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달은 왜 한강 아닌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나-풍수의 과학
평양은 '행주형' 퇴적층, 우물 파다가는 지반침하 우려
풍수지리는 '환경'의 원형…지속가능성 내다본 전통지식
» 국내 최고의 이상향으로 꼽히는 지리산 청학동의 불일폭포 부근.
‘문전옥답’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집 가까이에 있는 논이 유독 기름진 이유가 뭘까. 전통 생태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는 이들은 ‘바로 그런 곳에 집이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산자락의 유기물이 씻겨 내려가다 경사지와 평지가 만나는 부근에 쌓이는데, 전통적으로 이런 곳이 집터였다. 게다가 집 안에 있던 두엄과 초가지붕의 유기물도 흘러들고 심지어 동네 개들의 배설물도 한 몫을 하니,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 이곳의 논이 비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문전옥답이 만들어지는 지형적 배경
전통마을, 마을숲, 풍수지리 등에서 생태적 지혜와 지속가능한 삶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10년 전 전통생태 발표 모임을 시작한 생태학, 민속학, 지리학, 사회학, 건축학 등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한국의 전통생태학>이란 이름의 책 두 권을 엮어낸 데 이어 이번에 그 세 번째에 해당하는 <전통생태와 풍수지리>를 내놓았다.
이 책은 풍수지리에서 지속가능성의 가능성을 찾는다. 흔히 명당을 찾기 위해 좌청룡 우백호를 따지는 옛 풍습이나 미신으로 치부하는 풍수지리가 이 책에서는 물, 땅, 바람, 생물을 생태순환 시스템으로 인식한 전통지식으로 거듭난다.
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이도원 박수진 윤홍기 최원석 지음
지오북/ 2만2000원
다시 문전옥답이 있는 전통마을로 돌아가자.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생태학)는 전통마을 속의 물질순환을 이렇게 설명했다.
옛 사람들은, 마을이 산울(산으로 된 울)에 의해 잘 싸여 있는 입지를 정하고, 마을 앞이 열려 있으면 수구막이로 막고, 각각의 산줄기를 연결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공간구조를 유지하게 되어 빗물이 모여 작은 내를 이루고, 이렇게 수구로 흘러가고, 영양물질은 내부순환을 통해서 마을에서 이용됩니다. 가정집에서 나오는 오수도 유역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면 손실이니까 최대한 멈추도록 연못에 가두어 두는 것이지요." (51쪽)
이런 전통마을은 살기 좋아서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지속가능성 아니냔 것이다. 이런 살만 한 곳을 찾는 전통지식이 풍수지리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청룡, 백호, 현무, 주작(사신사)을 겸비한 곳, 즉 명당이란 뒤에 바람을 막아 줄 큰 산이 있고 앞은 탁 틔어 있어 햇빛이 잘 들며 좌우 양쪽에는 낮은 산자락이 비바람을 막아주고 마을 휘감아 냇물이 흘러가는 곳이다.
» 전통마을 공간 구성과 기능
» 풍수의 사신사 지형
이런 좌청룡 우백호, 배산임수의 지형은 우리나라에서 광범하게 나타나며 지형 발달과정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박수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설명한다.
한반도는 일본이 떨어져 나가고 동해가 열리면서 그 힘을 받아 융기하고 있는데, 처음 바닷물 높이의 평평한 땅이 솟아오르면 비바람과 강물에 깎여 나간다. 융기하고 깎이는 과정을 되풀이하면 계단 형태의 지형이 생기는데, 현실적으로는 먼 높은 산줄기부터 차츰 고도가 낮은 산줄기가 나타나고 산자락이 평지와 만나는 곳에 사신사 지형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때 물줄기가 만나 밖으로 빠져나가는 지점인 수구의 지질이 무엇인가가 명당 지형을 결정하는 관건이다. 만일 수구가 단단한 지질이라면 물이 바닥을 침식하는 속도가 늦어져 상류 쪽에 퇴적물이 쌓여 넓은 평지가 형성되지만 수구가 무른 지형이면 빠른 속도로 침식이 진행돼 평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지반이 솟아오르고 깎여나가는 작용이 반복되어 계단 모양의 지형이 생기는 모식도.
» 덕유산 능선. 계단 모양의 지형이 분명하게 보인다. 사진=손일
» 논산에서도 비슷한 계단형 지형이 보인다.
» 논산의 계단형 지형 가운데 사신사 지형(화살표)이 드러나 있다.
» 지반 융기 이후 사신사 지형이 형성되는 과정
박 교수는 이런 사신사 지형은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자기조직화 지형이라고 말한다. 곧, 부분 안에 전체의 모습이 무한 반복되는, 예컨대 해안선과 같은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복궁 주변이 사신사 지형이라면 서울도 크게 보면 사신사 지형을 갖추고 있다.
풍수의 이런 현대적 해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박 교수는 동양의 자연관이 “땅을 개별적으로 인식하지 말고 전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과 그 땅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을 유지,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인간이 간섭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인식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것인가가 과제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풍수지리는 바로 그런 실천적인 인식체계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풍수에서는) 땅이 발전해가는 경로들을 관찰하고 분류한 뒤, 그 발전방향 혹은 경로를 유지, 보완해 나가는 방향으로 땅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전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회복탄력성을 파악하는 것이고, 발전 경로를 유지, 보완한다는 것은 곧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42쪽)
» 높은 산을 등져 찬 바람을 막고 해가 잘 드는 남향에 자리잡은 풍수 원리에 잘 맞는 마을 입지.
윤홍기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교수(문화지리)는 생기를 받아서 잃지 않는 것이 풍수의 핵심 목적인데 이를 위해서 마을의 변형을 막아 지속가능성을 지키는데 풍수가 기여했다고 말한다. 생기는 산줄기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명당으로 연결되는 산줄기를 끊으려 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대항했고, 물을 만나면 흘러나가지 않고 머무는 생기를 잃지 않기 위해 연못을 집 앞에 파지 뒤에는 파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전북 선창리 마을은 배에 해당하는 ‘행주형’ 풍수 형국을 지니고 있는데, 집이 40호가 넘으면 운수가 기울지만 40호 밑으려 내려가면 다시 흥한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마치 배에 실을 수 있는 용량의 한계를 40호로 둔 것처럼 이런 형국이 마을 개발의 한계를 두어 지속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고 윤 교수는 설명한다.
행주형 풍수형국에서는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우물을 파면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고, 실제로 행주형 형국인 평양에서 우물을 파지 않고 대동강 물을 길어 마셨다. 김선달이 한강이 아닌 대동강에서 물을 팔아먹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지형학적으로 타당한 측면이 있다. 박수진 교수는 평양이나 안동 등은 강물이 구불구불하게 흐르면서 이뤄진 퇴적 지형이어서 이런 곳에 구멍을 뚫어 지하수를 채취하면 지반침하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즉 이곳에서 풍수는 지역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구실을 한 것이다. 윤 교수는 “한국의 풍수신앙과 이론은 미신적인 면이 지배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건전한 환경관리에 유익한 개념이 존재하여 새로운 환경 윤리사상 개발에 공헌할 여지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최원석 경상대 교수는 “풍수가 마을의 자연환경적 조건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마을의 풍수를 본다’는 말은 ‘마을의 환경을 평가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지요. 조선시대 풍수지식인(승려, 유학자, 지관 등)이 어떤 마을을 지나치면서 ‘이 마을은 풍수가 안 좋으니 동구에 숲을 조성하라’고 했다면 ‘마을의 미기후적이고 경관생태적인 환경관리를 위해 숲을 조성하라’는 당시 환경전문가의 조언이기도 하였습니다." (206~207쪽)
풍수 사상은 우리 민족이 꿈꾸었던 이상향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이상향인 청학동은 지리산 언저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인로의 <파한집>에는 이렇게 묘사돼 있다.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여, 엎드려서 몇 리를 지나면 넓게 트인 지경에 들어가게 된다. 사방이 모두 옥토여서 곡식을 뿌려 가꾸기에 알맞다.” 바로 풍수적 명당의 형태이다. 최 교수는 경남 하동의 불일폭포와 불일암 부근이 고려 후기 이래 유학자들에게 선경이자 이상향이던 청학동의 자리라고 밝혔다.
글=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도표=지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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