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꿀에 닿는 순간 박쥐의 혀는 변신한다

조홍섭 2013.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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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긴 혀 덮은 돌기에 혈액 흘러 일어서, 꿀 묻히는 양 늘어

유연한 혀의 신축과 팽창 응용한 생체로봇에 응용 가능성

 

bat3_Cally Harper.jpg » 꽃 꿀에 닿는 순간 박쥐의 혀에 난 돌기가 일어선 모습의 주사전자현미경 사진. 사진=캘리 하퍼 외, <피나스>

 

벌새나 꿀빨이 박쥐처럼 꽃의 꿀을 빠는 동물은 정지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먹이를 섭취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쓴다. 따라서 한 번에 가능하면 많은 꿀을 빨아들이도록 혀가 전문화돼 있다.
 

벌새와 ‘팔라 긴 혀 박쥐’(학명 글로소파가 소리시나)는 혀가 길기로 유명하다. 또 벌새의 혀는 끄트머리에서 가지 쳐 둘로 나뉜 관 형태인데, 꿀에 담갔다가 뺄 때 관 안과 관 사이에 꿀이 묻어나오도록 돼 있다.
 

Ryan Somma_640px-Palla's_long-tongued_bat.jpg » 혀끝의 미세구조가 드러난 팔라 긴 혀 박쥐가 꽃 꿀을 빨고 있다. 사진=라이언 솜마,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 브라운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대학원생인 캘리 하퍼는 박쥐의 혀에도 벌새처럼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전자현미경과 초고속 카메라로 박쥐가 꿀을 먹는 과정을 촬영해 분석한 결과 그런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미국립학술원회보(PNAS)> 7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 박쥐의 혀가 꿀을 빨 때 형태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bat4.jpg » 팔라 긴 혀 박쥐가 인공 꽃 꿀을 빠는 실험 모습. 흰 화살표는 돌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혀끝 지점이다. 사진=캘리 하퍼 외, <피나스>

 

꽃을 본 이 박쥐는 혀를 길게 내민다. 혀끝은 기다란 원통형 돌기가 머리카락처럼 덮고 있어 마치 설거지 용 솔처럼 보인다. 이제까지는 이런 형태가 표면적을 늘려 박쥐가 꿀을 효과적으로 빨도록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밀한 관찰 결과 꽃 꿀에 닿는 순간 혀가 길게 늘어나면서 동시에 혀 표면에 나 있는 돌기 속으로 혈액이 쏟아져 들어가 혀에 붙어 누워있던 돌기가 일제히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발기 상태는 꽃에서 혀를 빼낼 때까지 유지됐다.

 

꿀을 빨 때 팔라 긴 혀 박쥐의 혀끝 돌기가 변화는 일련의 과정
 

bat2-1.jpg » 그림=캘리 하퍼 외, <피나스>

 

 이처럼 돌기가 일어서면 돌기와 혀 사이의 공간이 늘어나 한번 혀를 내밀어 묻힐 수 있는 꿀의 양이 훨씬 늘어난다. 혀가 평소보다 50% 길게 늘어나면서 팽창하는 시간은 0.04초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bat5.jpg

 

bat6.jpg » 돌기가 누워 있는 상태(위)와 일어선 상태 주사전자현미경 사진. 사진=캘리 하퍼 외, <피나스>


 

하퍼는 “박쥐 혀끝의 유연한 신축과 팽창은 소형 수술용 생체로봇 등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브라운대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팔라 긴 혀 박쥐가 꽃 꿀을 빠는 과정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pecialized bat tongue is a hemodynamic nectar mop
Cally J. Harpera, Sharon M. Swartza, and Elizabeth L. Brainerda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22272611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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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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