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뱀장어 점프해 말 공격”, 전설이 사실로

조홍섭 2016. 06. 07
조회수 41870 추천수 0
1800년 목격한 아마존 원주민의 '말로 뱀장어 잡기' 실험실에서 확인
건기 육상 포식자의 공격에 맞서 최대한 전기충격 가하려는 행동 진화

eel-1.jpg » 악어 모형을 공격하는 전기뱀장어. 물 밖에 몸을 내밀어 상대에 최대한의 전기충격을 가하려는 행동이다. 사진=케네스 카타냐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탐험가이자 자연주의자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아마존 탐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아마존에서 전기뱀장어와 말이 벌인 ‘혈투’는 어린이 잡지에도 빠짐없이 실리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훔볼트는 나중에 학술지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의 목격담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800년 3월19일 아마존강 주민에게 연구에 쓸 전기뱀장어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은 ‘말을 미끼로 삼아 뱀장어 잡기’ 시범을 보여줬다. 말과 노새 약 30마리를 뱀장어가 있을 법한 흙탕물이 고인 얕은 웅덩이에 몰아넣었다.

HumboldtEelsandHorses.jpg » 훔볼트의 이야기에 나오는 말과 뱀장어의 '혈투'를 삽화. 아마존 원주민들의 '말 미끼로 뱀장어 잡기'를 재현한 것이다.
 
주민들은 웅덩이를 둘러싸고 소리를 지르고 채찍질을 해 말이 웅덩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말이 웅덩이 안에서 돌아다니자 물속에서 전기뱀장어가 뛰어올라 말을 공격했다.
 
말은 더욱 날뛰고 뱀장어들의 공격도 심해졌다. 약 5분 뒤 말 2마리가 감전해 쓰러진 뒤 익사했고 다른 말들도 지쳐 쓰러졌다. 주민들은 전기를 모두 방전해 버린 전기뱀장어 5마리를 거둬냈다.
 
지난 200여년 동안, 이 이야기를 과학자들은 ‘지어낸 이야기’로 간주했다. 전기뱀장어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보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Steven G. Johnson.jpg » 전기뱀장어는 뱀장어와 과가 다른 김노투스과의 담수어이다. 이 과에 속하는 물고기는 모두 전기 발생 장치를 지니고 있다. 사진=Steven G. Johnson, 위키미디어 코먼스
 
케네스 카타냐 미국 밴더빌트대 생물학자는 자신도 그렇게 믿었지만, 지난해 실험실에서 우연히 목격한 일 뒤로는 ‘훔볼트가 옳았다’라고 고쳐 생각하게 됐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그는 실험실에서 전기뱀장어를 이 수조에서 다른 수조로 옮길 때 쇠 테두리가 달린 채를 이용했다. 구석에 몰린 뱀장어는 이상하게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물 위로 몸을 일으켜 채에 뺨을 대는 행동을 했다. 그는 훔볼트의 이야기에서 뱀장어가 도망치지 않고 굳이 물 위에 뛰어올라 말을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Ken Catania1.jpg » 전기뱀장어가 상체를 들어 포식자에 대 전기충격을 극대화시키는 얼개. 사진=케네스 카타냐
 
그는 <미 국립 학술원회보>(PNAS) 6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전기뱀장어의 이런 공격방법은 육상 포식자에 강력한 전기충격을 가하기 위해 진화시킨 행동임을 밝혔다. 우리가 몰랐을 뿐, 훔볼트의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의 전설이 아닌 과학적 관찰이었던 것이다.
 
전기뱀장어는 마치 테이저 건처럼 고전압 펄스를 방출해 작은 물고기 등 먹이를 마비시킨 뒤 잡아먹는다. 그런데 육상 포식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이런 정도로는 방어가 힘들다.

Ken Catania2.jpg » 악어 모형에 설치한 엘이디 전구를 이용해 전기뱀장어의 공격에 따라 전기충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실험. 사진=케네스 카타냐
 
아마존강은 건기 때 물이 얕아지고 전기뱀장어의 서식지는 쉽사리 포식자에 노출된다. 게다가 이 뱀장어(사실 전기뱀장어는 뱀장어와 과가 다른 김노투스과에 속한다)는 이때가 번식기이다. 훔볼트가 뱀장어 잡이를 목격한 때도 건기였다.
 
포식자가 늪에 들어와 몸의 일부가 물에 잠기면 전기뱀장어는 물 밖으로 몸을 일으켜 상대의 몸에 뺨을 댄 뒤 강력한 전기 충격을 가한다. 물속에선 전기가 사방으로 분산되지만 공기 속에선 접촉한 부위에 집중된다. 뱀장어의 뺨에서 포식자의 몸, 물에 잠긴 포식자의 다리, 물, 뱀장어의 꼬리 순으로 전류가 흘러 회로가 완성되는 것이다.
 
카타냐는 “이런 (뛰어오르는) 방식으로 뱀장어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육상동물한테 최대한의 동력으로 충격을 가할 수 있게 된다. 침입자 몸의 더 많은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라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전기뱀장어 뛰어올라 공격하는 실험 동영상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enneth C. Catania, Leaping eels electrify threats, supporting Humboldt’s account of a battle with horses, PNAS Early Edition, www.pnas.org/cgi/doi/10.1073/pnas.160400911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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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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