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도 도구 이용해 사냥, 나뭇가지로 백로 유인

조홍섭 2013. 12. 06
조회수 57623 추천수 0

코 위에 나뭇가지 띄워 놓고, 둥지 재료 구하러 접근하는 백로 '덥석'

악어는 영리하고 섬세한 동물…침팬지, 올빼미, 놀래미 등도 도구로 사냥

 

aligator_Don Specht_s.jpg » 코 위 나뭇가지를 집으려다 아메리카앨리게이터로 잡힌 백로. 사진=돈 스펙트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이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그렇지만 먹이를 사냥할 때 도구를 쓰는 동물을 꼽으라면 그리 많지 않다.

 

나뭇가지로 흰개미를 사냥하는 침팬지 정도가 널리 알려진 사례이다. 영장류 말고 새와 물고기 가운데 도구를 써서 사냥을 하기도 한다. 악어 가운데도 바닷물에 사는 악어가 죽은 물고기로 새를 유인해 잡아먹는다는 목격담이 있으나 그것이 우연적인지 의도적인 행동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도구를 이용해 사냥할 것 같지 않은 대표적인 동물은 파충류이다. 파충류에는 둔하고 어리석다는 선입견이 따라다닌다. 이런 편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릴 사례가 발견됐다.
 

미국의 행동생태학자 블라디미르 디네츠는 2007년 인도의 한 동물원에서 흥미로운 일을 목격했다. 연못의 인도악어가 코 위에 잔가지와 막대기를 얼기설기 얹은 채 떠 있었다. 이 나뭇가지가 탐난 중백로 한 마리가 목을 늘여 집으려는 순간 악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잡으려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mugger_Madras Crocodile Bank_s.jpg » 나뭇가지 몇 개를 코 위에 올려놓고 물에 떠 잠복하고 있는 인도악어. 나뭇가지를 의도적으로 올려놓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마드라스 악어 은행, <동물행동학, 생태학, 진화론>

 

이 악어는 나뭇가지를 미끼로 백로를 사냥하려 했던 것일까. 그런 의도적 행동이 아니라 나뭇가지 우연히 코 위에 떠있었거나 악어가 나뭇가지 밑에 위장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악어 연못에서 악어가 새를 잡아먹는 모습이 관찰된 적은 없었다.
 

새들은 종종 악어가 들끓는 연못 안에 있는 큰 나무에 둥지를 튼다. 나무에 기어오르는 천적인 뱀, 원숭이, 너구리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새들은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나무의 둥지에서 새끼가 물로 떨어지면 악어가 냉큼 잡아먹는다. 하지만 이런 거래가 밑질 것이 없는지 악어 농장의 연못에 나무가 있으면 대개 백로 등 새들이 둥지를 튼다.
 

디네츠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비슷한 모습을 또 목격하게 된다. 악어와 아메리카앨리케이터를 기르는 공원 4곳 가운데 2곳에는 연못 가운데 큰 나무가 서 있고 여기서 백로들이 해마다 번식을 한다.
 

백로들은 둥지를 트는 시기에 재료로 쓸 나뭇가지를 구하느라 애를 먹는데, 종종 이웃 둥지에서 나뭇가지를 훔치려다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들 공원에서도 악어들이 코 위에 나뭇가지들을 올려놓고 물에 떠있는 모습을 종종 관찰할 수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새를 사냥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특히 백로가 둥지를 짓는 철이면 악어가 물 위에 나뭇가지를 띄워놓는 행동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디네츠는 이에 백로가 번식하고 앨리게이터가 서식하는 루이지애나의 호수 두 곳에서 1년 동안 체계적인 관찰을 한 결과 앨리게이터의 이런 행동은 나뭇가지를 도구로 이용해 새를 유인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576px-American_Alligator.jpg » 아메리카앨리게이터. 알려진 것보다 영리한 동물로 밝혀지고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엘리게이터의 이 행동은 새들의 번식기에만 나타났으며 둥지 짓기가 한창일 때에 집중됐다. 나뭇가지가 우연히 물에 떠다니는 일은 없었는데, 워낙 둥지에 쓸 나뭇가지가 귀해 설사 물 위에 떠있더라도 새들이 곧 물어갔다.
 

디네츠는 이 발견을 발표한 국제학술지 <동물행동학, 생태학, 진화론> 최근호에서 “악어의 이런 행동이 개별적으로 습득한 기술인지, 문화적으로 전파된 것인지, 또는 이전부터 진화된 본능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물새 서식지가 광범하던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악어가 둔하고 어리석다는 인상은 이제 옛말이다. 악어는 유연하고 다양한 신호를 내며, 새끼를 잘 기르고 집단이 고도로 잘 조율된 사냥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라고 최근에 밝혀지기 시작한 악어 행동의 놀라운 복잡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이번 발견은 비교적 친근한 동물의 지적 능력도 얼마나 과소평가하기 쉬운지 잘 보여줄 뿐 아니라 같은 파충류인 공룡의 행동도 마찬가지로 아주 복잡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라고 덧붙였다.
 

sandiago zoo_640px-BonoboFishing04.jpg »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나뭇가지로 흰개미 낚시를 하는 침팬지.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악어 이외의 동물 가운데 도구를 이용해 사냥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예는 침팬지이다. 제인 구달은 1960년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흰개미 둥지 안으로 밀어넣어 이를 물고 늘어지는 흰개미를 훑어 먹는 행동을 발견했다.
 

이런 행동은 보노보에서도 관찰됐으며, 침팬지는 사냥용 도구인 개미 낚싯대를 만들기도 한다. 오랑우탄도 웅덩이에서 막대기를 창처럼 써 메기를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BBODO _640px-Camarhynchus_pallidus_composite.jpg » 선인장 가시를 이용해 나뭇구멍 속 벌레를 잡는 갈라파고스핀치. 사진=BBODO,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장류 말고도 갈라파고스핀치란 새는 나무줄기 속에 숨어있는 벌레에 부리가 닿지 않으면 선인장으로 날아가 알맞은 가시를 떼어온 뒤 벌레를 쫓아내거나 찔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까마귀 종류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또 올빼미는 배설물을 모아놓고 여기에 꼬이는 딱정벌레를 먹기도 한다.
 

이밖에 놀래기류의 일부 물고기는 모래밭에서 조개나 성게를 잡으면 돌을 가져와 모루로 삼은 뒤 머리로 찧어 알맹이를 꺼내 먹기도 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V. Dinets, J.C. Brueggen, J.D. Brueggen,Crocodilians use tools for hunting, Ethology Ecology & Evolution , DOI:10.1080/03949370.2013.858276, Published online: 29 Nov 201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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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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