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로 쓰이는 모기장, 최빈국 주민의 딱한 사정

조홍섭 2019. 12. 02
조회수 7513 추천수 0
“가볍고 질기고 공짜”…세계 30개 최빈국서 새끼 고기까지 씨 말려

n1.jpg » 해변의 해초밭에서 모기장의 양 끝을 잡고 끌어 새끼 물고기를 잡는 모잠비크 팔마 만 주민들. 벤야민 존스 등 (2019) ‘암비오’ 제공.

비정부기구 등에서 거의 무료로 모기장을 대량 보급하자 최빈국 주민들은 새로운 ‘자원’을 원래 용도 말고도 농작물 덮개나 결혼식 예복 재료로 재활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인기 있는 새 용도는 그물이었다. 

가볍고, 질기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모기장으로 누구나 비싼 어구인 그물이나 카누 없이도 다음 끼니의 반찬거리나 푼돈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됐다. 해마다 50만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보급량이 연간 1억5000만개에 이르는 모기장은, 이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최빈국을 중심으로 세계 30여 나라에서 손톱만 한 물고기 새끼까지 씨를 말리는 어구로 쓰이고 있다.

이런 행태가 말라리아로 인한 건강 위협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고 장차 가난한 주민들의 먹거리 기반인 바다 생태계를 위태롭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벤야민 존스 스웨덴 스톡홀름대 생태학자 등은 과학저널 ‘암비오’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동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벌어지는 모기장을 이용한 어획 실태를 분석했다.

n2.jpg » 모기장 그물에 걸린 새끼 물고기. 한 번 그물질에 길이 2㎝의 치어 수백 마리가 걸린다. 벤야민 존스 제공.

모잠비크 북부의 팔마 만에서 연구자들이 현지조사했더니, 모기장을 이용한 어획에는 2가지 유형이 있었다. 첫째는 여성과 아이들이 하는 소규모 후릿그물로, 해초가 깔린 얕은 해안에서 그물 양 끝을 끌어 걸린 작은 물고기를 잡는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규모가 큰 쓰레그물(저인망)로 기존 그물 가운데 촘촘한 모기장을 설치해 2명 이상이 걸어서 또는 카누를 타고 해초 초원을 끌어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문제는 모기장의 그물코가 3㎜ 이하여서 새끼 물고기까지 닥치는 대로 잡는다는 데 있다. 존스 박사는 “모기장을 그물로 쓰는 것은 가뜩이나 남획이 벌어지는 연안 생태계에 새로운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주민들이 모기장으로 잡아내는 물고기의 절반 이상은 어린 고기였다. 모기장으로는 아주 작은 고기까지 걸리기 때문에 모기장을 한 번 끌 때마다 잡는 물고기의 양은 전통어구를 이용해 하루 잡는 양(하루 2.4㎏)의 절반 이상인 1.4㎏이었다. 한 번 그물질에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걸리는데, 대부분 길이 2㎝ 미만이었다.

n3.jpg » 그물눈이 촘촘한 모기장을 덧대 만든 쓰레그물을 해초 초원 위로 끌어 작은 물고기를 잡는 모잠비크 어민들. 벤야민 존스 등 (2019) ‘암비오’ 제공.

이처럼 어린 물고기를 잡아내는 것은 미래 먹거리를 없애는 셈이다. 잡힌 어린 고기의 4분의 3은 어른 고기로 자란다면 상업적으로 중요한 종이었다. 공저자인 리처드 운스워스 영국 스완지대 박사는 “모기장 어획은 결국 식량 부족, 가난 심화, 그리고 생태계 기능 상실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팔마 만의 물고기는 “(모기장 어구를 이용한) 남획으로 붕괴 직전”이라고 연구자들은 경고했다. 모기장 어획에서 잡힌 어종은 39종이었지만 이곳에서 100㎞ 떨어진 보호구역 해초 숲에서는 249종이 발견됐다. 

얕은 바다에 해초가 무성하게 자라 ‘수중초원’을 이룬 곳은 생물 다양성과 생산력이 커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어린 물고기의 양육장인 해초림은 모기장을 이용한 바닥 쓸기 어획에 적합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n4.jpg » 모기장 그물에 걸린 새끼 독가시치. 벤야민 존스 제공.

그렇다면 어민들이 모기장을 그물로 쓰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연구자들은 “가난한 어민에게 규제 강화는 아무런 실효가 없을 것”이라며 “왜 모기장으로 고기를 잡게 됐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해양과학자, 사회과학자, 보건 전문가 그리고 지역의 어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상향식 접근방법이 해결의 출발점”이라며 “규제와 함께 지원과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enjamin L. Jones, Richard K. F. Unsworth, The perverse fisheries consequences of mosquito net malaria prophylaxis in East Africa, Ambio, https://doi.org/10.1007/s13280-019-01280-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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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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