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호랑이가 위험하다, 개 때문에

조홍섭 2011. 10. 21
조회수 85681 추천수 0

치명적인 개 홍역 퍼져, 이미 야생 호랑이 2마리서 바이러스 검출

밀렵, 서식지 감소 이은 새 위협…러시아, 미국 과학자들 긴급 공동연구

 

page27.jpg

▲시베리아호랑이. 사진=야생동물보전협회

 

러시아 극동지방의 시베리아호랑이(아무르호랑이) 연구자들은 2000년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야생 호랑이가 마을에 들어오거나 대로변을 어슬렁거려 교통을 마비시키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베리아호랑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해 테르니 마을에 호랑이가 출현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야생동물보전협회(WCS)가 지난 8년 동안 시호테알린 생물권보전지역에서 연구하던 암 호랑이였다. ‘갈랴’란 이름의 이 호랑이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마을에 들어와 새 환경에 어리둥절하면서 손쉬운 먹이인 개를 노렸다. 비정상적인 신경증 증상을 보인 이 호랑이는 생포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현지경찰이 사살했다.
 

 

2003년에도 하바로프스키 크라이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암 호랑이가 마을로 들어왔다. 연구진에게 포획된 암 호랑이는 나중에 죽었다. 두 호랑이의 조직검사에서 개 홍역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밀렵과 서식지 파괴에 이어 질병이 시베리아호랑이의 중요한 위협요인으로 떠올랐다. 이 질병에 걸리면 근육경련과 착란을 일으키고 결국 치명적인 마비에 이르게 된다.
 

 

개 홍역은 개의 질병이지만, 버려진 개나 개에 의해 감염된 야생동물에 의해 전파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개 홍역은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사자, 캐나다의 스라소니, 러시아의 바이칼 물개 등에서 발견된 바 있다. 1994년 개 홍역이 탄자니아와 케냐의 사자에 번졌을 때는 사자 집단의 3분의 1에 가까운 1000마리 이상이 전염돼 죽었다.
 

 

800px-Panthera_tigris_altaica_13_-_Buffalo_Zoo.jpg

▲미국 버팔로 동물원에서 새끼를 낳은 시베리아호랑이. 사진=데이브 페이프, 위키미디아 커먼스

 

야생동물보전협회는 앞서 확증된 두 사례 말고도 최근 들어 야생 호랑이들이 마을에 출몰하는 사례들이 개 홍역에 따른 증상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와 야생동물보전협회 브롱스 동물원의 전문가들은 최근 우수리스크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개 홍역이 시베리아호랑이에게 초래할 위협을 줄일 방안을 논의했다.
 

 

이리나 코로트코바 프리모스카야 농업 아카데미 연구원은 “야생 시베리아호랑이에게 개 홍역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호랑이의 생존이 걸린 일”이라고 말했다.
 

 

개 홍역은 백신으로 막을 수 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는 주변 마을 개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 사자 피해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시베리아호랑이는 2005년 조사에서 야생에 500마리가 남아있었지만 현재는 350마리 미만으로 줄었다고 야생동물보전협회는 밝혔다. 동물원에서 기르는 번식 가능한 암컷 시베리아호랑이는 1000마리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