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방계 식물 공존 습지, 병원 건립으로 큰 병 날라

김정수 2015. 1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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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백석제 개발 논란, 독미나리-물고사리 등 집단 분포
“열악한 지역의료 개선” 추진에 “환경영향평가 엉터리” 반발

 

백석제 메인.JPG » 전북 군산시와 전북대병원이 병원 건립을 추진 중인 군산시 옥산면 백석제. 더이상 저수지로 사용하지 않아 갈대, 줄 등 습지식물이 뒤덮고 있다.사진=김정수 기자
   
“멸종위기종들을 포함한 희귀 습지식물의 서식지인 만큼 원형 보전해야 한다.” “지금 사업 대체지를 찾으면 사업이 2년 이상 늦어지거나 아예 무산될 수도 있어 안 된다.”
 

전북 군산시 옥산면의 저수지 백석제에 전북대병원 분원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둘러싼 시민환경단체와 군산시·전북대병원 사이 공방이 뜨겁다. 환경부가 양쪽을 불러 의견을 듣는 등 사업의 운명을 결정할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 마무리 수순인데도 공방은 식지 않고 있다.

 

지도.jpg

 

갈대와 줄 등 습지식물로 초원을 이룬 11만7000여㎡(3만5000평)의 작은 습지는 북방계 멸종위기 식물인 독미나리와 각시수련, 남방계 멸종위기 식물인 물고사리가 함께 분포하는 매우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독미나리 군락.jpg » 국내 최대 규모로 밝혀진 백석제의 독미나리 군락. 사진=군산생태환경시민연대회의
 

환경부 새만금지방환경청에 제출된 ‘군산전북대학교병원 도시계획시설 결정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보면 군산시와 전북대병원은 백석제와 주변의 야산 일부를 병원시설 용지와 도로 등 공공시설 용지로 바꿔 2019년까지 500병상 규모의 전북대병원 군산분원을 설치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면 백석제의 서쪽 귀퉁이 2만여㎡를 제외한 나머지 습지는 모두 사업 터에 들어가 사라진다.
 

김양원 군산시 부시장은 지난달 3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역에서는 백석제를 보전하라는 요구보다 상급병원이 없는 열악한 의료 현실을 빨리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더 높다”며 “제방 가까이 있는 독미나리 군락지 등은 그대로 두고, 흩어져 있는 멸종위기 식물은 대체분포지로 옮겨 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수지 대부분이 메워지는 물리적 환경 변화를 겪은 뒤 도로와 건물 등에 에워싸인 섬으로 남을 보전지들의 생태적 가치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은 “멸종위기종 식물은 자생지에서 옮겨지는 순간 자연성이 상실돼 사실상 멸종되는 것과 같고, 일부 남겨둔 자생지에서 멸종위기종이 유지되더라도 백석제 습지 생태계의 뛰어난 가치는 제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03089232_R_0.jpg » 강원도 횡성의 독미나리 자생지 모습. 군산 백석제는 이곳보다 규모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조홍섭 기자
 

멸종위기식물 2급인 독미나리가 백석지에 집단 분포한다는 사실은 2013년 가을 군산지역 시민환경단체들에 의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시가 백석제를 메워 병원을 지으려 한다는 소식에 놀란 이들이 식물 전문가에게 의뢰해 백석제의 식물상을 조사한 결과, 2만 개체가 넘은 독미나리 분포가 확인됐다. 당시까지 국내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던 강원도 횡성의 독미나리 집단 분포지를 뛰어넘는 규모다.
 

시민환경단체들은 지난 5월에는 백석제 북쪽 왕버들 군락지에서 국가 멸종위기종 목록인 적색목록에 정보부족(DD)으로 분류돼 있는 북방계 희귀식물 양뿔사초 군락을 발견했고, 8월에는 백석제 서쪽 가장자리에서 멸종위기종 2급 각시수련도 찾아냈다.

 

각시수련.jpg » 북방계 멸종위기 식물인 각시수련. 사진=군산생태환경시민연대회의

 

당시 새만금지방환경청의 요청으로 현장조사를 한 국립생물자원관 김중현 전문위원은 “현장에서 각시수련 3개체를 확인했다”며 “강원 고성의 석호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각시수련이 백석제에서 발견된 것은 의외지만, 주변에 독미나리와 양뿔사초 등 다른 북방계 식물도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자생지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원 이북에 분포한다는 북방계 멸종위기 식물들이 어떻게 백석제에서 잇따라 발견된 것일까? 지난달 30일 백석제 멸종위기 식물 군락지를 안내한 군산생태환경시민연대회의 김형균 사무국장은 “과거 유림들이 백석제를 ‘흰 돌의 차가운 못’을 의미하는 ‘백석한담’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며 “다른 저수지에 비해 수온이 차가워 북방계 식물의 피난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진오 소장은 “현장을 보지 않아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물이 있는 습지라는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고사리 군락.jpg » 남방계 멸종위기 식물인 물고사리. 사진=군산생태환경시민연대회의
 

백석제에 분포하는 희귀식물 목록에는 최근 남방계 멸종위기 식물 2급인 물고사리도 추가됐다. 물고사리는 지난달 군산생태환경시민연대회의를 비롯한 시민환경단체들에 의해 백석제 서쪽 지역에 집단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멸종위기 식물에 초점을 맞춰 보면 백석제의 가치는 기존 국가 보호습지에 모자라지 않는다. 환경부가 지정한 20개 습지보호지역 가운데 고산습지나 하천습지, 오름 등을 제외하고 백석제와 가까운 유형의 습지인 경북 상주시 공검면의 공검지 습지, 전북 정읍시 쌍암동의 월영습지, 전북 고창군 아산면의 운곡습지 가운데 멸종위기 식물이 1종이라도 확인된 곳은 아직 없다. 이들 습지보호지역의 면적이 각기 백석제의 2~11배에 이르는데도 그렇다.

 

현진오 소장은 “멸종위기에 놓인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백석제와 같은 좁은 지역에 함께 나타나는 것은 우리나라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다.

 

양뿔사초 군락.jpg » 희귀식물인 양뿔사초 군락. 사진=군산생태환경시민연대회의
 

문제는 백석제를 병원 건립 예정지로 선정하는 과정에 이와 같은 희귀식물 서식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민환경단체들이 “사업자 쪽이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는 멸종위기종인 물고사리와 희귀종 식물인 양뿔사초에 대해서는 조사 기록조차 제시하지 않고, 독미나리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인공식재라 평가절하하고 있다”며 “환경청은 부실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새만금지방환경청은 지난달 26일과 30일 잇따라 주선한 시민환경단체와 군산시, 전북대병원 관계자들의 간담회 결과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내부 논의를 거쳐 곧 환경영향평가 검토 결론을 짓겠다는 방침이다. 환경청이 병원 조기 설립을 바라는 주민들과 멸종위기종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에 대한 주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군산/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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