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는 계속된다, “값이 싸면 다들 먹어”

권혜선 2017. 09. 12
조회수 62521 추천수 0
영화로 환경읽기 24. <옥자>
유전자 조작 돼지 ‘옥자’에서 사람과 동물의 관계 성찰
값싼 고기 마음껏 먹는 우리는 가축의 고통과 무관할까

이미지1.jpg » 영화 <옥자> 포스터.

옥자는 돼지이다. 그냥 돼지가 아니라 몸집이 하마만큼 거대한 슈퍼 돼지이다. 옥자는 늘 미자와 함께 다닌다. 미자는 강원도 산골에 사는 순박하고 씩씩한 소녀이다. 옥자와 미자는 돼지와 인간으로 서로 종이 다르지만,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는 10년 지기 친구이다. 

옥자와 미자는 올해 여름 개봉한 영화 <옥자>의 주인공이다. 우리에게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괴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봉준호 감독은 판타지 동화 같은 신작 <옥자>를 내보였다. <옥자>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10년 전 글로벌 기업인 미란도 그룹은 거대한 몸집을 가진 새로운 종의 돼지(슈퍼 돼지) 새끼 26마리를 세계 26개국에 보냈고, 베스트 슈퍼 돼지 콘테스트라는 10년 동안의 장기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10년이 지나 옥자는 이 26마리 돼지 중 베스트 슈퍼 돼지로 선정되었고, 미란도 그룹은 옥자를 미국의 뉴욕으로 데려간다. 미자는 강원도 산골에서 혼자 뉴욕까지 가 옥자를 찾아오는데, 이 과정을 영화는 다소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이미지2.jpg » 미란도 그룹으로부터 도망치는 옥자와 미자.

영화의 내용은 미자가 미란도 그룹으로부터 옥자를 찾아오는 것이 주를 이루지만, 단순하게 미자와 미란도 그룹의 대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또 누가 옳은지 그른지 설명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옥자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생각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갈등하고 충돌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란도 그룹의 사장인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는 옥자를 생명체가 아닌 상품으로 보고 옥자를 통해 돈을 버는 것만을 생각한다. 미자가 옥자를 찾아오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동물보호단체 에이엘에프(ALF, Animal Liberation Front)의 리더 제이(폴 다노 분)는 옥자를 통해 미란도 그룹이 동물에게 저지르는 잔혹한 실상을 폭로하려고 한다. 미란도 그룹의 얼굴인 조니 윌콕스 박사(제이크 질렌할 분)에게 옥자는 자신에게 명성과 인기를 가져다주는 수단이다. 미란도 그룹의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미자 삼촌(윤제문 분)에게 옥자는 자신이 성실히 수행하는 회사의 업무이다. 미자의 할아버지(변희봉 분)에게 옥자는 팔아 돈이 되거나 고기가 되는 가축이다. 미자(안서현 분)에게 옥자는 친구이자 가족이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미지3.jpg » 옥자에 대한 생각과 목표가 다른 인물들.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을 배치하여 영화에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더했다. 이 인물들은 모두 약간씩 과장되게 표현되며 영화의 판타지 느낌을 더한다. 하지만 과장된 이 인물들에서 보는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며, 판타지 동화 같은 영화 <옥자>는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관계 맺음 : 나와 너

영화의 중요한 판타지 요소 중 하나는 강원도 산골의 14살 소녀 미자가 혼자 서울과 뉴욕을 가고 달리는 차에 매달리고 구르며 눈이 붓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필사적으로 돼지 옥자를 구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 판타지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도록 영화 초반에 공들여 옥자와 미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옥자와 미자의 관계는 특별하다. 단순한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아니다. ‘나와 그것’의 관계도 아니다. 바로 ‘나와 너’의 관계이다. 나의 전인격(全人格)을 통해 너를 만나고 대화하는 존재와 존재의 관계이다. 

이미지4.jpg » 서로 교감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옥자와 미자.

우리는 주변에서 옥자와 미자와 같은 관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여기며 키우고, 키우던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소중한 사람이 떠난 것과 같은 깊은 비통에 잠긴다. 2016년 인천에서 일어난 이웃의 반려견을 잡아먹은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이 분노한 것 역시 이 개가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개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중국 제나라 선왕은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본 후, 신하에게 제물을 소에서 양으로 바꾸라고 하였다(以羊易之). 이처럼 한 번 본 동물일지언정 얼굴을 본 관계가 되면 마음이 쓰이고 살피게 되기 마련인데, 10년을 함께 먹고 자며 자란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동물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쾌감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이 감각과 감정을 바탕으로 동물과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동물과 비교적 쉽게 ‘나와 너’ 혹은 조금은 특별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 

옥자가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미자가 속삭일 때 옥자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옥자가 미란도 그룹에 끌려갈 때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미란도 그룹의 실험실에서 참혹한 일을 당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함께 느낄 수 있다. 동물해방론을 주창한 피터 싱어는 동물이 사람과 같은 감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동물을 사람과 같이 존중하고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지5.jpg » 옥자의 눈을 보면 옥자의 감정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옥자와 미자의 관계가 옥자와 미란도 그룹과의 관계보다 더 편안하고 안전하며 좋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어쩌면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이 동물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일 수 있다. 슈바이처가 주장한 생명에 대한 외경일 수도 있다. 에드워드 윌슨이 이야기한 것과 같이 우리에게는 본능적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가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우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관계의 이용 : 이미지와 그린워시

미란도 그룹은 옥자와 미자의 관계를 이용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옥자와 미자의 관계에서 생기는 이미지를 이용한다. 바로 우리가 옥자와 미자를 보며 느끼는 편안함, 안전함, 선함, 건강함과 같은 이미지 말이다. 보통 우리가 ‘친환경’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이다. 

미란도 그룹이 옥자와 미자의 관계가 주는 이미지를 필요로하는 것은 사람들(소비자)이 이러한 관계를 좋아하고 원하지만, 실제의 미란도 그룹은 이런 관계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제의 미란도 그룹은 이와 정반대의 잔혹하고 무자비한 관계 위에서 운영된다. 미란도 그룹은 실제로는 환경에 유해하지만, 겉으로는 친환경인척하는 전형적인 그린워시(greenwash)이다(그래서 그린워시를 녹색 세탁이라고도 한다).

사실 옥자는 미란도 그룹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과 같이 칠레의 건강한 어미 돼지에게서 태어는 것이 아니다. 미란도 그룹 지하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지엠오(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돼지이다. 미란도 그룹은 세계적인 육류 가공 기업으로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먹이는 덜 먹지만 몸집은 거대한 돼지를 만든다. 미란도 그룹에는 옥자와 같은 수많은 형질 전환 돼지들이 전기가 흐르는 철창 우리에 갇혀 있으며, 끊임없이 전기 충격기로 학대를 받으며 도살장으로 끌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사지가 절단되어 우리가 아는 고기 제품으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나온다. 

이미지6.jpg » 도축 직전의 옥자.

<옥자>의 이러한 장면을 보고 얼마 동안 돼지고기를 먹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의 현실이 <옥자>보다 덜 참혹하다고 할 수 없다. 현재 대다수의 소와 돼지, 닭은 움직이기조차 힘든 작은 케이지 안에서 평생을 갇혀 산다. 농장에는 소나 돼지, 닭으로 채워진 작은 케이지들이 가득하며, 좁은 면적에 최대한 많은 수의 가축을 집약하여 사육한다. 이것을 우리는 공장식 축산이라고 부른다(<옥자> 포스터를 보면 옥자가 등 위에 공장을 이고 있다).

돼지는 약 3세 정도의 지능에 영리하고 사교적이며 민감한 동물이다. 하루 이동 반경도 약 50㎞일 정도로 꽤 넓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에서 돼지가 자라는 공간은 매우 좁고 더러우며, 돼지 배설물과 배설물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공간에서 돼지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안, 경직, 피부 발진, 폐 질환 등을 보이며 일찍 죽는 경우가 많다. 또 자해하거나 신경증적인 행동을 보이며 종종 서로의 꼬리를 물어 끊기도 한다. 

이로 인해 공장식 축산에서 새끼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마취 없이 거세되고 꼬리가 잘리며 어금니가 뽑힌다. 새끼를 낳는 어미 돼지는 몸을 돌리지도 못할 정도로 작고 차가운 케이지에 갇혀 평생을 강제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더는 새끼를 낳을 수 없게 되면 바로 도축된다. 

이미지7.jpg » 어미 돼지가 엉덩이에 정액 호스를 꽂고 좁은 케이지에 누워 있다. 동물자유연대.

이는 돼지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소는 태어나면 마취 없이 뿔이 잘리고 거세당한다. 이후 단기간에 살을 찌우는 약이 범벅된 사료를 먹고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작고 더러운 곳에서 사육당하다 도축된다. 

닭은 부리와 발톱이 잘린 채로 에이4 용지보다도 작은 더러운 공간에서 약 50여일을 살다 도축된다(닭의 자연 수명은 7~13년이며, 오래 산 닭은 30년까지도 산다). 계란을 낳는 산란계는 24시간 불이 켜진 곳에서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알을 낳다 2년을 채 못 살고 죽는다. 

이처럼 비위생적이고 밀집한 사육 환경에서 동물들은 계속하여 질병에 걸리고, 전염병은 순식간에 퍼진다. 이를 막기 위해 수시로 항생제 등의 약물을 먹이고, 전염병이 발생하면 모두 땅에 묻어버린다. 때로는 산 채로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소와 돼지와 닭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다. 마트의 환한 조명 아래 깨끗하게 포장되어 다소곳이 놓여 있는 고기에는 푸른 풀밭 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좋아 보이는 소와 돼지와 닭의 사진이 붙어 있다. 때로는 친환경 인증 마크가 붙어 있기도 하다. 

옥자와 황금 돼지

05814473_P_0.JPG » 농림부와 식약처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가 25곳을 추가로 발표한 8월 17일 경기도 양주시 한 농장에서 양주시청 직원들과 농장관계자들이 달걀 전량을 폐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얼마 전 유럽에서 시작된 살충제 계란은 설마 했던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었고,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소식도 충격이었지만, 친환경 인증 마크가 붙어 있는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 큰 충격과 혼란에 빠뜨렸다. 더욱이 살충제 성분 검출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49개 농장 중 친환경 농장이 31개에 달했다. 

많은 사람이 이제 어디서 무엇을 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며, 누구든 무엇이든 우선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친환경 마크가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역시 똑같다며 실망감과 자포자기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그저 ‘녹색’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친환경적으로 열심히 소와 돼지와 닭을 키우는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묶여 사람들의 의심과 질타를 받고 있다. 이들은 사기가 꺾이고 매출이 급락하여 현실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허술한 친환경 인증 제도 탓이다. 그리고 녹색으로 이미지를 세탁하며 소비자의 신뢰와 사회 공공의 질서를 무너뜨린 사람들의 잘못도 크다. 하지만 그동안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제값을 지불하지 않았던 우리는 잘못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미자가 황금 돼지로 값을 지불하고 옥자와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황금 돼지를 지불할 수 있을까? 황금 돼지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지불할 수 있을까? 가치는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음에도 우리는 비용 없이 가치만 얻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서 루시 미란도의 그린워시가 실패하게 되자 회사를 걱정하는 회사 임원에게 루시의 언니 낸시 미란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가격이 싸면 다들 먹어.” 낸시 미란도가 든든하게 믿고 있는 뒷배가 바로 우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니 잊지 말아야 한다. 

글 권혜선/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단대초등학교 교사,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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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선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이메일 : ynorikh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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