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어머니의 깊은 신음이 들리는가

박그림 2013. 07. 23
조회수 16372 추천수 0

박그림의 설악가 ① 나는 저항한다

우리의 탐욕과 무관심이 설악산을 죽이고 있다

아이들이 어른 되어 대청봉에서 외경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sol5.jpg

 

비구름 속에 묻힌 설악산은 내 가슴 속에 우뚝한 모습으로 남아 언제나 나를 당신의 품속으로 이끌고, 눈을 감으면 발길이 닿았던 곳마다 생명의 흔적들이 내게 다가와 그들의 삶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한 여름의 짙푸른 숲에 들면 어둑하고 서늘한 산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손을 내밀면 부드럽게 나를 스치는 여린 풀잎 하나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바위 밑에 소복이 쌓여 있는 산양 똥을 볼 때마다 작은 소리에도 귀를 바짝 세우고 불안스러운 눈빛으로 두리번거릴 산양을 떠올린다.

 

sol8.jpg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 짐승들의 발자국을 볼 때마다 쫓기는 삶을 생각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따져보게 된다.
 
바람 부는 날이면 가슴 깊이 파고드는 산의 울음소리가 나를 흔들어대는 까닭을 안다. 설악산어머니의 상처는 늘어나고 아픔은 커지고 있지만 우리들의 탐욕과 무관심은 설악산을 죽음의 산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온몸으로 저항한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간절함으로 내 몸을 던져 저항한다.

sol2.jpg » 동도 트기 전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로 랜턴을 밝히며 넘어오는 무박산행 등산객의 끝없는 행렬. 설악산은 쉴 틈이 없다.  
 

대청봉에 깊이 패 인 상처가 아물고 푸른 나무들이 가득할 때까지 나는 저항한다.
 

설악산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때까지 나는 저항한다.
 

숲 속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침묵의 숲이 되지 않도록 나는 저항한다.
 

한 겨울 눈 위에 짐승들의 발자국이 없는 황량하고 쓸쓸함을 견딜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sol1.jpg

 

어두운 밤 산길을 갈 때 소리 없이 다가와 부드럽게 나를 스치는 생명의 감촉을 잊을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어둠 속에서 어린 짐승의 투정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절망의 때를 맞이할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바위 밑에 앉아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내 곁에 산양이 뛰어들기를 꿈꾸며 나는 저항한다.
 

깊은 눈을 헤치고 지나간 멧돼지의 훅훅 거리는 숨소리가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sol4.jpg » 산양의 똥자리

 

숲 속에 들어 나무통을 두드리는 딱따구리의 두드림 소리가 그치지 않기를 바라기에 나는 저항한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쳐도 꼿꼿하게 서서 견디는 나무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누었다 다시 일어서는 풀꽃을 보고 싶기에 나는 저항한다.
 

무리지어 피어나 하늘 꽃밭을 이루는 꽃들의 아름다움을 잃고 싶지 않기에 나는 저항한다.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아름다움조차도 누릴 수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기에 나는 저항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지를 알기에 나는 저항한다.
 

sol7.jpg

 

아이들이 어른 되어 대청봉에 올라 정상의 존엄성과 외경심에 빠질 수 있기를 바람하며 나는 저항한다.
 

설악산이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주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신이 바라본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잃고 싶지 않기에 나는 저항한다.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나의 힘은 적고 보잘것없지만 간절함은 하늘에 닿고 사무치는 마음은 꽃을 피울 것임을 알기에 나는 저항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삶에서 무엇이 가장 큰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알기에 나는 저항한다.
 
sol3.jpg » 탐방객에 밟혀 맨땅이 드러난 대청봉 정상에 엎드리는 필자.

 

대청봉에 올라 깊이 패인 땅에 손을 대고 엎드려 차마 일어서지 못한다. 손바닥에 피가 묻어날 것 같은 깊은 상처의 아픔이 온몸을 전율처럼 휘감아 내린다.

 

무엇이 이토록 설악산어머니를 아프게 하는 것이며, 우리들은 어머니의 상처와 아픔을 모른척할 수 있는 것일까!

 

무관심뿐 아니라 산양들의 삶터를 꿰뚫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그들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기 어렵다.

 

산에 들 때마다 자연은 그렇게 어수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늘 부드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자연의 보복은 정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잡고 오른 바위는 설악산어머니의 뼈고 딛고 오른 땅은 설악산어머니의 살이라는 것을 안다. 
 

sol6.jpg

 

오늘도 설악산어머니의 정수리인 대청봉에 서서 초록치마를 바람에 휘날리며 둥근판을 든다. 초록치마는 나의 갑옷이며 둥근판은 방패다. 나를 감싸고 나아가는 보호막이며 저항의 상징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생각한다. 모든 생명이 제 자리에서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글·사진 작은뿔 박그림/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설악녹색연합 대표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설악산의 상처와 아픔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과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일을 하고 있다. 설악산에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 217호, 멸종위기종인 산양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양을 찾아다닌다.
이메일 : goral@paran.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대피소가 유원지화, 설악산 ‘머리’가 지끈지끈대피소가 유원지화, 설악산 ‘머리’가 지끈지끈

    박그림 | 2014. 05. 26

    정상의 위엄 간직하던 대청봉, 정상 산행 부채질 대피소 난립해 훼손 심각 정상부 3개 대피소 해체해, 등산객 묵지 않고 정상 넘도록 유도해야     ■ 참으로 멀었던 설악산 가는 길 젊은 시절 설악산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먼길을 ...

  • 설악산에서 드리는 간절한 편지설악산에서 드리는 간절한 편지

    박그림 | 2013. 09. 05

    케이블카 종점서 빤히 눈에 보이는 대청봉 정상길 열리는 건 뻔한 일 오색은 머무는 느린 관광에서 당일치기 경유지 전락할 것…설악산은 우리만의 것 아냐    안녕하십니까? 저는 설악산에서 살고 있는 박그림이라고 합니다.   설악산 어머니...

  • ‘작은새’가 대통령에게 쓴 편지, “산에서 왜 편해야 하죠?”‘작은새’가 대통령에게 쓴 편지, “산에서 왜 편해야 하죠?”

    박그림 | 2013. 08. 06

    "저희 세대도 자연을 느끼고 진정한 등산을 하고 싶습니다" 편해진 등산 너도나도 대청봉에, "해는 대청봉에만 뜹니까?"     '작은새'와의 만남   몇 해 전 겨울 야생동물학교가 내설악에서 열렸을 때, 2박 3일의 일정이 끝나고 초등학교 ...

  • 대청봉은 잠들고 싶다대청봉은 잠들고 싶다

    박그림 | 2012. 09. 04

    박그림의 설악산 통신 ① 무박산행의 문제점 주말 4만이 오른다…정상주, 도시락, 기념사진, 그리고 욕망을 채우러 입산예약제 절실, 외경심 가진 사람만 정상에 오르도록 해야       설악산국립공원 탐방객의 3분의 1이 몰리는 시월 단...

  • 설악산 대청봉은 유원지인가설악산 대청봉은 유원지인가

    박그림 | 2012. 08. 30

    취약한 고산 정상 밟혀 무너지는데, 정상 증명사진 행렬 이어져 상처 위에 깔판 깔고 삼겹살 굽기…유원지 갈 사람을 정상 올린 등산로 개수도 문제     대청봉으로 가는 산길을 조심스럽게 오른다.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에 속살을 훤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