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잠수 부리고래의 범고래 회피법 '쉿'

조홍섭 2020.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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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450m까지 ‘눈 감고’ 쥐죽은 듯 잠수…해군 소나에 떼죽음도

bu1.jpg » 긴 잠수를 마치고 수면에 오른 혹부리고래. 이들에게 수면은 범고래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나타차 아길라 데 소토, 스페인 라 라구나 대 제공.

떼지어 물속으로 은밀하게 접근해 빠른 속도로 공격하는 범고래는 백상아리도 혼비백산 도망치는 바다 최상위 포식자다(▶백상아리와 범고래가 만나면 물범이 ‘웃는다’). 범고래에 대항하기 위해 향고래는 몸집을 키웠고 들쇠고래는 큰 무리를 이뤘다. 

그러나 같은 이빨고래 무리인 부리고래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 덩치도 작은 데다 먹이를 찾고 동료와 소통하는 고주파 신호음도 귀 예민한 범고래의 가청범위 안에 들어있다. 

그런데도 부리고래가 멸종하지 않고 범고래에 잡아먹히면서도 수백만년 동안 살아남은 비결은 뭘까(▶범고래의 부리고래 사냥 장면 호주서 첫 목격). 부리고래는 극단적인 잠수행동으로 범고래를 따돌리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리고래의 회피 전략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고래의 잠수행동을 알 필요가 있다.

bu2.jpg » 범고래 2마리가 부리고래(앞)를 공격하고 있다. 웰러드 외 <플로스 원> 제공.

혹부리고래와 민부리고래는 잠수의 ‘달인’이다. 보통 1000m 깊이에서 1시간 이상 심해 오징어를 사냥하는데, 3000m까지 잠수하기도 한다. 향고래처럼 크지도 않으면서 이처럼 깊이 오래 잠수하는 생리적 미스테리가 최근 밝혀지기 시작했다(▶3천m 잠수 부리고래의 비밀 밝혀져). 

그러나 깊이와 시간뿐 아니라 부리고래의 잠수행동도 특별하다. 고래는 박쥐처럼 물속에서 ‘끼리리릭∼’하는 단속적 고주파 음을 낸 뒤 반사파를 감지해 물체를 파악한다(반향정위). 

그러나 부리고래는 칠흑처럼 어두운 수심 450m에 이를 때까지, 또 잠수를 마치고 수면으로 오를 때도 반향정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눈을 감은 채’ 잠수하는 것이다. 신체의 한계에 이르는 긴 잠수를 마치고 신속하게 수면에 떠오르는 다른 고래와 달리 부리고래는 완만한 각도로 느리게 상승하는 것도 수수께끼다.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타차 아길라 데 소토 스페인 라 라구나 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이 혹부리고래 14마리와 민부리고래 12마리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해 조사했다.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7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부리고래의 독특한 잠수행동은 포식자인 범고래를 회피하기 위해 진화한 것 같다”고 밝혔다.

bu3.jpg » 부리고래의 잠수 행동. 세로축은 수심이다. 검은 선은 고래가 반행정위를 끄고 조용히 헤엄치는 구간을 가리킨다. 수직으로 잠수하고 완만하고 임의의 각도로 떠오른다. 왼쪽 푸른 막대그래프는 반행정위의 빈도 분포이다. 나타차 아길라 데 소토 외 (2020)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조사 대상은 두 해역에 사는 서로 다른 무리에 속하는 2종의 부리고래였는데, 두 마리가 수심 450m까지 소리를 죽이고 잠수한 뒤 750m 수심에 모여 사냥을 하는 일관된 행동을 보였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이 “충분한 적응 가치가 있어 수백만 년 전에 진화한 행동일 것”이라고 밝혔다.

심해 사냥을 마치고 수면으로 떠오르는 행동의 전모도 드러났다. 사냥을 마치고 수면으로 향할 때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향고래 등 다른 심해 잠수 고래는 수면 위에서 기다리는 새끼와 동료와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주파 음을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떠오르는 각도도 완만하고 방향도 임의로 정했다. 향고래 등은 거의 수직으로 최단 시간 안에 떠오른다. 왜냐하면 범고래는 부리고래가 심해에서 사냥하는 고주파 음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부리고래가 떠오를 때 소리를 죽이고 임의의 방향을 잡는다면 범고래는 마지막 고주파 음을 엿들은 뒤 지름 1㎞, 면적 3.1㎢ 해역 어느 곳에서 부리고래가 수면에 나타날지 알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범고래의 시야와 속도를 고려하면 수면에 떠오른 부리고래를 잡을 확률은 1.2%에 지나지 않는다”고 계산했다. 10마리 무리가 집단사냥하더라도 성공률은 12%에 그친다.

이런 범고래 회피 행동에는 커다란 대가가 따른다. 힘들게 1000m 심해까지 내려가느라 많은 힘을 썼다면 최대한 오래 머물며 사냥하는 것이 득이지만 은폐를 위해 사냥시간의 35%를 허비한다는 것이다.

bu4.jpg » 카나리제도에서 물 위로 뛰어오르는 민부리고래. 가슴지느러미를 몸에 난 홈에 집어넣으면 어뢰와 같은 유선형이 돼 빠른 속도로 잠수할 수 있다. 나타차 아길라 데 소토, 스페인 라 라구나 대 제공.

또 다른 대가는 해군의 수중음파탐지기(소나)에 의한 피해이다. 심해 잠수가 유일한 피난처인 이 겁많은 고래는 거의 들릴 듯 말듯한 소음에도 범고래가 나타났을 때처럼 공포에 휩싸여 반향정위 장치를 끄고 도피하는데,  그 과정에서 해안에 좌초해 떼죽음하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부리고래가 들을 수 있는) 중간 파장의 해군 수중음파탐지기가 방대한 해역에 걸쳐 소음을 내기 때문에 부리고래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보호대책을 촉구했다.

인용 저널: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19-55911-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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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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