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오징어, 100년 만에 오해 풀다

조홍섭 2012. 10. 05
조회수 30397 추천수 0

1903년 발견, '지옥에서 온 뱀파이어' 학명 붙여

생김새와 달리 심해에 내려오는 '찌꺼기 눈' 먹고 사는 소심 청소부 

 

 vamp-squid-mouth-121002.jpg » 뱀파이어 오징어. 다리 바깥에는 빨판이 안쪽엔 가시가 돋아있다. 사진=몬터레이만 수족관연구소(MBARI)

 

지구는 '물의 행성'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바닷물의 행성'이다. 지구 표면의 약 70%가 바다인데다 그 양도 많아, 만일 육지와 바다 밑을 평평하게 고른다면 지구 전체는 2700m 깊이의 바닷물 속으로 퐁당 빠지게 된다.
 

평균 깊이가 3682m나 되는 바다는 늘 알 수 없는 생물이 사는 신비로운 세계였다. 과학자들은 지구 구석구석을 탐사했지만 바다 밑바닥에서 조사가 끝난 곳은 1%가 안 된다.

하지만 바다는 동물이 살아가기에 위험하고 힘든 곳이다. 표면을 조금만 벗어나면 캄캄하고 차며 육지보다 수천 배나 높은 압력을 버텨야 한다.
 

강자들이 판치는 바다에서 살아남는 것도 큰일이다. 동물플랑크톤의 꼬리가 하나같이 새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새우 꼬리가 포식자 앞에서 탄력 있게 튀어 도망치는 완벽한 구조를 갖췄기 때문이다. 또 수명이 긴 대구가 평생 1000만개나 되는 알을 낳는 것도 엄청난 포식 압력을 말해 준다.
 

따라서 이렇게 거칠고 험한 바다에서 살아남은 기괴한 생물이 특히 심해에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심해의 괴물 가운데 유명한 것이 뱀파이어오징어이다.

 

vamp-swimming-121002.jpg » 뭉툭하고 검붉은 몸집에 커다란 파란 눈이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진=MBARI

 

흡혈박쥐문어라고도 불리는 이 심해 생물은 검붉은 뭉툭한 몸집에 커다란 푸른 눈, 놀랐을 때 몸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나타나는 날카로운 가시가 저절로 악마를 연상시키는 동물이다. 1903년 독일의 해양생물학자 카를 쿤이 발견해 지은 학명도 ‘지옥에서 온 뱀파이어’란 뜻이다.
 

애초 문어의 일종으로 알았지만 나중에 문어와 오징어의 중간인, 지금은 이 생물을 빼고 모두 멸종한 별도의 ‘목’에 속하는 ‘살아있는 화석’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지난 100여년 동안 과학자들은 이 기괴한 오징어가 무얼 먹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이름처럼 다른 동물의 피를 빨아먹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다른 연체동물처럼 사냥을 한다는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vampire-squid-black-121002.jpg » 뱀파이어 오징어의 먹이인 바다 눈. 바다 표면의 덜 분해된 유기물이 눈처럼 내려온다. 사진=MBARI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몬터레이만 수족관연구소 해양생물학자들은 최근 영국 왕립학회가 내는 학술지 <왕립학회보 비(B): 생물학>에 실린 논문에서 수수께끼에 가려 있던 뱀파이어오징어의 먹이와 생태를 밝혔다. 연구진은 원격조정 잠수정을 이용해 자연적인 생태를 관찰하는가 하면 5마리를 채집해 수족관에서 직접 기르면서 먹이행동 등을 조사했다. 놀랍게도 이 기괴한 모습과 이름의 원시 오징어는 매우 수동적이고 온순한 바다 청소부로 드러났다.
 

몸길이가 30㎝까지 자라는 이 오징어가 먹는 것은 바다 표면에서 심해로 눈처럼 내리는 ‘바다 눈’이다. 바다표면에 사는 생물의 사체나 배설물이 덜 분해돼 바다 밑으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을 낚아채 먹는 것이다.

vamp-filament.g.jpg » 뱀파이어 오징어는 다리가 10개인 다른 오징어와 달리 다리가 8개인데, 대신 2개의 자유롭게 움직이는 긴 섬모가 있어 먹이를 낚아챈다. 사진=MBARI

 

이런 먹이 활동은 서식지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이 원시 오징어는 수심 600~900m 깊이의 무산소 상태 가까운 구역에 서식하는데, 이런 곳은 주로 심해의 바닷물이 바다 표면으로 상승하는 곳에 형성된다. 바다 표면에 영양분이 많아 식물플랑크톤이 번성하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유기물을 다 분해할 산소가 부족한 수역이 그런 곳이다.
 

산소가 거의 없는 곳에는 포식자도 드물고, 다른 심해보다 ‘바다 눈’이 풍부하게 오기 때문에 이를 먹이로 삼은 것이다. 칠흙처럼 어둡고 산소가 거의 없는 심해는 사실상 지옥과 같다. 애초 겉모습만 보고 지은 이름이지만 맞는 면도 있었던 것이다.

vampire-filament-120925.jpg » 먹이를 향해 긴 섬로를 앞으로 뻗은 모습. 사진=MBARI

 

vamp-filament-arms-f.jpg » 섬모를 당겨 발로 먹이를 떼어내는 뱀파이어 오징어. 사진=MBARI

 

이 원시 오징어는 다리가 10개인 다른 오징어와 달리 다리가 8개뿐이다. 대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두개의 기다란 섬모가 있는데, 이것을 뻗어 유기물 찌꺼기를 점액에 붙인 뒤 다리로 공처럼 뭉쳐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확인됐다.
 

영양가가 빈약한 찌꺼기를 먹는 이 오징어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달인이기도 하다. 신진대사는 연체동물 가운데 가장 낮고 몸의 조직은 주변 바닷물과 밀도가 거의 비슷해 힘을 거의 들이지 않고 흐느적거리며 물에 떠돌아다닌다.

 

뱀파이어 오징어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MBARI)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Vampire squid: detritivores in the oxygen minimum zone

Hendrik J. T. Hoving and Bruce H. Robison

doi: 10.1098/rspb.2012.1357
Proc. R. Soc. B published online 26 September 201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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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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