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서 즐거워요!" …지루함 날려버린 동물 행동 풍부화

김영준 2012. 11. 20
조회수 19985 추천수 0

김영준의 야생동물 구조센터 24시 

꽁꽁 묶고 숨겨놓은 먹이 꺼내느라 '끙끙', 지루할 틈이 없네

구조센터 입원 동물 활기 넣어 주는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 


지난 3일 오후 5시7분부터 약 20분 동안 너구리의 평범하고 변화 없는 일상생활의 무료함을 달래 주기 위하여 동물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을 실시하였습니다.

 

ch1.jpg
 
3마리의 병아리와 5마리 가량의 멸치를 신문지에 싸서 상자에 넣은 후, 고구마 줄기를 이용하여 꼼꼼하게 포장을 합니다. 너구리가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테이프는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만든 먹이를 사육장의 나뭇가지 아래에 놓아둡니다. 또 포도알 20여개와 개 사료를 너구리 운동장에 흩뿌리듯이 뿌려놓습니다.

 

ch2.jpg

 

여기저기 탐색하고 있는 너구리님….

 

ch3.jpg
 

ch4.jpg
 
너구리를 풀어놓자 온 사육장의 땅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찾아다녔습니다. 너구리가 땅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찾아 다닌 것과 너구리의 얼굴 형이 코가 앞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너구리는 개과 동물답게 시각보다는 후각이 더 발달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약 2~3분간 땅에 흩뿌려진 개 사료와 포도송이를 먹은 뒤, 상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상자의 종이 부분과 고구마 줄기를 입으로 물어뜯었습니다.

 

너무 어렵게 묶어 너구리가 먹이를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너구리는 비교적 쉽게 묶은 고구마 줄기를 풀고 상자를 뜯어 병아리 한 마리와 멸치를 먹었습니다. 상자 안의 나머지 먹이를 찾지 않고 다시 사육장의 개 사료와 포도송이를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약 10분 이상 온 사육장을 돌아다니면서 흩어진 개 사료와 포도송이를 찾아 먹었습니다.


ch5.jpg

박스 안의 병아리 냄새를 맡고 물어뜯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육장에 흩어진 거의 대부분의 개 사료와 포도송이를 먹은 뒤, 다시 상자의 종이를 다 물어뜯어 상자 안의 병아리와 멸치를 먹었습니다.
우선 땅에 흩어진 먹기 쉬운 먹이를 먼저 먹고 비교적 어려운 미션인 상자 안의 먹이로 향했습니다.


야생동물인 너구리가 사육장안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냈을 텐데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여러가지 행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엔 삵의 행동 풍부화를 위해 병아리와 물고기를 먹이로 준비하였습니다. 준비한 먹이를 상자 안에 숨겨놓고 줄에 매달아 놓는 등 삵이 쉽게 먹이를 먹을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ch6.jpg

 
삵은 행동 풍부화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줄에 매달아 놓은 먹이를 점프하여 낚아채 먹었습니다.

 

ch8.jpg  

 
삵은 상자에 있는 먹이에 관심을 보였으며 이빨과 발을 이용하여 상자를 열어 먹이를 끄집어냈습니다. 삵은 후각보다 시각에 의존하는 동물이라 숨겨진 먹이를 찾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합니다.

 

 

이번엔 벌매 차례입니다. 먹이를 조금 쉽지 않게 줌으로써 벌매의 야생 식습관을 잊지 않게 하고 동물의 무료함도 줄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ch9.jpg  

 

벌매의 모습입니다.

 

ch10.jpg  

 

공 안에 먹이를 넣는 모습입니다. 동물행동풍부화 훈련의 일종으로 먹이를 쉽게 주지 않고 약간 노력해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듭니다.

 

ch11.jpg

 

고무 공 안에 준비한 먹이 (토막낸 병아리)를 넣고 있습니다. 

 

ch12.jpg

 

벌매는 공을 주자마자 바로 반응을 보입니다. 

 

ch13.jpg

 

ch14.jpg  

 

공 안에 있는 먹이를 빼 먹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발과 부리를 모두 사용해 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먹이를 뽑아 먹습니다.

 

ch16.jpg  

 

동물행동풍부화훈련 과정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진행된 동물행동풍부화 훈련의 전 과정은 충분히 관찰되었고 기록지에 사진과 관찰내용 및 평가,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동물 행동 풍부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먹이를 변형해 주는 것 이외에도 방생할 수 없게 된 동물이 사람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도 한 종류라고 합니다.


야생에서 훨훨 날아다녀야할 벌매가 상처를 입고 날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는데, 행동 풍부화를 통해서 야생의 모습을 잃지 않고 점 점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사진 김영준/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전임수의관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원부장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의 공동저자, <천연기념물 야생동물의 구조 치료 및 관리>의 대표저자. 단순한 수의학적 지식보다 야생생물의 생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수의사로, '야생동물소모임'의 회원이다.
이메일 : ecovet@yahoo.co.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다친 동물들을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매일의 사투다친 동물들을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매일의 사투

    이준석 | 2018. 08. 01

    야생동물 구조센터 24시먹이 조르는 어린 새, 포유류 배변 유도와 분유 주기재활훈련, 투약, 강제 급식…쉴 새 없이 울리는 신고 전화청소도 필수, 자원활동가 도움 절실…최선 다해도 또 죽음졸린 눈을 비비며 도착한 구조센터에 발을 딛는 순간부...

  • 밀어닥치는 어린 죽음, 동물구조센터의 ‘잔인한 봄’밀어닥치는 어린 죽음, 동물구조센터의 ‘잔인한 봄’

    이준석 | 2018. 04. 26

    소쩍새, 수리부엉이, 삵, 고라니…여름 전쟁터 앞둔 폭풍 전야충돌, 둥지 파괴, 납치 등 어린 생명의 고통과 죽음 몰려들어꽃샘추위가 지나고 벚나무는 꽃잎을 떨어뜨려 푸릇한 요즘 새들은 저마다 둥지를 짓느라 분주하고, 여름 철새는 하나둘 돌아...

  • 몸에 좋고 맛도 좋다? 겨울잠 깬 뱀들의 수난시대몸에 좋고 맛도 좋다? 겨울잠 깬 뱀들의 수난시대

    김봉균 | 2018. 03. 14

    좁은 덫에서 서로 짓눌려 죽고, 독사 섞여 풀기도 힘들어잘못된 보신 문화 여전…인공증식 핑계로 단속도 힘들어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뱀을 구조해 달라는 신고가 들어오면 센터 직원들은 바짝 긴장합니다. 뱀을 다루는...

  • 고라니 먹은 독수리는 왜 납중독에 걸렸나고라니 먹은 독수리는 왜 납중독에 걸렸나

    김봉균 | 2018. 01. 31

    농약, 납 총탄 등 사체 먹은 맹금류 피해 잇따라고라니 사체 먹이로 주기 전에 엑스선 촬영해야매년 겨울철이면 최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독수리나 흰꼬리수리 같은 대형 맹금류가 구조되어 들어옵니다. 녀석들은 덩치도 크고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

  • 버려진 밭 그물, 새들에겐 ‘죽음의 덫’버려진 밭 그물, 새들에겐 ‘죽음의 덫’

    김봉균 | 2018. 01. 02

    새매, 물까치 등 걸려 서서히 죽어가제구실 못해도 방치, 주인·당국 무관심야생동물이 살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 회색빛 건물과 유리창이 즐비하고, 눈부신 빛과 굉음을 내뿜으며 내달리는 자동차와 도로 역...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