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불리 피 빤 모기가 귀신같이 도망치는 비결

조홍섭 2017. 10. 22
조회수 12278 추천수 1
다리 힘 아닌 초당 600번 날갯짓으로 날아올라
긴 다리로 충격 완화, 포유류 감지 한도의 4분의 1

m1_mosquito_takeoff_bloodfed_Florian Muijres, Wageningen University..jpg » 말라리아 모기가 빠른 날갯짓과 긴 다리를 이용해 숙주가 눈치채지 못하게 날아오르는 모습. 플로리안 뮈즈레스, 와게닝언대

모기는 냄새와 색깔 등 여러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먼 거리에서도 적당한 상대를 찾아낸 다음 2개의 초소형 펌프를 이용해 자신의 체중 1∼2배에 이르는 피를 1∼2초 안에 흡수한다(■ 관련 기사: 모기가 당신을 찾는 방법…처음엔 코 다음엔 눈, '최고 위험 동물' 모기, 왜 내 피만 좋아할까). 그러나 피를 빨아 뚱뚱해진 몸으로 어떻게 들키지 않고 날아가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네덜란드와 미국 연구자들은 말라리아모기를 대상으로 초당 12만5000 프레임을 찍는 초고속 카메라 3대를 이용해 모기가 숙주의 피부로부터 도망치는 비결을 조사했다. 그 결과 흡혈로 체중이 2배로 불어난 몸집인데도, 모기는 포유류의 민감한 피부로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약한 힘만을 미치고 날아갔다. 강력한 날갯짓과 긴 다리가 그 원동력으로 밝혀졌다.
 
대부분의 곤충은 이륙할 때 강력한 다리 힘을 이용한다. 파리는 위협을 느끼면 먼저 다리로 바닥을 박차 몸을 공중으로 내던진 뒤 미친 듯이 날갯짓을 해 도망친다. 전투기 비행사의 비상탈출 같은 이 과정에서 파리는 종종 비행 통제력을 잃기도 한다.
 
그렇다면 파리와 체중이 비슷한 모기는 어떨까. “모기는 이륙을 대부분 날개 힘으로 하고 다리로는 아주, 아주 조금만 밀어내는데, 아마 전혀 쓰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연구에 참여한 소피아 창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대학원생은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네덜란드 공동연구자들이 피 공급장치를 제공해 주기 전까지 자신의 팔뚝을 모기에 내주며 실험을 진행했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m2_cdc_Anopheles_stephensi.jpg » 말라리아 모기가 피를 빠는 모습. 은밀하게 접근해 도망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질병통제본부(CDC), 위키미디어 코먼스

조사 결과 모기는 날아오르기 직전 0.03초 동안 초속 600번의 빠른 속도로 날갯짓했다. 이륙에 필요한 양력의 61%를 날개가 냈다. 이륙하는 동안 모기는 긴 다리를 천천히 펼쳐 피부를 누르는 힘을 분산시켰다. 
 
체중만큼 피를 빤 모기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이륙속도가 18%나 느려진다. 자칫 알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혈액을 어렵게 확보하고도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느려진 속도를 벌충하기 위해 발로 박차는 힘을 늘리면 숙주가 감지할 위험도 커진다. 은밀성이냐 속도냐의 갈림길에서, 모기는 강력한 날갯짓과 긴 다리라는 제3의 해법을 찾은 것이다. 
 
연구자들의 실험에서 초파리는 이륙할 때 포유류의 피부 감지 한계보다 2배 이상의 힘을 미쳤지만(그래서 이륙 순간 눈치채고 손바닥으로 때릴 수 있지만) 모기는 한계의 3∼4분의 1에 그쳤다(배부른 모기가 문 자리를 박차고 날아가는 순간은 보기 힘들다).
 
 

측정 결과 모기의 이륙속도는 같은 체중의 초파리와 비슷했다. 속도 손실 없이 은밀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창은 “이런 능력은 모기에게 특별한 것이지만 다른 흡혈 곤충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숙주로부터 피를 빤 뒤 슬그머니 도망치는 능력은 다른 흡혈 곤충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연구자들은 모기가 어떻게 피부에 눈치채지 못하게 내려앉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밝혔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실험생물학’ 19일 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 T. Muijres et al, Escaping blood-fed malaria mosquitoes minimize tactile detection without compromising on take-off speed,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017) 220, 3751-3762 doi:10.1242/jeb.16340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기꺼이 비행을 포기한 새들에게 인류는 재앙이었다기꺼이 비행을 포기한 새들에게 인류는 재앙이었다

    조홍섭 | 2020. 12. 03

    인류가 날지 못하는 새 166종 멸종시켜…천적 없는 대양 섬 뛰어난 적응이 비극 불러멸종의 상징인 도도는 인도양 모리셔스 섬에 살던 대형 비둘기였다. 1000년 전 멸종한 마다가스카르 섬의 코끼리새는 몸무게 500㎏에 알 무게만 10㎏인 인간이 ...

  • 새들도 하는 민주주의…우두머리 독재 다수결로 누른다새들도 하는 민주주의…우두머리 독재 다수결로 누른다

    조홍섭 | 2020. 12. 02

    아프리카 호로새 지배층이 먹이 독차지하면 다수가 이동해 굴복시켜동물은 강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산다고 흔히 알고 있지만 최근 일부 야생동물에서 일종의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 원리가 관철되는 사례가 활발히 연구되고 ...

  • 코끼리의 하루 물 소모량 욕조 2개, 기후변화 취약코끼리의 하루 물 소모량 욕조 2개, 기후변화 취약

    조홍섭 | 2020. 11. 30

    여름엔 하루 400∼500ℓ 체온 냉각 등에 써…주 서식지 건조·온난화 가속건조한 사바나에 사는 아프리카코끼리가 더운 날 하루에 잃는 물의 양은 몸 수분함량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욕조 2개를 가득 채울 분량으로 육상 동물에서...

  • 야생 호랑이도 백신이 필요해, 개홍역 유일 대책야생 호랑이도 백신이 필요해, 개홍역 유일 대책

    조홍섭 | 2020. 11. 27

    개보다 너구리 등 야생동물이 바이러스 ‘저수지’…정기 포획 조사 때 접종하면 효과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한국호랑이)의 주요 멸종위협으로 떠오른 개홍역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는 개가 아닌 야생 호랑이에게 직접 백신을 접종하는 대책이 ...

  • 2천년 채취한 진귀 한약재, ‘칙칙한’ 애들만 살아남아2천년 채취한 진귀 한약재, ‘칙칙한’ 애들만 살아남아

    조홍섭 | 2020. 11. 26

    티베트 고산식물 천패모, 채집 심한 곳일수록 눈에 안 띄는 위장 색 진화사람의 자연 이용은 진화의 방향도 바꾼다. 큰 개체 위주로 남획하자 참조기는 살아남기 위해 점점 잘아지고 상아 채취가 계속되자 상아가 없는 코끼리가 늘어난 것은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