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단지는 최상위 포식자, 주변 먹이그물 ‘휘청’

조홍섭 2018. 11. 08
조회수 18183 추천수 1
맹금류 줄자 주요 먹이인 도마뱀 행동·생리·형태 연쇄 영향
먹이 부족으로 성장·성징 지체…핵심 생태계에 건설 신중해야

512.jpg » 육상 풍력단지는 단지 새나 박쥐와 충돌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하고 복잡한 생태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클립아트코리아

풍력 발전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재생 에너지원이다. 세계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된 육지 면적을 다 합치면 남한의 1.7배인 1700만㏊에 이를 정도다.

육상 풍력 발전이 늘면서 그로 인한 생태계 영향이 관심사다. 주로 새나 박쥐 등 나는 동물이 풍차에 부딪혀 죽는 일이 문제가 돼 왔다. 철새의 이동 경로가 바뀌거나 풍력 단지 근처 육상 포유류의 밀도와 활동이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생태계 먹이그물 전반에 어떤 파급 효과를 낳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인도와 미국 연구자들은 풍력 발전 단지가 들어선 지 16∼20년이 지난 인도의 세계적 생물 다양성 보고인 서고트 지역에서 풍력 발전이 생태계에 끼치는 간접적 영향을 분석해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최근호에 보고했다.

512 (2).jpg » 인도 남서부의 서고트 지역은 세계적 생물 다양성 핫 스폿이다. 이곳에 들어선 풍력발전 단지의 모습. 마리아 태커 외 (2018)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제공.
 
풍력 단지가 있는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곳에 견줘 말똥가리, 새매, 솔개 등 맹금류가 훨씬 적었다. 연구자들은 풍차가 없는 곳에서 맹금류가 급강하해 먹이를 공격하는 빈도가 4배 더 잦았다고 밝혔다. 맹금류가 풍차에 부딪혀 죽거나 그 장소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포식자가 줄자 그들의 주요 먹이인 이 지역 고유종 도마뱀에 변화가 일어났다. 풍력 발전소 근처에서 사는 육상 포유류에서 기계적 소음으로 인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늘어났다는 보고는 있다. 그러나 이 지역 도마뱀은 반대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코스테론 분비가 줄었다. 연구자들은 “포식 압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곳 도마뱀은 도망치기 직전까지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는 거리가 풍력 발전소가 없는 곳보다 5배나 짧았다. 이 지역은 목축과 채취를 위해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지만 도마뱀은 포식자의 감소에 따라 생리적으로 느긋해진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포식 압력 변화가 직접 잡아먹히는 영향뿐 아니라 행동, 생리, 형태 등 “이제까지 예상치 못했던 복잡한 방식으로 생태계 먹이 그물에 영향을 끼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풍력 발전소는 “기존 먹이 그물 위에 새로운 최상위 포식자를 추가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풍차가 포식자인 맹금류를 줄인 덕분에 주요 먹이인 도마뱀의 삶이 나아졌을까. 연구 결과는 반대였다. 발전소 부근 도마뱀은 없는 지역보다 오히려 말랐다. 포식자가 줄자 도마뱀의 밀도가 3배나 늘었고, 이는 개별 도마뱀이 먹을 수 있는 절지동물의 양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512 (1).jpg » 서고트 지역에서 맹금류의 주요 먹이인 토종 도마뱀. 풍력발전으로 맹금류가 줄자 행동·생리·형태에 다양하고 미묘한 영향을 받았다. 마리아 태커 외 (2018)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제공.

이 도마뱀 수컷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암컷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목 아래에 파랑·검정·오렌지빛의 화려한 군턱을 자랑한다. 그런데 풍력발전소가 있는 곳의 도마뱀 수컷은 군턱의 파랑과 오렌지빛이 덜 밝고 선명하지도 않았다. 이는 성 선택에서 치명적 약점이다. 연구자들은 “도마뱀의 개체 수가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해지자 턱을 장식할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많은 딱정벌레 구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풍력 발전은 화석 연료 발전보다 자연 파괴와 서식지 교란이 적은 발전 방식이다. 그러나 독특하거나 다양성이 높은 생태계에서 풍력 발전이 끼치는 영향은 훨씬 클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이들은 “인류는 (대형 포식자) 동물을 제거함으로써 그들로 인한 공포를 이기고 제어 받지 않는 ‘슈퍼 포식자’로 지구에 군림하게 됐다. 이번 연구는 사람이 직접 나타나지 않더라도 풍력 단지 같은 인위적 교란만으로도 효과적인 최상위 포식자 구실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논문에 적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ria Thaker et al, Wind farms have cascading impacts on ecosystems across trophic levels, Nature Ecology & Evolution, https://doi.org/10.1038/s41559-018-0707-z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