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만난 토종꿀벌, ‘열폭탄’ 앞서 경계경보 발령

조홍섭 2016. 04. 01
조회수 56632 추천수 0

동료 동원 춤 대신 머리로 상대 들이받고 짧고 높은 '붕붕' 소리로 정교한 경보

둥지 초토화 장수말벌에 대응 경보체계 진화시켜, 아시아꿀벌에서만 확인


Takahashi _Honeybee_thermal_defence01.jpg » 재래꿀벌이 침입한 장수말벌을 공처럼 둘러싼 뒤 진동으로 체온을 높여 죽이고 있다. 사진=다카하시, 위키미디어 코먼스

 
양봉가에게 장수말벌은 악몽과도 같다. 꿀벌 몇 마리가 아니라 벌통이 통째로 살륙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로부터 인도차이나와 인도에 걸쳐 분포하는 이 말벌은 몸 길이 4.5㎝에 침 길이만 6㎜에 이르는 세계 최대 말벌이다. 크기에 걸맞게 일본에선 ‘큰 참새 벌’, 대만은 ‘호랑이 머리 벌’로 부르고 중국에선 ‘야크 킬러 말벌’로 부른다. 실제로 야크를 죽이는지는 몰라도 사람도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 큰 과장은 아니다.
 

bee2_Yasunori Koide_1280px-Vespa_mandarinia_japonica_IMG_0214.jpg » 세계 최대의 말벌인 장수말벌. 꿀벌은 이 가공할 포식자에 맞서 다양한 대응체계를 진화시켰다. 사진=Yasunori Koide, 위키미디어 코먼스


양봉은 유럽산 꿀벌이어서 애초 이 말벌을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장수말벌이 습격하면 양봉은 속절없이 초토화된다. 그러나 오랜 진화과정에서 이 포식자에 적응한 토종꿀벌은 침입한 장수말벌을 수백마리가 둘러싸 몸의 진동에서 나오는 고열로 죽이는 전략을 고안해 냈다(■ 관련 기사: 꿀벌, 무법자 장수말벌 공처럼 말아 ‘열폭탄’ ).
 
그런데 재래꿀벌은 이런 ‘열폭탄’ 공격 이전에 천적 말벌을 피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한 정교한 경보체계를 마련해 두고 있음이 중국과 미국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켄 단 중국 과학아카데미 시솽반나 열대식물원 교수 등 연구자들은 온라인 공개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 25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실험 결과를 밝혔다.

 

James Nieh_UC San Diego_Hornet-Attacking-Forager-160325.jpg » 아시아꿀벌을 잡아먹는 장수말벌. 이런 공격을 발견한 꿀벌은 둥지에 돌아가 경보를 울린다. 사진=James Nieh, UC San Diego
 
연구의 계기는 이번 연구자의 하나인 제임스 니에 미국 샌디에이고대 생물학 교수가 6년 전 양봉에서 독특한 경보 행동을 발견한 것이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는 밝혔다. 꿀벌은 둥지에서 엉덩이를 ‘8’ 자 모양으로 휘두르며 자신이 본 먹이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또 얼마나 훌륭한지를 동료에게 알린다.
 
그런데 천적을 발견한 꿀벌은 이런 동원 신호 대신 동료의 몸에 머리를 들이박으면서 짧지만 높은 진동수의 붕붕 대는 소리를 낸다. 이런 신호에 접한 꿀벌은 그자리에서 얼어붙는 반응을 보인다. 아시아의 꿀벌도 과연 이런 ‘정지 신호’를 내는지 알아보게 된 것이다.
 
예상대로 아시아 꿀벌도 비슷한 경계 경보를 냈지만 더 정교했다. 니에 교수는 “놀랍게도, 아시아 꿀벌은 위험 정도에 따라 진동수와 높이를 달리했고, 위험 상황에 따라 진동파의 길이를 변화시켰다.”라고 말했다.

 

bee1_Rushenb_Apis_cerana,_Asiatic_honey_bee_-_Khao_Yai_National_Park.jpg » 재래봉으로 불리는 아시아 꿀벌. 장수말벌과 함께 진화했다. 사진=Rushenb,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장수말벌과 그보다 작지만 역시 포식자인 다른 말벌을 이용해 실험을 했다. 꿀벌들은 작은 말벌보다 장수말벌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리고 야외에서 장수말벌을 만났을 때보다 둥지에 침입했을 때 경보를 더 자주 냈고 진동수도 높았다. 예를 들어, 먹이터에서 장수말벌을 만난 꿀벌은 5번의 정지 신호를 냈지만 작은 말벌을 본 꿀벌은 2번 신호를 냈다.


재래꿀벌의 경보 신호 유튜브 동영상: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양봉과 재래봉 모두 비슷한 반응을 일으키는 ‘정지신호’를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라며 “특히 아시아 꿀벌은 둥지에 침입해 가공할 피해를 끼치는 장수말벌에 대응하기 위해 정교한 경계 신호 체계를 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곤충에서 이런 복잡한 경보 신호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꿀벌 사회가 새로운 차원의 정교한 소통 방식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다”라고 밝혔다.

 
꿀벌의 침은 장수말벌의 두꺼운 키틴질 껍질을 뚫지 못한다. 따라서 장수말벌은 꿀벌 둥지 들머리에서 기다리며 방어를 위해 나오는 꿀벌을 모두 죽인 뒤 벌통 안에 들어가 애벌레를 약탈한다.
 
연구자들은 실험에서 한 번의 공격으로 장수말벌은 꿀벌의 30%를 죽이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재래봉은 경계경보를 듣고 장수말벌에 ‘열폭탄’ 공격을 감행하는 걸까.
 
연구자들은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꿀벌들은 오히려 동료가 내는 휘발성 화학물질인 페로몬과 장수말벌의 냄새와 시각적 단서에 자극받아 덤벼들었다. 장수말벌을 공처럼 둘러싼 재래봉의 수는 400마리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약 90마리가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an K, Dong S, Li X, Liu X, Wang C, Li J, et al. (2016) Honey Bee Inhibitory Signaling Is Tuned to Threat Severity and Can Act as a Colony Alarm Signal. PLoS Biol 14(3): e1002423. doi:10.1371/journal.pbio.100242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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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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