 곳을 찾아 중국 남동부나 한국의 비무장지대 인근으로 내려와 월동을 하고 되돌아가요. 철원에 첫발을 내디딘 우리들은 이길리에 있는 한탄강 여울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잠자는 동안 삵 등 천적이 접근하지 못하게 물에 둘러싸여 있고 물살도 빨라 한겨울에도 얼지 않아 물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죠. 끝도 없이 펼쳐진 철원평야엔 가을걷이가 끝난 뒤 땅에 떨어진 낙곡 등 먹이도 풍부했어요.

00550663001_20160215.JPG » 어린 새끼와 함께 있는 두루미 가족. 김재왕 사진작가 제공

반면 다른 월동지들은 점점 지내기 힘들어져 갔어요. 한강 하구와 파주, 김포 등 서울 인근 주요 월동지에 개발 광풍이 분 탓이죠. 논밭이 갈아엎어져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이 몰려들었죠. 월동지에서 쫓겨난 두루미들은 저마다 “이제는 철원밖에 갈 곳이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곤 했죠.

시간이 흐를수록 철원을 찾는 두루미 가족들은 부쩍 늘어났습니다. 월동하는 두루미 1500여마리 가운데 800여마리가 철원평야에서 겨울을 나게 됐으니 철원이 전세계 두루미의 최대 월동지가 된 셈이네요.

철원에 두루미가 몰리자 문제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두루미 떼를 보러 사진가와 탐방객들도 덩달아 늘었기 때문이죠. 조금 더 가까이서 사진을 찍겠다며 우리 잠자리를 침범하기 일쑤인 사진가들은 그나마 양반 축에 들었습니다. 날아가는 모습을 찍겠다며 자동차 경적 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까지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돌까지 던지더군요.

다행히 2013년부터 철원군과 한국두루미보호협회 철원지회 회원들이 두루미 잠자리인 여울 쪽으론 출입을 통제하고 대신 사진 촬영과 탐조를 위한 컨테이너 전망대를 설치하면서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혔습니다. 일종의 ‘포토라인’이 형성된 셈이죠.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철원평야도 많이 변했습니다. 철새의 고장으로 불리는 양지리 철새마을이 2012년 군부대 초소 북상으로 민통선에서 제외돼 누구나 두루미 잠자리인 한탄강 여울까지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민통선에서 제외되자 이곳에도 개발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대형 덤프트럭이 도로를 씽씽 달리고, 이곳저곳에선 포클레인이 땅을 파헤쳐 놓았습니다. 낙곡이 흩뿌려져 있던 평야엔 고소득 작물이라는 고추냉이 재배용 비닐하우스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섰습니다.

비닐하우스가 세워진 자리엔 난방을 위해 전봇대와 전깃줄도 빼곡하게 들어서게 됐죠. 퇴비용 분뇨 차량도 수시로 드나들면서 그나마 남겨진 낙곡에 분뇨를 뿌려 악취 때문에 더는 먹을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2005년 열린 ‘두루미 축제’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철원평야가 전세계 두루미 월동지라는 사실을 내세워 축제를 열었죠. 인기가수 축하공연과 새해맞이 타종식, 불꽃놀이 등을 하면서 큰 소리를 내 심장이 ‘벌렁벌렁’ 오그라들게 하더니 다음날엔 버스에 관광객을 태우고 서식지 주변을 우르르 오가더군요. 두루미가 큰 소리와 인기척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른단 말입니까?

인간의 ‘욕심’은 끝나지 않더군요. 2012년에는 철새들이 휴식을 취하는 토교저수지에서 대규모 얼음낚시 대회를 열어 환경단체 등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점차 변해가는 철원을 보면서 이제는 다른 월동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끔찍한 사고까지 당했습니다. 5년 전엔 사랑하는 아내가 낙곡을 주워먹다 전봇대 전깃줄에 날개가 걸려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날개를 펴면 240㎝ 정도나 되는 우리가 평균 시속 40~60㎞로 하늘을 날다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전깃줄은 건들면 터지는 ‘부비트랩’이나 마찬가집니다. 날씨가 흐리거나 안개가 낀 날은 특히 더 위험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철원을 찾았습니다. 저를 홀아비로 만든 철원이 꼴도 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한반도엔 우리가 겨울을 날 만한 곳이 철원밖에 남아 있지 않은 탓입니다. 철원평야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월동지인 셈입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목청 한번 높여봤습니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두루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철원군이 두루미 월동지를 본격적으로 관광자원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에는 군수님이 직접 ‘두루미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 구시로와 이즈미까지 날아가 두루미를 이용한 관광자원화 방안을 배우고 왔다고 하네요. 한국관광공사도 지난달 일본인을 상대로 두루미 관광 상품을 출시하는 등 우리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두루미를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가장 많은 두루미를 볼 수 있는 두루미 잠자리 인근에 ‘뚝딱뚝딱’ 대규모 전망대를 설치할 것이라는 소문도 들립니다.

하지만 철원평야가 세계 최대 두루미 월동지가 된 이유는 그동안 민통선 안에 있어 개발 광풍을 피할 수 있었고 그만큼 사람과 마주칠 일이 적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루미가 찾지 않는 철원평야에 전망대만 방치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지금처럼 평야에 떨어진 곡식 몇알과 인간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쉴 공간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 두루미들도 이제 중대한 기로에 섰습니다. 철원군이 시도하려는 ‘두루미 관광자원화’는 과연 인간과 두루미가 공생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돈벌이에 시달리다 마지막 보금자리인 철원평야에서도 쫓겨나 사실상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까요?

철원/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이 기사는 이기섭 서울동물원장(전 한국두루미네트워크 대표)과 백종한 두루미보호협회 철원군지회장, 김경원 생태전문가 등의 조언을 참고해 두루미의 시점에서 일인칭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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