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빛 잃을라

조홍섭 2015.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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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바이칼 호수엔 '얼음판 고속도로' 열려, 4균구동 승합차가 관광객 실어날라

늦게 어는 거대 호수가 빚은 기묘한 얼음구조물 장관, 기후변화로 얼음길 개통기간 줄어

 

sb0.jpg » 알혼섬으로 얼음길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사휴르타 선착장 모습. 바이칼 호의 서쪽 중앙쯤에 위치한다.


‘얼음판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넓고 규모가 컸다. 도로 경계 표시와 함께 ‘중량 한계 5t, 최고 속도 시속 10㎞, 일방통행, 차간거리 200m, 추월 금지’ 따위를 적은 교통 표지판이 서 있었다. 기운 채 얼음 위에 서 있는 낡은 선박이 없었다면 호수 위로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한겨레 주주·독자 등 30여명과 함께 2월22~3월1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 이르쿠츠쿠로 가 겨울 바이칼호를 탐방했다. 세계에서 가장 깊고 오래 된 호수로 ‘살아있는 진화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는 바이칼호는 50㎝가 넘는 두꺼운 얼음 밑에서 겨울 잠에 빠져 있었다.

 

sb2.jpg » 얼음길로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4륜 구동 소형 승합차. 스노타이어를 달아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sb4.jpg » 샤마니즘의 신성한 장소인 알혼섬 불한 바위 옆을 탐방객 차량이 지나고 있다.
 

스노타이어를 장착한 4륜구동 승합차로 옮겨 타고 이 호수 최대의 섬인 알혼섬으로 향했다. 덩치 큰 현지 주민 운전사는 포구를 벗어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차를 몰아대기 시작했다.

 

“괜찮아, 꼭 잡아.” 표정으로 볼 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매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차는 덜컹거리지도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오는 비포장길보다 오히려 편했다. 발밑이 끝없이 깊은 호수라는 점만 뺀다면.
 

sb13_Kmusser_예니세이강 유역도.jpg » 바이칼 호 위치 및 하천도. 가장 큰 유입하천이 셀렝가 강이고 유일한 유출하천인 앙가라강은 예니셰이 강이 돼 북극해로 들어간다. 그림=Kmusser, 위키미디어 코먼스

 

sb0-1_Benutzer Sansculotte_.jpg » 맑고 깊은 물이 드러난 여름의 바이칼 호 동쪽 연안. 사진=Benutzer Sansculotte, 위키미디어 코먼스  

 

바이칼 호에 빠지면 안 되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 호수는 가장 깊은 곳이 1642m이고 평균 깊이도 744m나 된다. 황해의 평균수심은 45m다.

 

바이칼 호는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40m 바닥의 수초가 훤히 보인다.

 

그만큼 영양분이 적기 때문에서 세계에서 이곳에만 사는 갑각류들은 유기물 분자 하나라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호수에 빠져 실종되면 1달 뒤엔 주검 회수를 포기한다. 모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sb7.jpg » 황갈색 지의류가 덮인 절벽을 얼어붙은 파도가 둘러싸고 있다. 호수가 늦게 얼어 생기는 현상이다.
 

알혼섬에서 하보이곶으로 향하는 얼음판은 전날과 달랐다. 얼음판은 깨졌다 다시 언 얼음으로 울퉁불퉁했고 유리공장 폐기물 더미를 지나듯 깨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얼음장이 빽빽하게 일어선 곳도 지나야 했다.

 

해안 절벽은 북극해를 떠올리게 했다. 바다로 흘러드는 빙하처럼 거대한 얼음덩이가 절벽 가장자리를 둘러쌌고 천장에선 사람 키를 넘는 고드름이 늘어져 있다. 호수 가운데에도 두께가 20㎝는 되는 두꺼운 얼음장이 깨어진 채 포개지고 일어서 있어 북극해의 빙산을 떠올리게 했다.

 

sb6.jpg » 두께 20㎝인 두꺼운 얼음이 호수가 미처 얼어붙기 전 불어닥친 풍랑에 깨져 포개져 있다.
 

겨울 바이칼 호의 볼거리는 바로 얼음이 연출하는 이런 기기묘묘한 모습인데,  이 호수의 독특한 자연조건이 빚어낸 것이다. 이 호수의 물은 세계의 얼지 않은 담수의 20%를 차지한다. 바이칼을 비우고 세계의 모든 강과 하천 물을 이리로 돌려도 다 채우려면 1년이 걸릴 만큼 거대한 용량이다.

 

이 때문에 겨울이 시작돼 영하 20도의 날씨가 계속돼도 바이칼 호의 물은 꿋끗하게 얼지 않고 버틴다. 1월 중순이 돼야 호수가 모두 언다.

 

sb5.jpg » 파도가 절벽에서 그대로 얼어붙어 생긴 장관이 바이칼의 겨울철 볼거리이다.

 

그러나 호수가 완전히 얼어붙기 전 절벽을 때린 파도는 그대로 얼어붙는다. 또 폭풍에 조각난 얼음장이 포개지거나 일어서 절경을 만든다.
 

호수의 얼음은 5월 중순이 돼야 모두 녹지만 얼음판 고속도로는 3월하순이면 중단된다. 바이칼 호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비케이투어 박대일 대표는 “호숫길이 열리는 시기가 전에는 1월 중순이었는데 요즘엔 2월 중순으로 늦춰졌다”며 “10년쯤 지나면 얼음위 바이칼 관광이 불가능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북극에 가까울수록 심하다.

 

sb3.jpg » 한겨레 테마 기행 참가자들이 얼어붙은 바이칼 호에서 포즈를 취했다.

 

sb1.jpg » 참가자들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75시간 동안 여행해 이르쿠츠크에서 내려 바이칼로 향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동력은 전기이지만 난방은 역에서 공급하는 석탄으로 한다.

 

탐방객은 이 호수 특산어종인 오물을 곁들여 점심식사를 했다. 청어처럼 생겼지만 한때 북극해를 오가다가 호수에 고립해 진화한 연어의 일종이다.

 

오물처럼 상업어종은 아니지만 세계에서 이곳에만 사는 골로미얀카는 매우 독특하고 생태적으로 중요한 물고기다. 투명한 몸의 30%가 기름이고 비타민이 풍부해 원주민이 양초 대용으로 쓰거나 약용으로 이용했다. 이 호수의 최상위 포식자인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물에 서식하는 바이칼물범의 주요 먹이이기도 하다.

 

sb12_Per Harald Olsen -nerpa.jpg » 바이칼물범. 200만년 전부터 바이칼에 적응해 진화한 특산종이다. 8만~10만마리가 호수에 서식한다. 사진=Per Harald Olsen, 위키미디어 코먼스

 

호수가 두꺼운 얼음으로 덮이면 물범은 어떻게 살아갈까. 아직 헤엄을 치지 못하는 새끼를 얼음위에서 기르는 물범에게 얼음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아야 하고 천적으로부터 피하려면 물속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바이칼물범은 얼음이 완전히 얼기 전 은신처를 만들고 그 속에서 물속으로 들락날락하면서 얼지 않는 통로를 만들어 둔다고 한다.

 

Baykalsk Pulp and Paper Mill.jpg » 바이칼 호의 초청정수를 이용해 군용 항공기용 셀룰로스를 만들기 위해 1966년 호숫가에 건설된 대규모 펄프 및 제지공장. 2013년 문을 닫기까지 염소가 포함된 다량의 폐수를 호수로 쏟아부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언덕 이쪽은 남성, 저쪽은 여성”, 화장실은 따로 없었다. 호수의 무한한 자정능력을 믿는 것은 이곳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그 주역은 ‘에피슈라’라는 새우 비슷한 갑각류를 포함한 동물플랑크톤으로 호수 생물량의 80~90%를 차지한다. 바이칼호 연안인 바이칼스크에 대규모 펄프 및 제지공장을 지었을 때 공산당 내부에서조차 반대가 심했지만 당시 공산당서기장 흐루쇼프가 “바이칼도 노동해야 한다”며 강행한 근거도 이것이었다.

 

sb11.jpg » 바이칼의 특산 갑각류인 에피슈라. 작은 새우 크기로 생물량이 워낙 많아 바이칼 수질을 정화시켜 주는 주역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러나 ‘완벽하다’던 호수도 오염과 교란이 계속되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바이칼스크 제지·펄프 공장은 마침내 2013년 문을 닫았지만 40년 가까이 다이옥신이 포함된 유해폐수를 호수로 흘려보냈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바이칼물범이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북해 물범과 비슷한 난분해성 물질로 오염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바이칼호의 유일한 유출구인 앙가라 강에는 대규모 수력발전이 세워져 호수의 수위를 1m나 높여놓았고, 대규모 공장지대에서 배출된 배기가스는 편서풍을 타고 고스란히 호수에 떨어지고 있다.

 

sb9.jpg » 이르쿠츠크 시를 흐르는 앙가라 강. 물살이 세 겨울에도 부분적으로 얼지 않는 이 강은 바이칼 호의 유일한 출구로 대규모 댐이 설치돼 있고 주변에 중화학 공업단지가 위치한다.

 

호수의 가장 중요한 지류인 셀렝가강은  몽골의 도심과 광산을 지나면서 수은과 생활하수로 오염된 물을 호수에 풀어놓고 있다. 최근엔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이 강에 건설될 예정이어서 호수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셀렝가 강 하구의 거대한 삼각주에는 대규모 갈대밭이 있는 등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가창오리의 번식지이기도 하다. 이곳도 댐 건설과 대규모 농경지 개발로 위협받고 있다.

 

sb10.jpg » 바이칼 호 유입수의 절반을 담당하는 셀렝가 강 하구의 모습. 이 강의 수질오염과 함께 몽골이 대규모 댐을 건설할 계획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미 국립항공우주국(NASA)

 

유네스코는 1996년 바이칼 호를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기구는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 당국에 댐과 관광 개발이 호수의 환경에 끼칠 악영향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주요 우려 대상은 셀렝가 강의 댐 건설, 최근 호수 심층에서 발견된 가스하이드레이트 채굴, 관광을 위한 바이칼 항구 개발과 특별경제구역 조성 등이다.
 

알혼 섬에는 겨울인데도 핀란드, 중국, 독일 등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찾고 있었다. ‘기념품’ 등 한글로 된 안내문도 눈에 띄었다.

 

바이칼 호는 동해가 열려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던 즈음인 약 2500만년 전 생겼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 호수는 다윈이 갈라파고스가 아닌 이곳을 탐사했다면 훨씬 쉽게 진화론을 발견했을 것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자연을 갖췄다. 그러나 이대로 놔두면 '시베리아의 보석'은 머지않아 빛을 잃을지도 모른다.
 
러시아 바이칼 호/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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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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