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주검 뜯으며…철원평야 삵의 겨울나기

윤순영 2013. 04. 01
조회수 68531 추천수 2

굶주린 삵 살리는 얼어붙은 고라니 주검, 사람이 접근하자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최상위 포식자 등극, 철원에선 두루미의 주요 천적…야행성이나 낮 사냥도 불사

 

_SY3_5363.jpg »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 삵. 최상위 포식자의 하나이다.

 

삵은 밤보다 낮에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밤에는 빛을 반사하는 동공을 볼 수 있지만 낮에는 배경 속으로 털무늬가 스며들기 때문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워 철원평야에 눈은 2월 말이 되어야 녹았다. 우연히 논둑길을 걷고 있는 삵을 발견하고 추적해 보았다.

 

크기변환_SY3_4851.jpg » 논둑을 지나가는 삵. 주변과 어울려 움직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크기변환_SY3_4866.jpg » 고개를 들어 냄새를 맡고 있는 삵. 
 

가다간 멈추기를 여러 번, 냄새를 맡으면서 어딘가를 향해 계속 간다. 삵이 멈춘 곳에 물체가 보였다. 동물들이 먹다 남은 고라니의 주검이었다.

 

크기변환_SY3_4995.jpg » 고라니의 주검을 발견하고 사방을 경계하며 안전을 살피는 삵.



_SY3_4891.jpg » 안전하다고 판단하자 삵은 고라니 주검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한다.


1_SY3_4985.jpg » 고라니의 가죽을 물어 들어올리는 모습이 다부지다.

 

고라니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른다. 삵이 사냥했는지 또는 다른 포식자가 죽였는지. 아니면 병이나 굶주림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먹이가 드문 겨울철 눈밭에서 고라니는 여러 동물에게 소중한 생명을 이어갈 양분을 제공하고 있었다.


삵은 이곳을 계속해서 찾아 온 것 같다. 삵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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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경계하면서도 먹이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하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뜯고 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고라니의 주검을 들어 올린다. 생각보다 힘이 세다. 이빨과 턱 근육도 잘 발달되어 있어 무는 힘도 강해 보인다.

 

크기변환_SY3_5270.jpg » 뼈에 붙은 살을 발라먹는 삵.

 

크기변환_SY3_5574.jpg » 눈초리가 날카롭다.

 

돌기가 돋아 까칠까칠한 혀로 뼈에 붙어있는 살코기를 잘 발라 먹는다. 먹이를 뜯어먹는 몸이 용수철처럼 탄력이 있다. 온몸의 근육이 율동을 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며 몸체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포식동물의 야성이 느껴진다.

 

삵은 성질이 거칠고 사나워 암팡져 보인다. 이 삵은 몸집이 다른 삵보다는 커 보인다. 이곳 환경을 잘 알고 경험이 많은  노련한 삵인 것 같다.

 

_SY3_5335.jpg » 사람이 다가는데도 자리를 피하지 않고 버티는 삵.

 

크기변환_SY3_5344.jpg » 하지만 결국 못이기는 척 사람을 피해 자리를 뜬다.

 

크기변환_SY3_5361.jpg » 자리를 피하면서도 먹는데 방해를 받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 눈매가 매섭다.

 

우리나라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 표범, 늑대가 자취를 감춘 이후 삵과 대적할 동물은 없다, 이곳 철원평야에서는 삵이 무법자다.

 

철원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를 공격해 두루미의 천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루미가 삵한테 잡혀 먹이가 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삵은 이제 우리나라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크기변환_SY3_5369.jpg » 멀리서 아쉬운 듯 먹이를 쳐다보며 사람이 가기를 기다리는 삵.

 

크기변환_SY3_5411.jpg » 사람이 가기를 기다리는 틈을 이용해 발을 닦고 있다.



크기변환_SY3_5449.jpg » 닦는 김에 세수도.

 

삵은 평야, 산림지대의 계곡, 연안, 비교적 키가 작은 나무로 덮인 산골짜기 개울가에서 주로 살지만, 마을 근처에서 살기도 한다. 단독 또는 한 쌍으로 생활한다. 야행성이지만, 외진 곳에서는 낮에도 먹이를 찾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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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는 주로 쥐 종류와 작은 동물인 멧토끼, 다람쥐, 청설모, 꿩, 오리, 곤충 등으로 생각되지만, 일단 사냥의 표적이 되면 자기 몸보다 2배 이상의 큰 동물도 사냥을 한다.


고양이처럼 생겼지만 고양이보다 몸집이 크고 꼬리에는 고리 모양의 가로띠가 있으며 눈위 코로부터 이마 양쪽에 흰 무늬가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몸길이는 약 55~90㎝, 꼬리 길이는 약 25~32.5㎝이다. 불분명한 반점이 많다.



크기변환_SY3_5408.jpg » 배를 채우지 못한 삵이 놓고 온 먹이가 아쉬운 듯 입을 다시고 있다.

 

크기변환_SY3_5512.jpg » 사람이 물러서자 다시 먹이로 다가간다.



크기변환_SY3_5513.jpg » 조심스레 먹이로 접근하는 삵. 방금 전까지 있던 곳으로 가면서도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삵은 사람보다 시력이 6배나 좋아 밤에도 먹이를 잡는 데 어려움이 없다. 입을 크게 벌릴 수 있고 머리는 둥글다. 다리도 튼튼해 날렵하게 잘 달린다. 걸을 때는 발톱을 집어넣어 소리없이 걷는다. 

 

크기변환_SY3_5541.jpg » 고라리의 주검을 들어 올리는 삵. 작은 체구에 견줘 다부지고 힘이 세다.



_SY3_5573.jpg » 먹이를 다루는 몸놀림이 유연하고 탄력이 있다.



시각·청각·후각이 모두 발달했다. 특히 어두운 곳에서는 눈동자가 완전히 열려 빛이 조금만 있어도 사물을 볼 수 있다.

 

새끼는 5월께 빈 나무구멍에 4, 5마리를 낳는다. 임신기간은 56∼66일이며, 암컷과 수컷이 함께 새끼를 보살핀다. 처음에 새끼는 눈도 뜨지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나 며칠이 지나면 활발히 돌아다닌다.

 

크기변환_SY3_5468.jpg » 삵의 얼굴. 콧잔등에서 이마까지 두 줄의 흰 줄무늬가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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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은 1950년까지는 우리나라의 산간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쥐약과 살충제 등을 먹고 죽은 동물과 새를 먹고 2차 피해를 입어 점차 멸종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천수만 등 일부 지역에서는 다시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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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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