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서도 똥은 오래된 미래
영화로 환경읽기 5. <마션>
똥이 흙과 섞이면 자원이 되지만 수세식 화장실의 물과 섞이면 골칫덩이
시야로부터 감출 뿐, "똥이 밥 되고 밥이 똥 되는" 순환과정 되살려야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많은 이가 영화 <마션>을 보았을 것이다.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본 뒤 원작소설을 읽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마션>은 원작소설 <마션: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이하 원작소설)를 비교적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화성에서 살아가기 위한 극한의 생존 미션 7가지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식물학과 기계공학을 전공한 우주인이다. 저자 앤디 위어는 원작소설에서 그가 “매우 낙천적이고, 임기응변에 강하며, 문제 해결력이 뛰어나다”고 소개한다.
동료 우주인들과 함께 화성에 도착하지만, 엿새 만에 모래 폭풍을 만나 홀로 화성에 남게 되고 동료들과 미 항공우주국(NASA)은 나중에야 그의 생존 사실을 알게 된다. 화성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마크 와트니가 벌인 생존 노력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만약 당신이 화성에서 혼자 있다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원작소설에서 저자가 제시한 7가지는 공기, 산소, 방사선 차단, 물, 식량, 에너지원, 그리고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였다. 이 중 마지막 ‘반드시 살아갈 이유’는 어려움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난관을 극복하여 지구로 돌아온 주인공의 모습으로 영화에서 잘 드러났다.
이제 화성에서 살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4번째와 5번째 미션을 살펴보자.
미션4: 물 없이는 생존도 불가능하다. 식수문제를 해결하라.
미션5: 삶을 연명할 열량이 필요하다. 화성 땅에서 작물을 재배하라.
이 중 물은 화성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마침 그곳에는 지구 최고의 기술로 만든 물 환원기가 있었다. 게다가 수소와 산소가 있으면 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지만) 잘 훈련된 우주인이 있었기도 하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화성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모습이었다.
화성의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와 ‘똥’
원작소설에서 마크 와트니는 시카고대학교를 졸업한 식물학자이다. 화성의 토양 그 자체로는 식량을 재배할 수 없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화성 토양에 물을 듬뿍 주더라도 박테리아의 활동이나 동물이 제공하는 특정한 영양분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마크는 자신과 동료 우주인의 똥과 지구에서 갖고 간 약간의 흙에서 필요한 영양분과 박테리아를 공급한다.
1)

평소 음식물 등을 모아 자연에서 순환시키려고 애쓰는 식물학과 친구들을 “멍청한 히피들”이라고 비웃던 마크 와트니가 이제 거름이 될 만한 물질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으게 된다. 거기에 더해 인분을 진공 건조하여 밀봉하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정교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과 동료 우주인들이 내어놓은 똥 봉지를 뒤지게 된다. 화성 토양에 활성 박테리아가 포함된 지구의 흙과 함께 식물 성장에 필요한 양분인 똥을 넣기 위해서이다.
적어도 어린 시절 재래식 화장실과 거기서 나온 똥을 거름으로 쓰는 것을 경험한 세대에게 똥을 거름으로 쓰는 장면은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사용하였고, 현재도 그렇게 사용하는 곳이 지구상에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재는 어떤가? 인간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연의 순환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지구의 인류학자 전경수 선생과 ‘똥’
문화인류학자 전경수 선생(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평생 연구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똥’이다. 이 지구의 인류학자가 똥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책을 낸 시점만 해도 벌써 20여 년 전이다.
그의 책 <똥이 자원이다: 인류학자의 환경론> (1992년 통나무)은 그동안 국내 인류학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던 주제를 논의의 장으로 갖고 왔다. 이후 <똥도 자원이라니까> (2002년 지식마당), <물걱정 똥타령> (2009년 채륜) 등을 통해 똥이라는 것이 흙과 섞이면 자원이지만, 현재의 수세식 화장실의 원리처럼 물과 섞이게 되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하였다.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기 이전, 우리의 똥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똥’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의 똥은 귀중한 거름이나 동물의 먹이로 활용되는 자원이었다. 똥을 자원으로 여기며 자연의 순환 시스템 내에서 살아온 것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아 문화권 전통이었다.2)
사람의 똥을 먹는 똥돼지를 키운 곳은 우리나라 제주도만이 아니다. 일찍이 중국 한(漢)나라 수도의 도시인들은 돼지에게 똥을 먹였다. 약 오천만 명에 이른 한나라 사람들의 똥은 돼지의 먹이가 되었고, 이후 돼지고기는 중국요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현재도 인도 등지에서 사람의 똥을 돼지가 먹이로 해결하고, 멕시코에서는 사람이 모래사장에 용변을 보면 털북숭이 멕시코 개들이 볼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것을 1분도 걸리지 않고 맛있게 해결한다고 한다.

똥을 거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최근까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영화 <마션>에서와 같이 똥은 적절한 미생물이 포함된 흙과 만나면 분해되어 식물에 필요한 영양분이 된다(다만 영화에서와 같이 똥을 바로 거름으로 쓰지는 못 한다. 적당한 기간 동안 거름으로 만드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수세식 화장실처럼 똥이 물과 섞이면 여러 단계에 걸쳐 처리해야 할 분뇨폐기물이 되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던 것처럼 똥이 흙과 만나면 거름이 된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양변기는 말 그대로 ‘서양에서 온 변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애초부터 우리의 방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양변기를 통해 똥을 우리의 시야에서 감추는 데는 성공하였을지 몰라도 자연의 순환 시스템에서 똥이 해 온 역할과는 거리가 먼 방식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 삶에서 똥은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양의 물과 함께 버려진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는 양은 10~13ℓ 정도이다. 어떤 때는 한 번 더 물을 내리기도 한다.
똥과 물, 두 자원이 섞이는 순간 자원이 쓸모없고 처리하기 어려운 폐기물이 되어 버리는 수세식 화장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이 방식이 우리나라에 확산된 것은 우리의 긴 역사 중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는다.3)
똥과 물: 두 자원을 섞어 버리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 생태공동체가 생겨나고 있다. 생태공동체를 구성하는 주요 원리 중 하나는 바로 순환성이다.
이른바 ‘생태 뒷간’에서 나온 배설물이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 퇴비가 되면 다시 생산 과정에 포함될 수 있다. “똥이 밥이고 밥이 똥”이 되는 순환의 과정에 말이다.
<이타카 에코빌리지>라는 책으로 소개된 미국 뉴욕주 이타카의 한 생태공동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생태공동체가 시도한 수많은 시도(태양광, 공동식당, 식물커튼 등) 중 가장 어려웠고 현재도 일부 가정만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 물을 사용하지 않는 화장실이라고 한다. 냄새를 차단하면서 퇴비화하는 장치를 확보하였지만, 생태공동체에 사는 미국인에게도 그것은 정서적이고 심미적인 이유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4)


전경수 선생의 오래된 책 <똥이 자원이다>에 담긴 제주도 송당리의 바이오가스 이용 사례에 나온 가축 분뇨는 2010년 바이오가스 발전소로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똥을 자원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와 같은 것이다.
(가상이지만) 화성에서 살아남은 식물학자와 지구의 인류학자가 함께 고민한 그 주제, 똥과 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질 순환의 중요한 고리이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은 물을 얻고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그렇듯이. 그리고 그는 똥이 자원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우리가 과거에 그러했듯이.
비록 쉽사리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화성의 식물학자와 지구의 인류학자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주제라면 우리도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하지 않을까? 과연 똥과 물이 만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영화 속의 화성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는 ‘감자’는 누군가의 ‘똥’으로 만든 기름진 땅에서 더 잘 자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김찬국/ 환경과교육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관련글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