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구멍 물고기’의 역설, 절멸 방치해야 하나

조홍섭 2016. 0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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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밸리 지하수 서식 희귀 담수어, 수백년 전 홍수 때 이웃 지하수서 이동

개별 집단은 절멸해도 이웃 집단과 주기적 유전자 교류 통해 종 생존 드러나


dea2_Olin Feuerbacher_USDI Ash Meadows Fish Conservation Facility.jpg »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동물의 하나인 데스밸리 웅덩이에 서식하는 펍피시. 국부적 절명과 부활을 이어가는 생존 방식이 밝혀졌다. 사진=Olin Feuerbacher, USDI Ash Meadows Fish Conservation Facility

 
지구에서 가장 덥다는 미국 네바다주 모하비 사막에 있는 데스밸리는 물고기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물고기가 산다(■ 관련 기사: ‘악마 구멍’ 속 물고기, 기후변화와 생존투쟁 ).
 
‘악마 구멍 펍피시’(학명 Cyprinodon diabolis)라는 이름을 지닌 열대송사리과의 이 민물고기는 무너진 석회동굴의 길고 깊게 갈라진 틈에 산다. 길이 2㎝에 반짝이는 푸른빛을 띤 이 작은 물고기는 지구상 척추동물의 자연 서식지 가운데 가장 좁은 가로 22m, 세로 3.5m의 물웅덩이에 산다.
 
물고기가 사는 암벽 틈은 지하수 대수층에 연결돼 있어 늘 물이 고여 있다. 그 밑바닥이 얼마나 깊은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물고기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인 악마 구멍에서 햇빛이 비치는 위쪽 표면 부근에서 살아간다. 틈에는 선반 모양의 길이 6.1m, 폭 2.6m의 턱이 나 있는데, 물고기들은 여기서 자라는 조류를 먹고 이곳에 알을 낳아 번식한다.

 

de1.jpg » (a) 악마 구멍(붉은 화살표)과 부근의 샘 위치(원). 지도의 하천은 1만년 전 빙하기 때의 위치도이다. (b) 모하비 사막에 위치한 악마 구멍 항공 사진(화살표) (C) 악마 구멍 위치 (d) 위에서 본 악마 구멍. 앞에 얕은 곳이 물고기가 먹이를 먹고 알을 낳는 턱이다. 흰 원통은 2007년 설치한 먹이 공급 장치이다. 사진=마틴 외 <왕립학회보 비>
 
펍피시는 사막 등 극한 환경에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이곳의 펍피시의 서식 환경은 최악에 가깝다. 수온은 32도로 보통의 물고기라면 살기 힘든 고온이고 산소농도도 낮다.
 
1년에 2달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아 유일한 먹이인 조류가 자라지 않는다. 1년생인 이 물고기는 해가 비치지 않은 겨울 동안 급감했다가 봄에 개체수가 회복되곤 한다.
 
이처럼 특별하고 희귀한 물고기는 세계적 보호종이기도 해 1972년부터 1년에 2차례씩 마릿수를 세 왔다. 가장 많았을 때 548마리에 이르렀지만 2013년에는 35마리로 떨어져 멸종의 비상등이 켜지기도 했다.

 

dea4.jpg » 바위턱에서 먹이를 찾는 악마 구멍 펍피시. 사진=Olin Feuerbacher

 
이 물고기는 언제 이곳에 오게 됐을까. 보통 이렇게 적은 개체수라면 근친교배와 이상기후 등 돌발사건 때문에 멸종하는 게 당연한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처음에 과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분석을 바탕으로 데스밸리의 다른 펍피시가 200만~300만년 전 고립됐고, 악마 구멍의 펍피시는 50만년 전 고립돼 진화해 온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지질학적 연구 결과 악마구멍이 6만년 전에 형성됐고, 최근에는 마지막 빙하기가 물러나 데스 밸리가 말라버린 1만년 전부터 펍피시가 고립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물고기와 데스밸리의 다른 펍피시 등의 유전자를 분석해 비교한 결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왔다.   악마 구멍의 펍피시는 이곳에 온 지 수백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dea3_Brett Seymour, USDI National Park Service.jpg » 악마 구멍 밑에서 위를 향해 본 모습. 펍피시는 햇빛이 비치는 표면 부근에서만 살아간다. 사진=Brett Seymour, USDI National Park Service
 
크리스토퍼 마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생물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연구자들은 현재의 펍피시가 악마 구멍에 살기 시작한 것은 105~830년 전이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 물고기의 개체수와 세계 최저 수준인 유전다양성에 비추어 앞으로 50년 안에 멸종할 확률이 80%를 넘는다고 밝혔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 물고기는 적어도 지난 5000년 동안 데스밸리에서 살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데스 밸리의 펍피시는 1만년 전 공통의 조상에서 분화했음이 드러났다. 빙하기가 끝나고 이 지역이 건조해지면서 고립된 조상이 지역마다 다른 형질을 진화시킨 것이다.

 

National Park Service _Salt_Creek_pupfish.jpg » 데스 밸리 국립공원의 솔트 그리크에서 펍피시 다른 종 암수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사진=National Park Service
 
연구자들은 지난 5000년 동안 데스밸리의 펍피시가 지역별로 일부 집단이 절멸하더라도 인근의 다른 집단이 살아남아 종의 멸종을 막았을 것으로 보았다. 연구자들은 “악마 구멍의 펍피시는 이곳에서 생존한 최초의 펍피시는 아닐 것”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100년에 한번쯤 닥치는 홍수 때 악마 구멍의 지하수는 다른 샘의 지하수와 연결된다. 그때마다 다른 곳에서 진화해 온 펍피시가 유전적 교류를 해 왔음이 유전자 분석으로 드러났다.
 
악마 구멍의 펍피시가 불과 수백년 전 이주한 집단이라면, 그리고 펍피시가 생명을 이어가는 비결이 격리돼 진화하다 세기의 홍수가 왔을 때 유전자를 교환하고 빈 서식지를 채우는 방식이라면 이 물고기에 대한 보전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연구자들은 “이 지역 지하 서식지들끼리 서로 연결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펍피시의 사멸과 부활의 순환을 지속하는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악마 구멍 보전에서 중요한 것은 펍피시의 개체수가 아니라 이 물고기가 장기적 부침을 유지하도록 생태적 연결성을 지키는 일이다. 국부적인 절멸과 부활이 이 작은 물고기가 살아가는 비결이다.

 

National Park Service_Salt_Creek_pools.jpg » 여러 종류의 펍피시가 서식하는 데스 밸리 국립공원의 솔트 크리크 지역 모습. 사진=National Park Service
 
이번 연구는 또 고립된 생물 집단이 얼마나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빨리 독특한 형질을 진화시키는지 극적으로 보여준다. 악마 구멍의 펍피시는 데스밸리의 다른 펍피시와 달리 크기가 작고, 덜 공격적이며, 눈이 크고, 몸빛깔이 어두우며, 배지느러미가 사라졌다. 극단적 서식환경이 진화에 가속도를 붙인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가 어떻게 펍피시가 악마 구멍으로 들어오게 됐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그 가능성으로는 대규모 홍수를 비롯해 원주민인 인디언의 의도적인 방류, 새를 통한 알의 이동 등이 제기됐다.
 
기사가 인용한 원문 정보:
 
Martin CH, Crawford JE, Turner BJ, Simons LH. 2016 Diabolical survival in Death Valley: recent pupfish colonization, gene flow and genetic assimilation in the smallest species range on earth. Proc. R. Soc. B 283: 20152334. http://dx.doi.org/10.1098/rspb.2015.233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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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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