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녹화 성공 타령, 또 다른 불편한 진실
산림녹화 성공 뒤엔 개도국 열대림 파괴 있어, 특정인 지도력 말고 사회경제적 배경 주목해야
선진국 소비 위해 개도국 생물다양성 훼손 여전, 평창 생물다양성 총회서도 남북 갈등 두드러져
» 지난 9월23일 뉴욕에서 열린 기후정상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한 세대 전 산림녹화 성공 이야기가 정부 고위층의 입에 자주 오른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17일 폐막된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의 고위급회의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과 함께 산림녹화에 성공한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개도국의 산림 생태계 복원을 지원하는 제안을 했다.
앞서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은 뉴욕 기후정상회의에서 “한때 벌거벗은 붉은 산이었던 전 국토가 푸르러져서 산림 복원의 성공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기조연설의 말머리를 뗐다.
» 대관령의 낙엽송 조림지대. 우리나라는 개도국에서 경제성장과 산림녹화를 동시에 이룬 최초의 나라로 꼽힌다. 사진=조홍섭 기자
우리나라의 산림녹화는 세계식량농업기구나 유엔환경계획 등 국제기구들도 인정하는 성공 사례이다. 개도국에서 경제발전과 산림녹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억제하고 생물다양성을 높이려면 숲을 늘려야 한다. 개도국에 이런 녹화의 비결을 전수하는 건 타당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산림녹화 사업이 사실상 끝난 지 30년이 다 된 마당에 공영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지도자들이 앞다퉈 산림녹화를 말하는 이유는 뭘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 배경에 어른거린다.
박 전 대통령의 산림녹화에 대한 열정과 강력한 리더십은 거의 신화가 됐다. 그의 기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저런 에피소드 말고 실질적으로도 그렇다.
» 1970년대 조림사업이 이뤄진 대관령 일대. 왼쪽이 조림 첫 해 때 모습이다.
1967년 산림청을 설립한 뒤 1973년에는 농림부 소속에서 경찰력의 지원을 받는 내무부로 이관시켰다. 이 해 시작한 제1차 치산녹화 10년 계획은 30억 그루 가까운 나무를 심은 뒤 1978년 목표를 4년 앞당겨 달성하고 마무리됐다.
사실 나무 심고 보호하는 전통은 적어도 조선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마을마다 마을숲을 가꾸고 노거수를 아낀 전통이 있다. 먹고 살기 힘들 때 나무를 베어 썼지만 우리 디엔에이 속에는 산림 보호의 정신이 흐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대적인 산림녹화로만 좁혀 보더라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화화하는 건 지나쳐 보인다. 산림녹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 면에서 '원조'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1946년 4월5일을 식목일로 지정한 것도 그였다. 무엇보다 나무를 아무리 많이 심어도 다 베어 쓰면 소용 없음을 깨닫고 연료를 목재에서 무연탄으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했다.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개척자로 알려진 정인욱(이승만 정부의 석탄과장)은 1957년께 이 대통령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내가 산에 올라가 나무 한 토막이라도 베는 사람은 엄벌에 처한다고 공포했지만 소용이 없어요.…당장 땔감 없어 밥도 못 지어먹을 형편인 국민들에게 나무를 베지 말라고 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말이오.…지금 우리가 석탄 열심히 캐지 않으면 어느 세월에 산에 나무가 우거지겠소. 내가 어떻게 하든 식량은 미국에서 끌어다 댈 테니 당신은 땔감 문제를 책임지시오.…우리 힘을 합쳐 나라를 살려봅시다. 내 눈에 서울시내에 장작 실은 마차가 다니는 모습이 안 보이게 해 주시오.”(배재수 외,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 요인>)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나무 땔감이 차지하던 비중이 1950년대 90%를 웃돌다가 1990년대 1% 이하로 떨어진 통계가 연료 전환 정책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물론 나무 땔감에서 석탄, 석유, 도시가스로 연료를 바꿔나갈 수 있었던 것은 농촌 인구가 도시로 집중했고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해 연료를 바꿀 만큼 소득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림녹화에 한 더 큰 기여는 경제성장인지도 모른다.
» 말레이시아 열대우림. 우리나라는 1960년대 말레이사아 열대림을 수입하다 1970년대 인도네시아로 바꿨다. 사진=Vladimir Yu. Arkhipov, Arkhivov,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때 건축과 가구 등에 필요한 목재를 공급하고 경제성장의 효자 구실을 한 것이 동남아 열대림의 원목이었다. 산림녹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합판 수출국이었다.
원목 수입선은 1960년대에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이다가 1970년대에는 인도네시아가 대부분을 차지해, 절정기였던 1978년 이 나라 원목 516만㎥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성공 뒤에는 동남아 열대림의 훼손이 있었던 것이다.
» 합판 원료용으로 동남아에서 수입한 원목을 인천항에 야적한 모습.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이다. 이 두 문제 모두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난점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해가 충돌한다는 점이다.
강원도 평창에서 지난 3주 동안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유전자원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뜻을 실천할 나고야의정서가 이번 총회 기간 동안 발효했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개도국은 환영했지만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선진국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평창 로드맵’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도 8차례의 소그룹 회의를 열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막바지까지 난항을 겪었다.
» 열대림을 베어내고 팜유를 생산하기 위한 기름야자 단일재배농장으로 바꾼 인도네시아 자바의 한 지역. Achmad Rabin Taim, 위키미디어 코먼스
더는 열대 원목을 수입하지 않지만 약품, 화장품, 식품 등 우리는 여전히 개도국의 생물다양성에 의존해 살아간다. 예컨대 라면, 비누, 초콜릿, 커피믹스 등에 들어가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오랑우탄이 사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섬 등 열대우림이 매초 축구장 2개꼴로 단일재배 농장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살아있는 지구’를 보면, 선진국의 생물다양성은 10% 늘어난 반면 저소득국가에선 58% 감소했다. 선진국이 자국의 자연은 보전하면서 자원 수입국가에 그 부담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생물다양성 보전에서도 개도국에 대한 지원은 시혜가 아니라 정의와 공평함을 위한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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