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오징어 눈이 농구공만 한 이유, 고래가 그랬어

조홍섭 2012. 03. 19
조회수 98031 추천수 0
 

캄캄한 심해서 향유고래 이빨 피하려면 발광생물이 일으키는 미세한 음영 차 감지해야

120m 밖에서 감지…중생대 어룡도 비슷한 `왕눈이'

 

640px-Museum_of_Natural_History.jpg

▲향유고래와 대왕오징어가 싸우는 모습 상상도.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심해에 사는 대왕오징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체동물이다. 10m가 넘는 몸길이와 어른 세 명을 합친 무게 말고도 이 오징어에게 특별히 큰 것이 바로 눈이다.
 

대왕오징어나 이보다 더 큰 초대형 오징어(학명 메소니코테우티스 하밀토니) 모두 눈의 지름이 27㎝로 농구공만 하다. 이들과 체중이 비슷한 황새치의 눈이 야구공만 한데 견줘 지름은 3배, 부피는 27배나 큰, 그야말로 ‘왕 눈’이다.
 

이처럼 커다란 눈을 유지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들고 몸의 다른 부위를 줄이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캄캄한 깊은 바다에서 왜 이처럼 커다란 눈이 필요한 걸까.
 

41614_web.jpg

▲대왕오징어의 수정체. 눈의 지름은 25㎝에 이른다. 사진=닐손, <커런트 바이올로지>.

 

단-에릭 닐손 스웨덴 룬트 대 교수 등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처럼 필요 이상으로 커보이는 눈이 고래와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연구진은 대왕오징어가 사는 300~1000m 수심의 바다에서 투명도와 빛의 투과를 고려해 대형 오징어 눈이 어떤 성능을 발휘하는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야구공 크기 이상으로 눈이 커지더라도 심해에서 더 멀리 보기에는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 단 예외가 있다면 아주 커다란 물체를 볼 때였다.
 

41759_web.jpg

▲길이 9.2m의 대왕오징어. 사진=NTNU 자연사박물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대왕오징어의 숙적은 향유고래이다. 이 고래의 주요 먹이는 대왕오징어로 남극해 향유고래 먹이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향유고래 뱃속에서 발견된 대형 오징어의 단단한 부리나 고래의 몸에 남은 날카로운 오징어의 흡반 자국 등 싸움 흔적이 그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어두운 바닷속에서도 향유고래는 음파를 쏘아 오징어를 찾아내지만, 오징어가 이를 감지할 방법은 오로지 눈뿐이다. 연구진은 향유고래가 접근하면서 일으키는 물살이 발광생물을 자극하는데, 이때 일어나는 미세한 음영차이를 감지하기 위해 대왕오징어가 눈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믿는다.
 

Mesonychoteuthis_hamiltoni.jpg

▲대왕오징어보다 몸 길이가 더 큰 초대형 오징어 모습. 눈의 크기는 대왕오징어와 비슷하다. 그림=Rcidte,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진은 대왕오징어가 약 120m 밖에서 향유고래가 접근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고 계산했다. 향유고래는 이보다 더 멀리서 음파로 대형 오징어의 위치를 파악하지만, 어쨌든 천적의 공격을 미리 아는 것은 도망칠 기회를 노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천적이 없는 다른 오징어들은 몸집에 견줘 대왕오징어처럼 큰 눈을 지니고 있지 않다.
 

640px-Ichthyosaur_sp__22.jpg

▲대왕오징어처럼 큰 눈을 발달시킨 중생대 어룡의 화석 모습. 사진=차마우스 해안 유산 센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흥미로운 건, 공룡시대에 바다를 주름잡던 어룡도 대왕오징어처럼 ‘왕눈이’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약 9000만 년 전 멸종한 어룡이 그보다 큰 대형 천적인 플리오사우르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큰 눈을 진화시켰을 것으로 보았다.
  
 
■ 기사가 인용한 원문 정보
A Unique Advantage for Giant Eyes in Giant Squid.” Nilsson et al. Current Biology, March 15, 2012. doi:10.1016/j.cub.2012.02.03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어붙은 설원의 다람쥐, ‘도토리 점심’만 먹을까?얼어붙은 설원의 다람쥐, ‘도토리 점심’만 먹을까?

    조홍섭 | 2020. 09. 18

    캐나다 북극토끼 사체 청소동물 24종, 4종의 다람쥐 포함 캐나다 북서부 유콘 준주의 방대한 침엽수림에서 눈덧신토끼는 스라소니 등 포식자들에게 일종의 기본 식량이다. 눈에 빠지지 않도록 덧신을 신은 것처럼 두툼한 발을 지닌 이 토끼는 ...

  • ‘노래하는 고대 개' 뉴기니서 야생종 발견‘노래하는 고대 개' 뉴기니서 야생종 발견

    조홍섭 | 2020. 09. 17

    `늑대+고래’ 독특한 울음 특징…4천m 고원지대 서식, ‘멸종’ 50년 만에 확인오래전부터 호주 북쪽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뉴기니에는 독특한 울음소리의 야생 개가 살았다. 얼핏 늑대의 긴 울음 같지만 훨씬 음색이 풍부하고 듣기 좋아 ‘늑...

  • ‘겁 없는 야생닭’ 골라 10대 육종했더니 가축 닭 탄생‘겁 없는 야생닭’ 골라 10대 육종했더니 가축 닭 탄생

    조홍섭 | 2020. 09. 16

    1만년 전 가축화 재현 실험…온순해지면서 두뇌 감소 현상도동남아 정글에 사는 야생닭은 매우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8000∼1만년 전 이들을 가축화하려던 사람들이 했던 첫 번째 일은 아마도 겁 없고 대범한 닭을...

  • 코로나 록다운에 ‘자연이 돌아왔다’…좋기만 할까?코로나 록다운에 ‘자연이 돌아왔다’…좋기만 할까?

    조홍섭 | 2020. 09. 15

    외래종과 밀렵 확산 등 ‘착한, 나쁜, 추한’ 영향 다 나타나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도시 봉쇄)은 못 보던 야생동물을 도시로 불러들였다. 재난 가운데서도 ‘인간이 물러나자 자연이 돌아왔다’고 반기는 사람이 많았다.그러나 록다운의 영향을 종합...

  • ‘태풍 1번지’로 이동하는 제비갈매기의 비법‘태풍 1번지’로 이동하는 제비갈매기의 비법

    조홍섭 | 2020. 09. 11

    강한 태풍이 내는 초저주파 수천㎞ 밖서 감지, 이동 시기와 경로 정하는 듯오키나와에서 번식한 검은눈썹제비갈매기는 해마다 태풍이 기승을 부리는 8월 말 필리핀 해를 건너 인도네시아 섬으로 월동 여행에 나선다. 강풍과 폭우를 동반해 힘을 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