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채취한 진귀 한약재, ‘칙칙한’ 애들만 살아남아

조홍섭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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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고산식물 천패모, 채집 심한 곳일수록 눈에 안 띄는 위장 색 진화

h1.jpg » 같은 천패모라도 채집압력이 낮은 곳(왼쪽)과 높은 곳의 색깔은 전혀 다르다. 채집되지 않기 위해 위장 색을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양 뉴 제공.

사람의 자연 이용은 진화의 방향도 바꾼다. 큰 개체 위주로 남획하자 참조기는 살아남기 위해 점점 잘아지고 상아 채취가 계속되자 상아가 없는 코끼리가 늘어난 것은 그런 예다.

중국의 귀한 전통 한약재로 쓰인 천패모란 백합과 식물에서도 그런 현상이 발견됐다. 채집이 심한 곳일수록 이 고산식물의 잎과 꽃은 밝은 초록 색깔이 줄어들고 배경 암석지대에 녹아드는 색깔이 많아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양 뉴 중국 과학아카데미 쿤밍 식물연구소 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티베트 고원 남동쪽에 있는 헝돤산맥의 천패모를 조사한 결과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chuan-bei-mu.jpg » 한약재로 쓰이는 천패모의 땅속줄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천패모는 고산 너덜지대에서 5년이 자라야 한 해에 꽃을 한 송이 피우는 희귀식물로 비늘 모양의 땅속줄기를 결핵 치료제 등 한방재료로 쓴다. 문제는 이 식물이 2000년 이상 전부터 채취해 온 전통 한약재이고 고가로 팔려 채취 압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현재 말린 천패모는 ㎏당 480달러(약 53만원)로 팔리는데 이만한 무게를 채우려면 천패모 3500포기를 채취해야 한다. 또 잎이나 줄기가 아닌 뿌리째 캐기 때문에 채집한 개체는 모두 죽으며, 어린 개체일수록 비싸게 팔려 크든 작든 눈에 띄는 족족 캐낸다.

h3.jpg » 고산 너덜지대에 분포하는 천패모는 5년이 자라야 1년에 꽃을 한 송이 피운다. 양 뉴 제공.

연구자들은 천패모의 잎과 꽃 색깔이 초록부터 갈색과 회색까지 다양한데 이런 강한 채집 압력이 색깔의 변화를 불렀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구 결과 잎 색깔은 배경색에 따라 결정됐으며 채집 압력이 클수록 배경색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채취가 많이 이뤄지는 곳에서는 돌연변이를 통해 배경색과 어울리는 위장 색을 띤 개체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연구에 참여한 마틴 스티븐스 영국 엑시터대 생태학자는 “한약재로 쓰이는 식물의 채집이 식물에 채집자의 눈길을 피하는 쪽으로 위장하는 진화를 이끌었다”며 “채집 강도가 큰 곳일수록 더 감쪽같이 위장한다”고 말했다.

h4.jpg » 천패모의 정상적인 색은 밝은 초록빛이지만(A, B) 채집 압력이 높은 곳에서는 사람 눈에 띄기 힘든 위장을 한 개체만 살아남았다(C, D). 양 뉴 외 (2020)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실제로 천패모는 큰 바위 밑이나 가파른 사면 등 채취하기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장소에서는 밝은 초록빛을 띠었지만 채집이 쉬운 곳에서는 주변 암석과 구별하기 힘든 칙칙한 빛깔로 위장했다. 식물의 색깔이 사람의 발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시민 과학 누리집을 만들어 시민들이 위장한 천패모를 얼마나 빨리 찾아내는지 실험했다. 예상대로 주변 환경과 잘 일치하는 위장일수록 사람들이 찾는 데 오래 걸렸다.

일반적으로 식물이 색깔을 바꾸는 것은 초식동물에 의한 자연선택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 지역에는 야크 등 초식동물이 없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또 천패모에는 방어물질인 알칼로이드가 풍부한데, 한약재의 원료로 쓰이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쥐들이 기피한다.

h5.jpg » 헝돤산맥은 티베트 고원 남동쪽이자 쓰촨 성과 윈난 성 서쪽에 자리 잡은 세계적 생물 다양성 보고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주변 환경과 구별하기 힘든 어두운 색깔로 위장한 역효과는 없을까. 양 뉴는 “채집 압력이 높은 곳의 천패모는 위장 때문에 뒤영벌 같은 가루받이 곤충을 유인하는 능력이 떨어질지 모른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앞으로 규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0.10.07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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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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