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이 몰랐던 것…탐조의 미학은 ‘추적’ 아닌 ‘기다림'

윤순영 2012. 02. 07
조회수 119156 추천수 1

방송 뒤 탐조객 몰려 두루미 먹이 못 먹고 잠자리서도 쫓겨

하루 낱알 6000개 먹어야 체온 유지, 한 번 날면 300개 보충해야

 

며칠 전 전춘기 한국두루미보호협회 철원군 지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 연말 KBS 2TV의 '1박2일' 프로그램에서 김종민이 두루미 가족의 사진을 찍는 내용이 방영된 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두루미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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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두루미는 뒤로 쭉 뻗고 날던 다리를 보온을 위해 배에 묻고 날기도 한다.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 2월2일 철원으로 향했다. 영하 20도의 맹추위가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전춘기 지회장은 만나자마자 탐조인과 사진가 등이 철원평야를 헤집고 다녀 두루미 보기가 힘들다고 말을 건냈다. 두루미가 먹이를 먹을 기회를 주지 않아 해질 무렵에야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먹이를 먹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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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춘기 한국두루미보호협회 철원군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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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에게 먹이를 주고 밀렵을 감시하는 차량.

 

기온이 영하 5~10도 정도이면 두루미는 아침 7시40분께 먹이터로 향하지만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면 오후1시나 돼야 잠자리에서 먹이터로 나온다. 가뜩이나 강추위에 먹이를 먹을 시간도 줄어든데다 사람들에게 쫓겨 다니니 두루미에게는 고달픈 겨울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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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서 일어나 먹이터로 향하는 두루미 가족.

  

두루미는 아주 예민한 조류이다. 한번 방해를 받으면 지속적으로 사람이나 차량까지 피한다. 그런데 `1박2일' 프로그램에서 말로는 기다림을 강조했지만 짧은 제작기간 때문인지 사실상 두루미를 쫓아다니는 내용이었다. 전문가가 보기에 이 프로그램은 두루미를 가지고 놀이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과연 오락프로에서 두루미를 추적하는 장면들이 잘 된 일일까? 추적이란 도망치는 동물의 뒤를 밟거나 자취를 더듬어 가는 행위이다. 두루미 네 마리 가족을 촬영하는 미션은 사실상 추적이었던 것 같다.


두루미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사람들의 눈요기로 추적당할 이유가 있었을까. 두루미 앞 위장텐트에 숨어 걸어가며 하는 장난기 어린 행동에서 두루미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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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터에 내려 앉는 두루미.

 

두루미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곡식 낱알 6000개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한 번 날 때마다 낱알 300개 정도의 열량을 소비한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에 쫓겨 한 번 날아갈 때마다 그만한 낱알을 먹어 열량을 채워야 한다. 해 짧고 추운 이 겨울에 낱알 6000개를 하루에 찾아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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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내밀고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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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을 보자 바로 날아가는 두루미. 이들의 추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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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에서 내려 두루미에게 '돌진'하는 탐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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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 날아오르는 두루미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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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달아 놀란 고라니가 달아난다.

 

현장을 둘러보았다. 차량 수십대가 철원평야를 이리저리 두루미를 찾아 다닌다. 심지어 두루미를 보면 차에서 내려 달려가기까지 한다.


철원평야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두루미는 사람과 차량을 두려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얼마나 귀찮게 했으면 저리도 예민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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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한탄강 여울 두루미 잠자리에 몰려들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

 

한탄강 여울 두루미 잠자리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수십 명씩 몰려들어 두루미는 아예 상류 쪽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두루미도 민통선 경계지역에는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는 것을 아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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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여울의 기존 잠자리에 몰려들던 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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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자리에 겨우 10마리 이내의 두루미가 자고 있다.

 

오락 삼아 두루미 추적 방송이 나간 이후 사람들이 몰려들자 두루미들은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잠자리마저  편하지 않은 상태이다.


공영방송으로서 좀 더 깊이 생각하여 프로그램 내용이 두루미에게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검토했어야 했다. 일반인들은 두루미의 습성이나 관찰수칙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탐조의 미학은 추적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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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는 불편하지만 아예 사람을 피해 상류쪽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 두루미를 배려한 탐조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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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접근하자 놀라며 긴장하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조용하면 더 많이 봅니다
새들은 소리에 민감해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매우 불안해 합니다. 정숙한 관찰자가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시끄럽게 떠들거나 함부로 뛰어다니면 안 됩니다.

 

옷은 녹색이나 갈색이 좋아요
새는 사람보다 8~40배 높은 시력을 갖고 있습니다. 원색의 옷은 새를 자극하고 스트레스를 줍니다.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게 여름에는 녹색, 겨울에는 갈색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마세요
새들은 우리들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위협을 느낍니다. 산새류는 20m 이상, 물새류는 15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새를 자세히 보고 싶으면 미리 쌍안경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쌍안경은 배율이 8*42, 10*42 정도가 사용하기 편합니다. 배율이 너무 크면 어지러워 탐조하기가 힘듭니다.

 

망원렌즈를 사용하세요

새를 촬영할 때는 300mm 이상의 망원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새들과 먼 거리에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원평야의 경우 일반 카메라 렌즈로 촬영하다 보니 가까이 접근하여 두루미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두루미는 150m 이내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차량으로 탐조하거나 촬영 할 때는 되도록 차량에서 내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 찍을 때 조심하세요
플래시를 사용하면 새들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욕심에 너무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몸을 숨기고 조용히 찍어야 합니다.

 

우르르 몰려다니면 무서워요
사람들이 몰려 있으면 새들이 금방 알아차립니다. 함께 움직이는 인원은 3~5명 정도가 적당합니다.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움직입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새들에게 해를 줍니다. 무심코 버린 줄에 발이 묶이거나 쓰레기를 먹고 죽는 새도 있습니다. 쓰레기는 봉투에 담아 집으로 되가져 가세요.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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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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